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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과학소설(SF) > 한국 과학소설
· ISBN : 9791159258190
· 쪽수 : 268쪽
· 출판일 : 2023-10-28
책 소개
목차
경매
팔이 닿지 못해 슬픈 짐승
망자를 위한 땅은 없다
블랙홀 뺑소니
0번 버스는 2번 지구로 향한다
맛과 맛 사이
빛보다 빠른 빚
뜨거운 얼음을 만드는 방법
브레인 크런치
사이버 피쉬 트럭
작가의 말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상아에게는 자신의 부모에 관한 기억이 없다. 상아의 부모가 일찍 죽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들이 상아의 기억을 내가 마주한 대머리 남자와 같은 기억 콜렉터에게 팔았기 때문이다. 상아의 병원비를 감당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중요한 기억일수록 기억의 가치는 올라간다.
기억 콜렉터들이 기억을 사들일 때 내세우는 주요 원칙 중 하나다. 상아의 기억이 팔렸을 때, 상아는 갓난아기였다.
둘의 직업적 특성도 둘의 거리감에 한몫했다. 준은 방호복 필터의 성능을 연구하는 기업의 외판원이었지만, 민은 방호복을 리폼하는 디자이너였다. 정부는 민의 활동을 불법이라고 못을 박았지만, 그리 심하게 단속할 수는 없었다.
그것을 관리 감독 할 공무원들도 바이러스로 모조리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정부는 바이러스가 발병하기 전 타투처럼 어느 정도 용인가능한 선에서 방호복 리폼을 눈감아 주었다.
지하 클럽에서 활동하는 이들에게 민의 작품은 꽤 인기가 많았다. 그들은 자신들을 패션을 포기하지 않은 소위 ‘그루밍족’이라 불렀다. 가끔 집으로 찾아오는 그들을 볼 때면 준은 바이러스를 직접 눈으로 본 듯이 놀랐다. 그들의 몸통 부분에는 원이나 사각형이 이어지는 기하학적 무늬나 예수나 부처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고, 머리 부분에는 민과 마찬가지로 화려한 플라스틱 비즈나 수탉처럼 붉은 볏이 달려 있었다. 얼핏 보면 90년대 말 헤비메탈 그룹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생김새에 어울리지 않는 순박한 말투로 민을 찾았고, 집을 나가면서도 준에게 부족한 민을 잘 부탁한다며 너스레를 떨곤 했다. 민은 자신의 방에서 날카로운 바늘로 외줄을 타듯이 그들의 방호복에 장식을 달거나, 그림을 그렸다.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계약을 진행했다. 사인은 거침없었고, 만족스러운 거래를 마쳤다. 산 정상에 오른 만큼 약간의 반주와 함께 식사를 마친 그는 중개인과 함께 기분 좋게 산을 내려갔다. 그런데 그만 발을 헛디디고 만 것이다. 그렇게 핍의 아버지는 만 킬로가 넘는 곳에서 떨어졌다. 중개인의 증언에 따르면 아버지 당신은 올림푸스산 한쪽 면을 거의 훑으며 내려갔다고 했다. 마치 19세기에 마차로 아메리카 대륙을 내달린 만큼의 땅을 받던 미국인들처럼 말이다.
슈트를 입고 있어 그런지 시신이 쪼개지는 그런 불상사는 없었다. 핍의 아버지는 지금 슈트를 입은 채로 화석처럼 냉동고에 보관되어 있었다. 장례를 치를 틈이 없었다. 화성이 태양에 먹히면 말 그대로 핍의 가족은 파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