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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견시집주 4

황정견시집주 4

황정견 (지은이), 박종훈, 박민정, 이관성 (옮긴이)
소명출판
3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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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견시집주 4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황정견시집주 4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외국시
· ISBN : 9791159059186
· 쪽수 : 478쪽
· 출판일 : 2024-08-15

책 소개

북송을 대표하는 시인 황정견의 시 1,916수를 총망라한 『황정견시집주』를 완역한 것으로, 상세한 주석을 통해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황정견은 송시다운 시가 시대를 풍미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한 인물로, 그의 시론은 후대에까지 큰 영향을 미쳤다.

목차

해제
황진시집주서

황정견시집주
산곡시집주
산곡시집주권제십이(山谷詩集注卷第十二)
1. 죽지사. 2수【발문을 붙이다】(竹枝詞.二首【幷跋】)
2. 꿈에 이백을 만나 죽지사 삼첩을 읊조렸다(夢李白誦竹枝詞三疊)
3. 원명이 검남에서 헤어지며 준 작품에 화답하다(和答元明黔南贈別)
4. 여수령의 마포에 쓰다【지명】(題驢瘦嶺馬鋪【知命】)
5. 무산에 이르니 송무종이 말을 보내오면서 꺾은 꽃과 술을 보내왔기에【지명】(行次巫山, 宋懋宗遣騎送折花廚醞【知命】)
6. 무종의 송별시에 차운하다. 2수【지명】(次韻懋宗送別.二首【知命】)
7. 유문학에게 장난스레 답하다【지명】(戲答劉文學【知命】)
8. 외질 이광조를 예전에 보았을 때는 오히려 더벅머리의 아이였는데, 지금 사직이 보내온 짧은 시를 보니 사랑할 만해서 차운하다【지명】(外姪李光祖往見尙垂髫, 今觀寄嗣直小詩, 已可愛, 因次韻【知命】)
9. 남릉파에 오르다【지명】(上南陵坡【知命】)
10. 작은 원숭이가 우는 역에 쓰다【지명】(題小猿叫驛【知命】)
11. 말 위에서 바로 읊조려 건시 이령에게 드리다【지명】 (馬上口號, 呈建始李令【知命】)
12. 부당역에 차운한 장시주의 짧은 시를 보고 그 시에 차운하다【지명】(次浮塘驛, 見張施州小詩, 次其韻【知命】)
13. 시주가 먼저 장십구사군에게 보낸 작품에 장차 차운하다. 3수【지명】(將次施州先寄張十九使君. 三首【知命】)
14. 장중모와 헤어지면 화답하다. 2수【지명】(和張仲謀送別. 二首【知命】)
15. 청강의 주부 조언성에게 차운하여 답하다【지명】(次韻答淸江主簿趙彥成【知命】)
16. 송무종이 기주 오십시를 보내왔기에. 3수【지명】(宋懋宗寄蘷州五十詩. 三首【知命】)
17. 소약란의 회문금시의 그림에 쓰다(題蘇若蘭回文錦詩圖)
18. 양명숙이 지은 작품에 차운하다. 4수(次韻楊明叔. 四首)
19. 다시 차운하다【병인】(再次韻【幷引】)
20. 검남으로 귀양 가서 지내다. 10수(謫居黔南. 十首)
21. 검남의 가사군에게 주다(贈黔南賈使君)
22. 우사와 운학에 차운하다. 2수【진나라 장협의 「잡시」에서 “허공에 날아오르니 마치 솟는 연기 같고, 거센 비 내리니 마치 엉킨 실 같구나”라고 했다】(次韻雨絲雲鶴. 二首【晉張恊詩, 騰空似湧煙, 密雨如散絲】)
23. 빈로를 따라 죽순을 캐다【황빈로는 문호주의 처조카인데, 「산곡제발」에 보인다】(從斌老乞苦筍【黃斌老, 文湖州之妻侄, 見於山谷題跋】)
24. 황빈로가 그린 횡죽에 차운하다(次韻黃斌老所畵橫竹)
25. 황빈로가 묵죽 12운을 보내왔기에 차운하여 사례하다(次韻謝黃斌老送墨竹十二韻)
26. 앞의 운자를 사용하여 자주가 나를 위해 풍우죽을 그린 것에 사례하다(用前韻, 謝子舟爲予作風雨竹)
27. 다시 앞의 운자를 사용하여 자주가 그린 대나무를 읊조리다(再用前韻, 詠子舟所作竹)
28. 자주가 그린 두 그루 대나무와 두 마리 구욕을 장난스레 읊조리다(戲詠子舟畵兩竹兩鸜鵒)

