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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기호학/언어학 > 언어학/언어사
· ISBN : 9791159921735
· 쪽수 : 324쪽
책 소개
목차
언어의 무지개_서문을 대신하여
01 우리는 모두 그리스인이다_영어공용어화 논쟁에 대하여 / 02 버리고 싶은 유산, 버릴 수 없는 유산_한자에 대한 단상 / 03 말 /
04 표준어의 폭력_국민국가 내부의 식민주의 / 05 외래어와의 성전_매혹적인 그러나 불길한 순혈주의 /
06 여자의 말, 남자의 말_젠더의 사회언어학 / 07 거짓말이게 참말이게_역설의 풍경 / 08 한글, 견줄 데 없는 문자학적 호사 /
09 구별짓기와 차이 지우기_방언의 사회정치학 / 10 부르는 말과 가리키는 말_친족명칭의 풍경 / 11 합치고 뭉개고_흔들리는 모음체계 /
12 ‘한글소설’이라는 허깨비 / 13 눈에 거슬려도 따라야 할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 / 14 언어는 생각의 감옥인가_사피어-워프 가설에 대하여 /
15 두 혀로 말하기_다이글로시아의 풍경 / 16 한국어의 미래 / 17 경어 / 18 기쁘다와 기뻐하다_심리형용사에 대하여 / 19 부정문에 대하여 /
20 한국어의 시제
저자소개
책속에서
언어의 무지개_서문을 대신하여
어떤 두 사람이 자신의 언어로 얘기를 하면서 서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면 그들은 같은 언어를 쓰는 것이다. 그들이 자신의 언어로 얘기를 하면서 서로 의사소통을 할 수 없다면 그들은 다른 언어를 쓰는 것이다. 그런데 21세기 한국인들은 7~10세기 한국어를 이해할 수 없다. 7~10세기 한국인들이 21세기 한국어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렇다면 7~10세기 한국어와 21세기 한국어는 ‘다른’ 언어다.
사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크게 쇠락한 것은 독일이 아니라 독일어였다. 나치즘의 문화사적 의미 가운데 우리가 놓치기 쉬운 것 하나는 그것이 학술언어로서 독일어의 몰락을 가져왔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자연과학에서만이 아니라 사회과학에서나 인문학에서도 마찬가지다. 그 점에서 히틀러는 정치사나 전쟁사적으로만이 아니라 문화사적으로도 크게 문제적인 개인이다. 그가 아니었다면 20세기 후반에 독일어로 쓰였을 게 틀림없던 수많은 학문적 걸작들이 영어로 쓰였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그리고 점령 지역의 가장 뛰어난 재능들이 히틀러를 피해서 영어권 세계로 탈출해 정착했고, 자신들의 작업언어를 독일어에서 영어로 바꿨기 때문이다.
지구 문명은 여러 이질적 문명들이 혼재된, 감염된 문명이다. 다시 말해 튀기 문명이다. 우리는 모두 감염된 인간이고, 감염된 언어의 사용자다. 독자들과 내가 쓰는 한국어에는 한국 고유의 것으로 간주되는 요소만이 아니라, 중국적 요소, 일본적 요소, 미국적 요소들이 섞여 있다. 그 한국어에 미국적 요소가 섞여 있다는 것은, 미국적인 것에 흡수된 영국적 요소, 프랑스적 요소, 고대 로마적 요소, 고대 그리스적 요소, 고대 이집트적 요소가 섞여 있다는 뜻이다. 이 모든 요소들이 섞이고 스미고 버무려지고 반죽돼 내 언어를 이루고 내 교양을 이루고 내 정체성을 이룬다. 그 정체성은 감염된 정체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