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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91168343337
· 쪽수 : 540쪽
· 출판일 : 2025-11-17
책 소개
목차
한국어판 서문
기쁨의 황제
작가의 말
옮긴이의 말
리뷰
책속에서
기쁨, 글래드니스를 찾아가려다 길을 잘못 들면 이곳에 다다를 것이다. 우리 마을이 이스트 글래드니스라고 불리기 때문이다. 글래드니스라는 마을은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곳은 거의 한 세기 전, 제1차 세계대전에서 사지를 잃고 영웅이 되어 귀환한 소년 토니 밀샙을 기리는 뜻에서 밀샙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이 나라에서는 거의 모든 것을 잃어도 마을 하나를 통째로 얻을 수 있다는 증거다. 몇몇 주민들은 밀샙의 빛을 빨아들여 가게를 채우고 싶은 마음에 우리 동네 이름도 이스트 밀샙으로 바꾸자고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주민들은 우리 동네 인도에서 휠체어를 타고 다닌 적도 없는 소년의 이름을 빌리기에 자존심이 너무 강하다.
소년은 본능적으로 외쳤다가 즉시 후회했다. 그는 기둥 그늘 속으로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여자가 멈칫하더니 몸을 내밀고서 실눈으로 다리를 훑어보았다. 그가 쓴 안경이 근처 가로등 불빛을 반사해 금빛으로 반짝였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백발과 구부정한 걸음걸이로 보아 노인인 듯했다.
“거기 누구야?” 여자가 손차양을 하고 자신을 에워싸는 빗줄기 너머로 고함을 질렀다. 소년은 기둥의 철제 볼트가 어깨 사이로 파고들 만큼 몸을 딱 붙이고 움직이지 않았다.
“맙소사!” 여자가 눈을 크게 뜨며 숨을 들이켰다. “너 뭐 하는 거니? 미친 거야, 뭐야? 하늘에 계신 아버지, 도와주소서. 거기서 얼른 나와!”
소년은 몸서리를 치며 원뿔 모양으로 드리워진 빛 속으로 몸을 기울였다. 삶을 끝장내려 했던 충동보다도, 자신이 삶의 가장자리에 있는 모습을 낯선 사람에게 들켰다는 것이 어쩐지 더 곤혹스러웠다. “그런 거 아니에요!” 그가 여자를 향해 외쳤다. “저는…… 저는 그냥 강물을 보고 있었어요.”
이 집에는 노트북도 인터넷도 없었기에 이후로 한 주 동안 하이는 밤늦게까지 깨어서 종종 불안한 꿈에 시달리는 그라지나의 곁을 지키며 손안에서 곰팡이 핀 낱장들이 자꾸만 떨어지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종이가 바스라졌다. 읽는 과정에서 책이 사실상 분해되고 있었다.
자비에 한없이 가까운 무언가를 감각한다는 것은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그것이 하고 많은 장소 중에서도 폐가들이 늘어선 유독한 강가의 길 끝자락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은 더더욱 이상한 일이었다.
쓰레기 더미 사이에서 바야흐로 자신이 되고 싶었던 사람에 가장 근접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도. 전구알 아래에 앉아 책을 읽으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하이는 따스하고도 혼자였으며, 혼자이면서도 어쩐지 누군가의 아들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