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58967239
· 쪽수 : 132쪽
· 출판일 : 2025-11-24
책 소개
목차
제1부
협의•13/양문형(兩門型) 봄•14/모퉁이를 함께 돌았다•16/씨앗 자국•18/모란 혹은 작약•20/연기는 바람의 화살표•22/집 보러 다닐 때•24/불안한 귀•25/천렵•26/여우비•28/깃털•30/이불솜•32/짐작•34/양지쪽•36
제2부
혀는 귀보다 느리다•39/우려내는 일•40/도망치는 책상•42/꽃 핀 바닥•44/뭉쳐지는 것들•46/불의 보관 방법•48/북•50/사막의 나이•51/빈 등•52/흘수선•54/등대들•56/불빛 수선집•59/궤도•60/징후들•62
제3부
형편•65/윤슬•66/서성거리는 잠•68/여래불(如來佛)•70/나무는 몸속에 불을 숨겨 놓고 있다•72/부사(副詞)들•73/말의 겹겹•76/폐사지(廢寺址)•78/해수면•80/엎드린 소•83/상강 무렵•84/사람이 없는 시간•86/견인•88/쓸쓸한 직업•90
제4부
슬하•93/서설(瑞雪)•94/벽을 문이라고 불러보는•96/등한시(視), 혹은 시(詩)•98/그늘 패각(貝殼)•100/착한 발자국들•102/말의 그림자•104/올가미•106/감나무는 키가 크다•107/비눗갑•108/살얼음•110/세수•112/나무라는 직업•114/날개•116
해설 오민석(문학평론가·단국대 명예교수)•117
저자소개
책속에서
[해설 엿보기]
인간과 세계 그리고 언어가 서로 잘 친화된 세계가 있었다. 그 먼 신화의 시대에 인간과 세계는 서로 통합되어 있었으며 세계와 인간의 논리는 하나였다. 별빛은 인간의 운명을 읽는 텍스트였고, 모든 언어는 주술처럼 살아 인간과 세계를 연결해 주었다. 바람의 움직임에 따라 새들이 움직였고, 새들의 움직임을 보고 인간은 우주의 소식을 들었다. 그러나 이 완벽한 통합의 시대, 이 아름다운 총체성의 세계는 근대 이후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인간은 자신에게서 점차 소외되었고, 세계로부터 점점 더 멀어졌으며, 인간의 언어와 사물의 언어는 서로 외계의 언어가 되어버렸다. 아무도 나무의 심장을 들여다보지 못했으며, 달의 웃음을 인지할 수 없었다. 인간은 분열된 세계만이 아니라 자기 안의 다른 자아들과도 다투었다. 세계는 점점 낯설어졌으며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서로 알 수 없는 방언으로 떠들었다. 모더니즘 이후 세계문학의 여러 증세 중의 하나를 ‘신경증’이라 지칭할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 철저한 소외와 불화의 환경 때문이었다. 이런 증세는 문학만이 아니라 회화, 음악, 영화를 포함한 예술의 전 장르로 확산이 되었는데, ‘신경증’이라는 코드를 제외하고 오늘날의 예술을 관통하는 일관된 코드를 읽기는 매우 힘들어졌다.
낙타의 빈 등을 보면
어딘가에 짐 부려놓고 홀가분하게
돌아가는 길 같다.
그 빈 등에 힘겨웠던 발목 고이 태우고 헐렁헐렁 걷는다.
마침, 밤하늘엔 움푹 등이 비워진 초저녁달이
보름쯤에 있다는 만월을 실으러 가고 있다.
그러니 헐거워진 그 빈 등,
또 다른 짐을 위해 잠시 비워둔 자리일 뿐이다.
…(중략)…
낙타나 사람이나 돌아가는 길은 다 내려놓고 가는 길이라면
언제부턴가 나도 모르게 돌아가고 있는 그 길이
꼭 무거운 길만은 아닌 것 같다.
모든 길은 어두워지면 쉬고
빈 등에 얹힌 달빛,
밤은 낙타들의 등이 눕는 편안한 우리다.
만월을 실어 나르느라 고단한 달의 잔등에도
거뭇한 굳은살 박여 있다.
