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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60406986
· 쪽수 : 240쪽
책 소개
목차
들어가며 … 8
1부 나의 집과 시간들
구렁이가 달걀을 깨물어 먹는 집 … 18
내 미운 부로꾸집 … 27
아궁이에 물을 푸며 책을 읽다 … 35
붕붕거리는 식당 방 … 45
울음으로 꽉 차서 매정한 방 … 54
기린처럼 긴 집 … 63
2부 집을 찾아서
내 집은 어디에 1 … 74
내 집은 어디에 2 … 84
내 집은 어디에 3 … 92
집이란 무엇인가 1 … 101
집이란 무엇인가 2 … 110
다시 미운 우리 집 … 123
3부 밥이나 집이나 한가지로
수북이조(水北二條) … 134
염천시하(炎天時下) … 141
강감찬 장군의 특등 병사 … 146
무시잎삭 … 151
밭 가운데 소파에서 … 156
간첩처럼 숨어서 귀신처럼 기도하는 할머니 … 162
그런 데 … 178
아무 일 없이 기차역으로 가자 … 183
꼭 저 같은 애 낳아봐야 … 190
내 인생의 밥 한 끼 … 196
말의 온기 … 203
세상 모든 아가 … 209
꿈속의 가족 … 214
내 글쓰기의 첫날 … 219
빗자루가 운다 … 228
밥이나 집이나 한가지로 … 234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자취방 대문을 들어서면서 나는 시골과 다른 그 집의 풍경 앞에서 좀 망연한 기분이었다. 저 많은 방들 중에 내가 들어갈 방이 어디인가, 일별할 시간이 좀 필요했다. 방은 이미 나보다 먼저 광주로 나온 언니가 살고 있는 방이었다. 그러니까, 그 방은 이제부터 10년이 넘는 기나긴 기간 동안 내가 떠돌 무수한 방, 집이 아니라, 방들 중 첫 번째 방이었던 것이다. 그 집은 내가 나중에 본 주말드라마 〈아들과 딸〉에 나왔던 집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그 드라마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왜 우리들의 자췻집들은 다 비슷한가, 하는 것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서 무서운가? 인생이 무서운 것은 무슨 일이 반드시, 기필코 일어나서인 게라고만 여겼다. 그러나 20년 만에 그곳, 복도가 기린처럼 긴 집에 가보고서 알았다. 20년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도 인생이 무서울 수 있다는 것을.
순하디순한 전라도 엄마들 말은 말이 아니라 꽃 같았다. 채송화나 봉숭아 같았다. 애기들한테 아가라고 부르면서도 곧잘 높임말 비슷하게 하신가체를 썼다. 뭐뭐 허신가아, 울애기 추우신가, 더우신가. 또 뒷말에 뭐뭐 ‘하소와’라고 했다. 학교 파허고 핑 오소와. 집안일이 바쁘니 학교 끝나면 빨리 오라는 뜻이다. 예전에 나는 이 세상의 엄마들은 다 우리 엄마(들)처럼 말하는 줄 알았다. 흙 묻은 머릿수건을 급하게 벗으며, 오메 울 애기 배고파서 기함 드시겄네에, 급하게 젖을 물리던 엄마들만 봐와서인지는 몰라도 전라도 말을 쓰지 않는 엄마들한테는 왠지 정이 안 갔다. 그렇게 정이 담뿍 든 말을 쓰는 전라도 엄마들은 아이들을 ‘애기’라고 불렀다. 크든 작든, 모든 아이들한테, 내 아이뿐 아니라 모르는 아이한테도, 그 자식들이 스무 살이나 서른 살이 되었어도 전라도 엄마들은 아가, 라고 했다. 자식이 마흔 살, 쉰 살, 환갑이 지나도 팔순, 구순 엄마들은 다 늙은 자식한테, 악아, 어디 갔다 인자 오신가아, 당신들의 손으로 자식의 찬 손을 비비고 뺨을 비빈다. 오메오메, 이것이 먼 일이당가, 손도 차고 뺨도 차네, 얼릉 들어소와, 얼릉 들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