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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중국사 > 중국근현대사(아편전쟁 이후)
· ISBN : 9791160947243
· 쪽수 : 312쪽
· 출판일 : 2021-04-23
책 소개
목차
서문. 우리가 사랑한 도시 11
1. 홍콩은 어떻게 홍콩이 되었나
밸런타인데이의 비극 21 / Cap.503 23 / 영국의 차와 인도의 아편과 청나라의 돌섬 26 / 홍콩의 탄생 31 / 홍콩 1842 33 / 당신은 누구인가? 36 / 도시의 팽창 40
2. 홍콩인들의 홍콩
웡 할아버지의 1966년 45 / 마오의 말 47 / 문화혁명과 홍콩 49 / 중화의 계승자 55
3. 중국으로 돌아가다
홍콩 반환협정 61 / 베이징의 봄 64 / 명예 회복 67 / 천안문광장 69 / 1989년 4월 베이징 72 / 우리는 훨훨 살고 싶다 76 / 1989년 6월 4일의 홍콩 82 / 노랑새 작전 85 / 타임 리밋 88
4. 민주주의를 이식하라
갑자기 시작된 개혁 93 / 1997년 7월 1일 / 홍콩 반환 98 / 웡 씨 집안의 1997년 6월 30일 101
5. 청년 세대의 등장
2차 이민 붐 107 / 2003년 국가보안법 제정 시도 111 / 중국이 준 당근 115 / 2004년 홍콩기본법 해석 / 사태 118 / 민주 진영의 약화 121 / 민족주의 교육 123 / 학민사조 라이징 131 /센트럴 점령 계획 136 / 미인대회식 행정장관 선출 139
6. 우산혁명
우산과 메이 145 / 센트럴과 몽콕 148 / 공동체를 경험하다 150 / 종말 153
7. 자꾸만 사라지는 사람들
타이완, 홍콩에 동조하다 157 / 행정장관 직선제 표결 158 / 시진핑과 여섯 여인 162 / 2016년 1월 중국 CCTV 169 /돌아온 사람들 171 / 돌아오지 못한 사람 173
8. 피시볼 레볼루션
혁명 전야 179 / 민주파의 대약진: 2016년 / 홍콩 6대 입법회 선거 183 / 의원직 박탈 186
9. 1980년 광주를 기억하는 사람들
BNO 여권과 홍콩특별행정구 여권 195 / 중국인 K 202 / 2011년 청두 204 / 저녁, 빅토리아공원 208 / 검은 옷의 변호사들 210 / 103만 212 / 홍콩인, 최루탄 속에서 다시 태어나다 216 / 100만 받고, 100만 더! 그래서 200만! 219 / 홍콩 반환 22주년 전야 221
10. 하나로 모인 목소리들
친중 선박 시위 227 / 홍콩인 투쟁 선언 231 / 진압 235 / 아들의 가출 236 / 홍콩 시민은 시위대를 지지한다 240 / 물이 되어라 243 / 백색 테러 248 / 테러의 배후 250 / 가자, 공항으로 252 / 중국의 반응 254
11. 깨져버린 약속
격화되는 폭력 259 / 압박 261 / 범람하는 가짜뉴스와 총성 263 / 식민지 266 / 11월의
길목 269 / 공성전 271 / 마지막 취재 275 / 홍콩이공대학교 278 / 메이 282 / 다시 공성전 286 / 중국은 승리를 확신했다 287
12. 일국양제 시대의 종말
코로나19의 습격 293 / 불길한 징후 295 / 국가보안법 297 / 그날 이후 299
마치며. 안녕, 나의 도시여 302
감사의 말 308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ㆍ홍콩인의 정체성, 홍콩 사람이란 누구인가?
