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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독서에세이
· ISBN : 9791160402629
· 쪽수 : 296쪽
· 출판일 : 2019-05-30
책 소개
목차
1부 다뉴브의 물결처럼 잔잔했던 : 유럽의 가운데에서 읽다
라디오 같은 도시에서의 산책
: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에서 정혜윤의 《마술 라디오》를 읽다
비엔나에서 에곤 실레를 기다리며 카프카를
: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읽다
그곳은 나에게 《유령의 시간》이 된 도시
: 체코 프라하에서 김이정의 《유령의 시간》을 읽다
그는 정말 시인이 아니었다
: 슬로베니아 프투이에서 고은의 《두고 온 시》를 읽다
2부 어두울 것 같지만 더 밝은 : 유럽의 동쪽에서 읽다
내가 알아들은 그 한마디
: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시쿠 부아르키의 《부다페스트》를 읽다
인생은 인생, 맥주는 맥주
: 폴란드 포즈난에서 이은선의 《발치카 No.9》를 읽다
뭉클함이 뜸하던 차에
: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에서 마스다 미리의 《뭉클하면 안 되나요?》를 읽다
‘생존가방’ 속 필수 아이템 그리고 ‘캥거루’
: 루마니아 클루지나포카에서 윤고은의 《늙은 차와 히치하이커》를 읽다
3부 높고 넓고 깊고 복잡한 : 유럽의 서쪽에서 읽다
힘겨운 순간의 ‘하이’
: 벨기에 브뤼셀에서 김연숙의 《눈부신 꽝》을 읽다
베네치아라는 지구다움
: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앤디 위어의 《마션》을 읽다
이탈리아에서 조이스를 상상하다
: 이탈리아 트리에스테에서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을 읽다.
영화제 with 리플릿
: 이탈리아 우디네에서 백민석의 《리플릿》을 읽다
노란 시집과 런던행
: 잉글랜드 런던에서 권기만의 《발 달린 벌》을 읽다
시인의 말
: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권대웅의 《나는 누가 살다 간 여름일까》를 읽다
4부 상상보다 따사로운, 상상보다 황홀한 : 유럽의 남쪽에서 읽다
다시, 리마
: 페루 리마에서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새엄마 찬양》을 읽다
광장의 달콤함
: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루크 데이비스의 《캔디, 사랑과 중독의 이야기》를 읽다
태양 아래 첫사랑
: 스페인 마드리드에 다녀와서 브라네 모제티치의 《첫사랑》을 읽다
로어 바라카 정원에서 읽을 피와 땀의 노래
: 몰타 발레타에 가서 김이듬의 《표류하는 흑발》을 읽을 것이다
5부 차가워서 청명한, 청명해서 뒤돌아보게 되는 : 유럽의 북쪽에서 읽다
버스 운전사와 무민
: 핀란드 투르쿠에서 토베 얀손의 《마법사가 잃어버린 모자》를 읽다
n개인 운명에 관하여
: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데이비드 에버쇼프의 《대니쉬 걸》을 읽다
이 도시와 그 소설이 비슷한 몇 가지
: 라트비아 리가에서 천명관의 《고령화 가족》을 읽다
코를 시큰거리게 하는 《코》
: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니콜라이 고골의 《코》를 읽다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그러던 어느 날, 도시에 어울리는 책을 읽게 되었다. 그래서 ‘책’과 ‘도시’의 만남을 주선했다. 굳이 책을 들고, 굳이 도시를 다시 찾았다. 이미 다 읽은 책을 들고 ‘라디오를 닮은 도시’의 골목을 누비다가 아무데나 앉아서 다시 그 책을 읽었다. 아무 에피소드나 펼쳐 읽었다. 때론 다 읽고, 때로는 중간에 덮기도 했다.
나는 ‘나의 서 있음’의 이유를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비엔나의 아름다운 광장에서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나’의 행복을 찾는 중이었다. 그 비일상적인 행복이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도시에서,
내가 원하는 소설을 읽을 수 있고,
내가 사랑하는 작가의 그림을 기대하고 있는.
그날, 레오폴드 미술관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 읽은 몇 줄의 카프카는 분명한 울림이 있었다. 그저 같은 문장이었고, 같은 장소였고, 같은 공기였고, 같은 기다림이었음에도. 가슴이 뛰었다. 집에서 펼치는 책에서 느낄 수 없는, 떠나와서 펼쳤을 때 비로소 느껴지는 카프카. 화첩에서는 느낄 수 없는 원본의 아우라를 느끼기 전, 그 미세한 떨림, 그것을 아마도 나는 행복이라고 하나 보다. 떠나서 기쁜 것. 떠나와서 읽을 때 느끼곤 한다. 그냥 좋아하는 것을 읽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냥 보고 싶은 것을 한 번 더 보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곳에서 하면 더 특별한 경험이 된다. 나는 나의 ‘기쁨’을, 나의 ‘행복’을 당신도 느끼길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너도 ‘너’의 행복과 기쁨을 찾길 바랄 뿐이다.
‘스트롱’한 《발치카 No.9》를 들고, 폴란드 포즈난으로 떠났다. 도시의 이름은 무척 익숙하다. 그도 그럴 것이 ‘포즈난poznan’이라는 말은 슬로베니아어로 ‘알려진’, ‘친근한’이라는 뜻이다. 같은 슬라브어 계열인 폴란드어로 포즈난은 ‘알려진’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하지만 단지 이름만 친근할 뿐이었다. 도시 자체는 생경했다.
포즈난으로 가기 전까지 도시가 폴란드의 서부에 위치한다는 것도 몰랐고, 도시를 흐르는 강의 이름이 ‘바르타Warta’인지도 몰랐으며, 인구 50만 명이 넘는 꽤 규모 있는 도시인지는 더더욱 몰랐으니. 13세기 말에는 폴란드였다가 그 후 독일 프로이센의 지배하에 있다가 1950년대에는 반소련 시위가 있었다는 포즈난의 지난 한 역사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도시로 잘 아는 소설과 함께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