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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61571102
· 쪽수 : 276쪽
· 출판일 : 2020-10-20
책 소개
목차
l. 모르는 만남
섬의 여우
산책
한 사람
감자와 나
결전
나를 안다고 하지 마세요
2. 쉬운 어긋남
우연의 도시
도끼는 도끼다
비밀
징후
왜?
사과
3. 따가운 얽힘
두 자매
세 자매
왕 놀이
호모 그 무엇이든
천사의 벌
4. 희미한 열림
랍스터 도난사건
낙차
친구에게 가는 길
재회
신입사원
혁명
5. 얕은 던져짐
그저 우연일 뿐이겠는가?
개와 개
모의
개와 사람
이유 있는 길
작가의 말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그럼 감자를 껍질째 삶아 먹든지, 생으로 갈아 먹으면 고생도 하지 않고 좋지 않았겠냐고? 지당하신말씀이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비이성이나 억지라고만은 할 수 없는 성향 혹은 취향이라는 게 있다. 누군가는 반드시 모서리가 둥근 지갑이나 노트를 사야만 만족하고, 누군가는 꼭 문을 등지고 앉아야만 마음이 편하다. 앞머리를 내리지 않으면 불안해서 한 발짝도 걸을 수 없는 사람이 있고, 단추나 지퍼를 모두 잠그면 답답해서 미치는 사람이 있다. 나는 무조건 감자채볶음이 먹고 싶다. 그러니 관심과의 구분이 몹시 애매한 간섭이라면 거두어주시라. (「감자와 나」)
나는 결코 당신들이 디즈니 만화영화 따위에서 그리는 작고 예쁜 인형이 아니랍니다. 나는 사실 다정하지도 깜찍하지도 않으며, 맑은 이슬에 목을 축이지도 않고 초저녁 달빛에 몸을 씻지도 않습니다. 나는 생물학적 계통상 분명 ‘쥐’에 속한답니다. 그러므로 나는 아직 깃털도 마르지 않은 새끼 새나 이제 곧 부화를 시작하려는 알, 심지어 작은 도마뱀이나 개구리까지 아주 맛있게 먹어치울 수 있답니다. 그렇습니다. 설치류에 속하는 나는 당연히 육식을 합니다. 도토리나 호두만을 굴리는 게 아니라 떨어진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해 고기도 뜯고 피도 마십니다. (「나를 안다고 하지 마세요」)
진이 캔들하우스 대신 쿠키하우스를 택한 건 더 이상 추억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였다. 과자로 만든 집은 진과 나의 입, 그리고 적절한 소화기를 거쳐 항문으로 빠져나간 후 사라졌다. 진은 자신이 떠난 자리에 흔적이 남지 않기를 바랐다. 함께 있음을 축복하며 마시던 맥주를 치워버린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죽은 화분을 정리한 건, 진이 떠난 후 내가 울음이라도 터뜨릴까 싶어 배려한 차원에서였을 것이다. 나는 사랑이 끝나가는 징후 중 어느 하나도 제대로 눈치채지 못했다.
사랑은……. (「징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