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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판타지/환상문학 > 한국판타지/환상소설
· ISBN : 9791159255557
· 쪽수 : 404쪽
· 출판일 : 2020-07-14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제1부 로그아웃
제2부 로그인
에필로그
작가의 말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지하가 쓴 책의 표지를 넘기던 서영은 첫 페이지에 적힌 헌사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남편이 던진 타자기에 얼굴이 짓이겨져 스스로 생을 마감한 나의 어머니에게.’
서영은 자신도 모르게 책을 덮어버렸다. 가슴이 불쾌하게 뛰었다. 헌사란 고마운 누군가에게 그 책을 바친다는 뜻을 적는 글이 아닌가. 아무것도 모르는 무식쟁이이긴 하지만 그 정도는 안다. 지하가 쓴 것처럼 그럴 뻔한 적이 있긴 했다. 그날 지하가 아니었다면 남편이 던진 타자기에 서영의 얼굴이 짓이겨졌을 것이다. 그런 흉측한 얼굴로는 살 수 없어 어쩌면 자살을 택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죽지도 않은 엄마를 자살한 사람이라고 쓴 것일까. 딸의 마음속에서는 이미 죽었다는 은유일까. 섭섭함과 불쾌함 그리고 내용에 대한 강한 호기심이 동시에 치밀었지만 버젓이 살아 있는 자신을 죽은 사람 취급해놓은 책을 펼쳐보기는 왠지 두려웠다. 그녀는 무슨 끔찍한 것이라도 보듯 책을 내려다봤다
--- 제1부 로그아웃 「조용한 세상」 중에서
이든은 생각에 잠긴 채 카페 B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가 도로 나왔다. 아무래도 지하가 깨면 숙취 때문에 속이 쓰릴 테니 한인식당에서 해장국을 사다주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그는 한인식당이 밀집해 있는 록펠러센터 근처로 갔다.
해장국 전문 식당을 찾아 들어오니 TV에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해장국을 1인 분 포장 주문한 다음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TV화면을 봤다. 화면은 한 은행을 비춰주면서 3년 전에 은행의 CCTV에 찍힌 영상을 내보내는 중이었다. 커다란 후드를 덮어 쓴 누군가가 은행 복도에서 갑자기 사라지는 영상이었다. 영상은 흐릿해서 인물의 형체만 보일 뿐 구체적인 것은 알 수 없었다. 이든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자신도 모르게 주변을 재빠르게 살폈다.
3년 전 지하는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미국의 대형 은행을 털었다. 지하와 이든만 알고 있는 비밀이었다. 은행 CCTV에 찍힌 영상은 한 번도 가시화된 적이 없어 잊고 살았다. 그런데 이제 와 보도가 된 것이다. 소름이 돋았다. 은행을 턴 당사자가 그 일을 잊고 사는 동안 누군가는 끈질기게 추적해왔던 것일까?
“파파라치가 보내온 두 번째 영상입니다.”
앵커가 말했다.
첫 번째 영상에 비해 화질이 선명한 두 번째 영상이 떴다.
센트럴파크의 우거진 숲으로 여자와 개가 갑자기 나타나는 영상이었다. 여자는 지하였고 개는 울프였다. 이든은 숨이 막혔다.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파파라치의 추적 결과 영상 속의 여자와 개가 뉴욕 곳곳에서 순간이동 하는 모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FBI는 은행털이 용의자와 동일 인물로 추정되는 화면 속의 아시안 여성을 수배했습니다.”
--- 제1부 로그아웃 「순간 이동자」 중에서
시어머니는 울지 않는 지하가 기분 나쁘다면서 지민을 뺏어갔다. 젖을 먹이겠다고 하면 ‘더러운 년의 젖을 먹이느니 최상급 외제 분유를 먹이는 것이 낫다.’고 비아냥거렸다.
남편에게 분가하자고 애원해보았지만 소용없었다. 그 역시 들은 척 만 척할 뿐이었다. 하다못해 정신과 상담이라도 받게 해달라고 했더니 시의원이자 목사인 자신의 아내가 정신병자라는 소문이라도 나길 바라는 거냐며 윽박질렀다. 그러면 차라리 이혼하자고 말했다가 귀싸대기를 맞았다.
와인창고에 갇혀 있는 동안 위층에선 줄곧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산모와 아기는 산후조리 중이라는 시어머니의 말 한 마디에 와인창고에 갇힌 지하와 서영은 사람들로부터 잊혀 유령으로 살았다. (……) 그냥 죽고 싶었다. 죽는 것이 친정과 시집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했다. 어린 지하를 혼자 두고 갈 생각을 하니 지하가 불쌍해 견딜 수가 없었다. 듣지도 소리 내 울지도 못하는 지하를 불행에 던져 놓느니 데리고 가는 게 맞았다. 그녀는 지하의 목을 졸랐다. 자신이 무슨 일을 당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는 아기는 팔다리를 버둥댔다. 서영의 관자놀이에 핏대가 섰다.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 제1부 로그아웃 「조용한 세상」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