― 「빈 등」 부분
이 시의 매력은 메시지에 있지 않다. 이 시의 매혹은 낙타와 달과 사람의 삶을 관통하는 공통된 코드의 발견에 있다. 낙타의 “빈 등”에서 “움푹 등이 비워진 초저녁달”로 미끄러지는 상상력은 얼마나 기발한가. 이 순간적인 시선의 이동으로 낙타와 달은 동일한 궤도를 함께 도는 친밀한 관계가 된다. 낙타는 무거운 짐을 내린 채 빈 등으로 “헐렁헐렁” 걷고 있고, 마침 그것을 내려다보던 초저녁달은 이제 “만월을 실으러 가고 있다”는 낯설고 이질적인 두 존재를 끈끈한 친족 관계로 만든다. 마치 동종 업종의 형과 아우처럼 초저녁달의 빈 등이 만월을 지러 가면 금방이라도 낙타의 빈 등 역시 다시 무거운 짐을 지러 갈 것이다. 시인은 이 친밀한 궤도에 사람의 운명까지 합세시킨다. “낙타나 사람이나 돌아가는 길은 다 내려놓고 가는 길”이라는 표현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들은 모두 같은 길을 가는 같은 운명의 존재들이므로 자신이나 세계, 그 어느 곳으로부터도 소외되어 있지 않다. 이들은 서로에게 제 몸처럼 매우 친숙하다. 무거운 짐을 실어 나르느라 생긴 “굳은살”은 마치 오래된 농경 공동체의 구성원들처럼 달의 잔등에도, 낙타의 잔등에도, 그리고 사람의 잔등에도 똑같이 박여 있다.
근대 이후의 주체들은 세계가 원래 이토록 아름다운 친화의 내밀한 풍경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시인은 이제는 거의 신화가 되어버린 풍경을 마치 그동안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불러냄으로써 사막 같은 불모의 밤을 따뜻하게 위로한다. “모든 길은 어두워지면 쉬고/빈 등에 얹힌 달빛,/밤은 낙타들의 등이 눕는 편안한 우리”라는 문법이 가동되는 풍경이야말로 분열, 소외, 갈등, 그리고 불화에 지친 존재들이 진정으로 돌아가고 싶은 곳이 아닐까.
― 오민석(문학평론가·단국대 명예교수)
오랜 병석을 털고 일어난 노인이 양지쪽 평상에 앉아 있다. 먼 곳을 바라보며 앉아서 두 손을 번갈아 만지작거리고 있다. 지난겨울 동안 노인은 저 손으로 허공의 죽음을 몇 번이나 움켜쥐었었다.
그런 두 손을
욕봤다, 욕봤다,
만지작거린다.
덥석, 반가운 혈육의 손을 잡듯 잡은 손 안쓰러워 놓지 못하듯 서로 위로하는 두 손 햇살의 굵기도 굵어지고 밀반죽 펴놓은 듯 노곤한 잠은 넓어지는데 양손에 가득 묻은 양지를 만지작거리는 노인 어룽어룽 번지던 두꺼운 그늘을 잡던 손 헐거워진 손바닥에 어렴풋이 새순 하나 돋는다.
오늘만 같아라.
햇살도 만만하기만 한,
헤프기만 한.
― 「양지쪽」 전문
돌 지난 아이에게 한글을 가르친다.
글자판의 ‘꽃’을 선창하면
아이는 ‘꼼’이라고 따라 한다.
내가 웃으며 다시 ‘꼼’이라고 하면
아이는 그게 아니라며
깔깔대고 웃는다.
갓 돌 지난 입은 바쁘다.
한입 가득 엄마라는 호칭을 물고 있어야 하고
맛있는 것 수시로 삼켜야 하고
또, 울먹울먹 자주 울어야 하고,
그래서 혀는 귀보다 느리다.
아이는 말을 귀로 배운다.
말은 잠시 귀에 머물렀다 입으로 간다.
잘 안 되는 발음,
그건 혀가
온몸에게 양보한 몸짓이다.
― 「혀는 귀보다 느리다」 전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