산곡시집주권제십삼(山谷詩集注卷第十三)
1. 빈로의 「병기독유동원」이란 작품에 차운하여 답하다. 2수(次韻答斌老病起獨游東園. 二首)
2. 또 화답하다. 2수(又和. 二首)
3. 또 빈로의 「병유견민」이란 작품에 답하다. 2수(又答斌老病愈遣悶. 二首)
4. 황빈로의 「만유지정」이란 작품에 차운하다. 2수(次韻黃斌老晚遊池亭. 二首)
5. 사응지에게 장난으로 답하다. 3수(戲答史應之. 三首)
6. 야족헌에 쓰다【서문을 붙이다】(題也足軒【幷序】)
7. 영주 조원대사의 차군헌에 써서 보내다(寄題榮州祖元大師此君軒)
8. 이임도가 콩죽을 나누어 준 것에 사례하며 답하다(答李任道謝分豆粥)
9. 지명 동생이 융주로 떠나기에 주다(贈知命弟離戎州)
10. 조카 사가 지명을 따라 배를 타고 왔기에【사의 자는 유심이고 어릴 적 자는 한십으로 지명의 둘째 아들이다】 (姪㭒隨知命舟行【㭒字惟深, 小字韓十, 知命第二子】)
11. 문소격이 보내온 작품에 삼가 차운하여 답하다. 2수(次韻奉答文少激紀贈. 二首)
12. 문소격 추관의 「기우유감」이란 작품에 차운하다(次韻文少激推官祈雨有感)
13. 이임도의 「만음쇄강정」이란 작품에 차운하다(次韻李任道晚飮鎖江亭)
14. 거듭 차운하고 이중 남옥에게 편지를 겸하다. 3수(再次韻兼簡履中南玉. 三首)
15. 임도의 「식여지유감」이란 작품에 차운하다. 3수(次韻任道食茘支有感. 三首)
16. 요치평이 푸른 여지를 보내왔는데 융주의 최고였고 왕공권이 여지로 만든 푸른 술을 보내왔는데 또한 융주의 최고였다(廖致平送綠茘支, 爲戎州第一, 王公權茘支綠酒, 亦爲戎州第一)
17. 양리도가 은가를 보내왔기에 사례하다. 4수(謝楊履道送銀茄. 四首)
18. 석장경을 태학추보로 전송하다(送石長卿太學秋補)
19. 소격의 「감로강태수거도엽상」의 작품에 차운하다(次韻少激甘露降太守居桃葉上)
20. 차경정【서문을 붙이다】(借景亭【幷序】)
21. 장난스레 가안국에게 주다【안국은 미산 사람으로 자는 복례이다】(戲贈家安國【安國, 眉山人, 字復禮】)
22. 양군전이 술을 보내왔기에 차운하다(次韻楊君全送酒)
23. 양군전이 봄꽃을 보내왔기에 차운하다(次韻楊君全送春花)
24. 양경산이 술그릇을 보내왔기에 사례하다(謝楊景山送惠酒器)
25. 사언승이 봄꽃을 보내왔다(史彦升送春花)
26. 석각이 그린 「상초옹」의 그림에 쓰다(題石恪畵嘗醋翁)
27. 응지에게 사례하다(謝應之)

