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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과학소설(SF) > 한국 과학소설
· ISBN : 9791197137815
· 쪽수 : 296쪽
· 출판일 : 2020-10-20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_100년의 통찰 <SF김승옥>을 만나다
59년 후 디 파이 나인 기자의 어느 날_김승옥
중세소설_김학찬
시에스타_윤이안
준_SOOJA
로그아웃월드_박생강
원인 불명의 질병으로 인한, 가려움증에 의한_이하루
아빠는 오늘을 좋아합니다_강병융
가라아게 금지령_김민정
어머니를 이해하기 위하여_전혜진
야행 다시 만들기_곽재식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50년 후, 디파이 나인의 기자의 어느 날 / 김승옥
‘D?9’은 취재용 무선 전화기를 어깨에 메고, 팩시밀리에서 경쟁지의 사회면 몇 장을 찍어내 돌돌 말아들고 집을 나선다. 맨 아래층에 있는 진료실에 들러 간호원의 도움을 받으며 자동진찰기에 건강상태를 알아본다. 심전, 뇌파 등등 별로 이상이 없다는 카드를 자동진찰기는 토해낸다.
“괜찮은데요 뭘.”
일흔 다섯 살인 간호원은 카드를 들여다보고 나서 묻는다.
“무슨 꿈을 꾸었는데?”
‘D?9’은 꿈 얘기를 대강만 해준다. 간호원은 열심히 듣고나서,
“우리가 젊었을 땐, 아이 꿈을 꾸면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고 했는데......
그렇지만 요즘 세상에서 나쁜 일이 있다고 그게 얼마나 나쁘겠수. 불안해할 거 없어요.“
그러나 현대라고 나쁜 일이 없는 건 아니다. 물론 직장으로부터의 해고 따위가 나쁠 건 없다. 그는 레이저광선 취급 면허도 가지고 있으니 하다못해 수마트라에 가서 벌목꾼 노릇이라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쁜 일이란 있는 것이다. 가령......가령......? 그러고 보니 간호원의 말이 맞는 것도 같다. 그래, 나쁜 일이란 별로 없군. 죽는다는 걸 제외하곤 말이야. 죽음, 그것은 과연 나쁜 일이다. 나도 죽게 될까?
중세 소설 / 김학찬
중세인들은 컴퓨터를 두려워했습니다. 납득하기 어렵습니다만, 자신들이 제작한 것 따위에 공포를 느낀다니 자의식 과잉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자의식 부족이라고 여겨야 할까요. 우리가 잘 아는 갈등 덕분에 중세는 끝났습니다. 네, 나그네쥐 떼들이 일제히 바다를 향해 달려가 차례로 집단 자살을 하는 것과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배운 역사 그대로,
무지 때문입니다. 중세인들은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줄 몰랐습니다. 999년, 1999년 하는 식으로 그저 순차적인 숫자에서도 종말을 느꼈던 인간들이었습니다. 상상력 때문입니다. 태어난 날짜를 기념하는 관습도 있었고, 인간이 죽으면 특별한 의식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모여서 음식을 나눠 먹거나 노래를 부르며 망자가 가는 곳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모이는 것은,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쓸데없고 위험하기만 한 행동입니다. 굳이 왜 모여서 전염의 위험을 감수합니까. 죽음 이후를 생각한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집니까. 울면서 고통을 자처할 필요가 있습니까. 기뻐하거나 슬퍼한다고 나아지는 게 있겠습니까.
시에스타 / 윤이안
나의 엄마, 그러니까 나를 낳아준 모체는 이시스인이었다. 당시만 해도 지구가 멀쩡히 제 기능을 하던 때였고, 대부분의 행성인들은 지구인 모르게 지구 여행을 다녀오곤 했다. 불쌍한 우리 아버지는 지구에 놀러온 이스스인에게 속아 사기 결혼을 당한 것이다. 딱히 아버지를 사랑해서 결혼한 것 같지는 않다. 이시스인답지 않게 호기심이 넘쳤던 엄마는 알려지지 않은 행성을 찾아다니는 여행을 즐겼고, 그 와중에 발견한 지구를 꽤 마음에 들어 했다. 지구인들이 하는 짓이 바보 같긴 하지만 재미있는 점도 있다고 낄낄거릴 때도 있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자식에 대한 애정은 없었다. 그리하여 열네 살쯤 나이를 먹고 나서는 나도 썩 그럴듯한 방식으로 내 존재의 이유를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엄마는 그냥 궁금했던 거야. 지구인과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는 지구인이 될까, 나처럼 될까.”
엄마는 부정하지 않았고 불행하게도 나는 지구인의 특성을 훨씬 더 많이 갖고 태어났다. 어릴 때는 그래서 어쩌면 내가 엄마의 실패작이 아닐까, 오래 고민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