영국령 홍콩은 혼란한 시기에 대륙에서 피난 온 사람들의 안식처이자 수많은 혁명 지사들의 은거지가 되었다. 태평천국운동의 주역인 홍수전의 동생 홍인간洪仁?은 홍콩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뒤 태평천국에 서구 제도를 도입하려 했고, 신해혁명의 주역인 쑨원孫文은 홍콩의 차이니스대학에서 수학한 후 오늘날 신계의 툰먼屯門에서 혁명을 꿈꿨다. 베트남혁명의 아버지 호치민胡志明도 1930년대에 홍콩을 기반으로 활동했다. 이처럼 홍콩은 중국 혁명의 인큐베이터이자 혁명, 사변, 내전, 전쟁으로 피폐해진 20세기 아시아 인민의 피난처였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되고 중화민국의 국민당 정부가 타이완으로 물러나면서 홍콩은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이번에는 고립이다. 그때까지 홍콩 인구가 본토의 정치적 변화에 따라 늘었다 줄었다 했던 이유는 아무도 홍콩을 ‘거주지’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홍콩에서 중국으로 난 문이 잠겨버렸다. ‘몇 년 버티다 내전이 끝나면 고향으로 돌아가야지’라고 생각하며 홍콩으로 온 피난민들이 꼼짝없이 홍콩에 갇혀버렸다.
ㆍ중국 문화혁명의 영향과 홍콩인의 자부심
중화문명의 전통이 가루가 되는 데는 10년이면 족했다. 수많은 문화유산이 불타고 버려지던 문화혁명기에 뜻있는 몇 사람이 서적과 유물을 홍콩으로 옮겼다. 그리하여 공자와 관우關羽와 바다의 여신 천후天后가, 그리고 풍수지리 등의 사상이 홍콩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한때 모든 중국인이 사랑하던 경극이 노동극으로 전락하자 홍콩은 그것 또한 품어냈다. 노동절과 국경일 연휴에만 쉴 수 있는 사회주의 중국에 맞서서 춘절, 단오, 청명절, 칠석, 중추절, 중양절 같은 명절을 사수하며 용선龍船 축제를 즐기고 월병을 나눠 먹는 일도 고스란히 홍콩의 몫이 되었다. 중화 5000년의 전통이 홍콩에 모여 명맥을 잇고 성장했다. 홍콩은 전통을 현대화하는 일에 앞장섰다. 경극 속 초패왕의 무술 실력은 홍콩 무협 영화에 등장하는 춤사위 같은 무술 연기의 원형이 되었다. (…) 중국이 정신없이 내부의 혁명을 수행하며 미제와 싸우자고 외치고 있을 때, 중국 민족의 원수는 미국이 아니라 두 차례(청일전쟁과 중일전쟁)나 중국을 침략한 일본이라는 사실을 떠올린 곳도 홍콩이다. (…) ‘전통문화의 계승자’라는 홍콩인의 문화적 우월감을 본토의 중국인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홍콩인을 수전노로 취급하는데, 사회주의 중국이 수십 년간 망가뜨린 전통을 지켜낸 곳이 영국의 식민지인 홍콩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ㆍ“우리는 훨훨 살고 싶다.” 천안문광장과 연대한 홍콩인들
1989년 6월 4일, 전 세계는 중국 인민해방군이 인민을 학살하는 광경을 똑똑히 지켜봤다. 외부에서 보기에 천안문 학살은 중국 체제의 야만성을 드러낸 일이다. 하지만 8년 후 중국의 일
부가 될 홍콩인에게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사건이었다. 떠날 수 있는 사람은 캐나다나 호주, 미국으로 이민을 갔지만 나머지는 어떻게든 홍콩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쳤다. 코즈웨이베이에 있는 빅토리아공원에서는 연일 중국의 만행을 규탄하는 시위가 열렸다. (…) 당시 홍콩과 중국의 접경은 밀수꾼의 천국이었다. 수입을 규제하면 오히려 밀수품의 가치만 오를 뿐이었다. 새로 등장한 중국의 부자들과 공산당 고위 관료들은 수입 전자제품과 사치품을 홍콩에서 밀수했다. 홍콩 경찰과 중국 공안은 법 집행보다는 주머니를 불리는 데 관심이 컸다. 밀무역은 홍콩 삼합회三合會의 주요 수입원이 되었다.
어느 날 이 밀수로를 유심히 지켜보던 홍콩의 한 활동가가 천안문의 학생운동 지휘부를 광둥성까지 데려와 홍콩으로 들어오게 할 방법을 생각해냈다. 홍콩에서 홍콩 경찰에게 체포되면 중국으로 신병을 넘기지 않는 불문율에 착안한 것이다. 이른바 ‘노랑새 작전Operation Yellow Bird’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 이 작전으로 21명의 주요 수배자 중 일곱 명을 비롯해 500~800명의 반체제 인사가 홍콩으로 탈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