산곡시집주권제십사(山谷詩集注卷第十四)
1. 붓을 달려 왕박거사가 지팡이를 준 것에 사례하다(走筆謝王朴居士拄杖)
2. 왕거사가 무늬 있는 돌을 보내왔기에 장난스레 답하다(戲答王居士送文石)
3. 양명숙과 전별하면서 차운하다. 10수(次韻楊明叔見餞. 十首)
4. 석칠삼의 육언 시에 차운하다. 7수(次韻石七三六言. 七首)
5. 만주태수 고중본과 하룻밤 자면서 잠공동을 유람하자고 약속했는데, 저녁 비가 새벽까지 이어지기에 장난스레 짓다. 2수(萬州太守高仲本宿約游岑公洞, 而夜雨連明戲作. 二首)
6. 만주의 하암에서 쓰다. 2수【서문을 붙이다】(萬州下巖. 二首【幷序】)
7. 또 하암에서 장난스레 짓다(又戲題下巖)
8. 무산현에서 자미 두보의 운자를 사용하여 장난스레 짓다【두보의 「무산제벽」이란 작품이 바로 이 작품의 운자로, “파땅 동쪽에서 오래 동안 병에 누워 있다가, 올해 힘겹게 고향으로 돌아왔네”로 시작하는 작품이 바로 이것이다】(戲題巫山縣用杜子美韻【老杜有巫山題壁詩, 卽此韻, 所謂臥病巴東久, 今年强作歸. 是也】)
9. 왕관복과 홍구보가 진무기를 알현하고 지은 장구에 화답하다(和王觀復洪駒父謁陳無己長句)
10. 옛 구리 병을 왕관복이 보내주었기에(以古銅壼送王觀復)
11. 병 속에 일어나 형강정에서 본 것을 읊조리다. 10수(病起荆江亭卽事. 十首)
12. 송자현에 있는 추영년이 고죽의 샘물과 등국 및 연자탕을 보내왔기에. 3수(鄒松滋寄苦竹泉橙麴蓮子湯. 三首)
13. 황여적의 작품에 차운하여 답하다(次韻答黃與迪)
14. 앞의 운자에 차운하여 황여적이 그린 대나무 다섯 폭을 은혜롭게 보내왔기에 사례하다(次前韻謝與迪惠所作竹五幅)

산곡시집주권제십오(山谷詩集注卷第十五)
1. 장난스레 주공무와 유방직, 전자평에서 편지를 써서 보내다. 5수(戲簡朱公武劉邦直田子平. 五首)
2. 익수 네 번째 동생의 작품에 차운하다【황우익의 자는 익수로 시어사 소의 셋째 아들이다】(次韻益修四弟【黃友益, 字益修, 侍御史昭之第三子也】)
3. 협주의 술을 익수가 보내왔기에 다시 앞의 운자를 이어 짓다(以峽州酒遺益修, 復繼前韻)
4. 익수 네 번째 동생이 석병을 보내왔기에 사례하다(謝益修四弟送石屛)
5. 왕관복의 도미국을 보내왔기에 장난스레 답하다. 2수(戲答王觀復酴醿菊. 二首)
6. 왕자여가 능풍국을 보내왔기에 장난스레 답하다. 2수(戲答王子予送凌風菊. 二首)
7. 왕자여가 감람을 보내주었기에 사례하다(謝王子予送橄欖)
8. 야자 소관을 자여에게 보내다(以椰子小冠送子予)
9. 양강국에게 드리다(呈楊康國)
10. 또 강국에게 장난스레 드리다(又戲呈康國)
11. 마형주의 작품에 차운하다【마성의 자는 중옥이다】(次韻馬荊州【馬城, 字中玉】)
12. 중옥사군이 만추에 천녕절도장을 열었기에 화답하다(和中玉使君晩秋開天寧節道場)
13. 외딴 마을로 들어가 이재 노인과 이교 노인을 뵙고 장난스레 전자평에게 보내어 편지를 겸한다. 3수(入窮巷謁李材叟翹叟, 戲贈兼簡田子平. 三首)
14. 마옥중의 작품에 차운하여 답하다. 3수(次韻答馬中玉. 三首)
15. 중옥의 「조매」라는 작품에 차운하다. 2수(次韻中玉早梅. 二首)
16. 중옥이 「수선화」라는 작품에 차운하다. 2수(次韻中玉水仙花. 二首)
17. 왕충도가 수선화 오십 가지를 보내왔는데, 흔연히 마음에 들어 이를 위해 시를 읊조리다(王充道送水仙花五十枝, 欣然會心, 爲之作詠)
18. 오군이 수선화와 더불어 두 개의 큰 나무를 보내왔기에(吳君送水仙花幷二大本)
19. 유방직이 조매와 수선화를 보내왔기에. 4수(劉邦直送早梅水仙花. 四首)
20. 단돈신이 감자를 보내왔기에 사례하다(謝檀敦信送柑子)
21. 이보성에게 보내다(贈李輔聖)
22. 고중본을 기쁘게도 서로 보며 화창하다(和高仲本喜相見)
23. 난족병을 장난스레 읊조리다. 2수(戲詠煖足瓶. 二首)
24. 문선 이형에게 장난스레 드리다【황우문의 자는 문선이고 시어사 소(昭)의 둘째 아들이다】(戲呈聞善二兄【黃友聞, 字聞善, 侍御史昭之第二子】)
25. 문선의 작품에 차운하다(次韻聞善)
26. 문선 이형의 9수의 절구에 사례하며 답하다(謝答聞善二兄九絶句)
27. 장난스레 문선에게 올리다(戲呈聞善)
28. 자첨의 「화죽석」에 쓰다【조자식의 집안에 소장되어 있는데, ‘전천수동파죽’이라고 쓰여 있다】(題子瞻畫竹石【趙子湜家本云, 題全天粹東坡竹】)
29. 장난스레 미원장에게 주다. 2수(戲贈米元章. 二首)

저자소개

황정견 (지은이)    정보 더보기
북송 건립 85년 후인 인종 경력 5년 홍주부(洪州府) 분녕현[分寧縣, 현 장시성(江西省) 주장시(九江市) 슈수현(修水縣)] 수수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조부 및 형제들은 진사에 오르기도 했고 또 북송의 가장 영향력 있는 문화 운동가인 구양수로부터 배우기도 했다. 또 부친 황서(黃庶)는 두보를 존경해 그 영향이 황정견에도 이어졌지만, 황정견이 열네 살 때 작고했다. 이후 가세가 기울자 그는 명망가인 큰 외삼촌 이상(李常)에게 의탁했다. 이후 구파의 손각(孫覺)의 딸과 결혼했으나 9년 만에 사별했고, 북경국자감교수(國子監敎授)로 있던 1072년 다시 사경초(謝景初)의 딸과 재혼했지만 역시 7년 후 사별했다. 두 번째 장인 사경초는 양주통판과 둔전랑을 지낸 관리여서 황정견은 그를 통해 정치적 입지를 굳혔다. 1064년 19세에 황정견은 중앙 정부의 진사시에 응시했으나 한 번 낙방했다. 그리고 1067년 23세에 예부시에 다시 응시해 삼갑 진사제에 급제하고, 하남성 여주(汝州) 섭현위(葉縣尉)를 필두로 관직에 나섰다. 신종 희녕 5년(1072, 28세)에는 학관 고시에 합격해 국가의 최고 학부인 국자감의 교수가 되었고, 북경에 있을 때인 원풍 원년(1078, 34세) 구파의 천재적 문인인 소식과 교유를 시작하면서 그와 줄곧 정치적 운명을 같이했을 뿐 아니라, 소문 사학사(蘇門四學士)의 한 사람으로서 북송 후기를 대표하는 문인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1080년 황정견의 정치적 후견인인 소식은 왕안석 신법에 반대하는 과정에서 왕안석 신파에 의해 ‘오대시안(烏臺詩案)’의 문자옥에 걸려 호북성 황주(黃州)로 유배를 갔고, 황정견 역시 길주 태화현(현 장시성 타이허)의 지사로 좌천되었다. 임지로 가는 도중 안휘성 서주 삼조산 산곡사(山谷寺) 석우동(石牛洞)의 경치에 반해 ‘산곡도인(山谷道人)’이라고 자호했다. 철종이 즉위하면서 구파인 소식의 입각으로 이상, 손각, 소철(蘇轍), 황정견, 조보지(晁補之), 장뇌(張?), 진관(秦觀) 등이 수도 개봉(開封)에서 관리 생활을 하게 되었다. 황정견은 비서성교서랑(秘書省校書郞)(1085, 41세), 신종실록검토관(神宗實錄檢討官), 집현교리(集賢校理)(1086), 저작좌랑(著作佐郞)(1087)을 지내며 1091년까지 원우 연간에 인생의 황금기를 보냈다. 이후 1093년 소식은 다시 좌천되어 광동성 혜주(惠州), 해남도(海南島) 등 장기 유배의 길을 걷게 되었고, 황정견 역시 사천성 검주(黔州)까지 쫓겨났다. 황정견은 1101년의 소식의 사후 정치적 박해 속에 유배를 다니다가, 1104년 봄에는 동정호를 지나 곳곳을 거쳐 여름에 의주(宜州)에 도착했고, 이듬해인 숭녕(崇寧) 4년(1105) 9월 30일 61세를 일기로 귀양지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삶 역시 동시대의 다른 사대부들과 마찬가지로 왕안석의 신법을 둘러싼 치열한 당쟁 속에서 풍랑을 겪어야만 했던 쉽지 않은 삶이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서 자신의 내면을 기록한 시사(詩詞)와 산문과 서예를 역사 속에 남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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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정 (옮긴이)    정보 더보기
고려대학교에서 중국고전시 박사학위를, 중국저장대학(浙江大學)에서 대외한어교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세종사이버대학교 국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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