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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독일소설
· ISBN : 9791162181973
· 쪽수 : 272쪽
· 출판일 : 2022-04-07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소년은 나귀가 쉬는 동안 계속해서 나귀의 목덜미를 쓰다듬어주었다. 하지만 다른 나귀들은 멈춰 서지 않았다. 무리 가운데 두 번째로 달리던 아이가 소년을 앞질렀다. 길을 가는 내내 소년의 뒤에서 따라왔던 아이는 자신이 선두에 선 것이 무척 좋았다. 앞질러가는 아이의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세 번째로 달리던 아이도 소년을 추월했다. 마찬가지로 네 번째도, 다섯 번째도…. 그러나 소년은 동요하지 않고 계속해서 나귀의 목덜미만 쓰다듬어줄 뿐이었다.
“우리는 쉬었다 가자. 편안하게 쉬렴. 너는 휴식을 누리는 게 마땅해.”
소년은 미소를 지으며 계속 나귀를 쓰다듬었다. 나귀는 평온하게 풀을 뜯었고, 다른 나귀들이 앞질러가게 내버려두었다 _〈프롤로그〉 중에서
‘돌아간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톰은 생각했다.
‘아무것도 없는 그 인생으로 돌아간다? 그런 인생이 무슨 의미를 가질까?’
톰은 계속 이런 물음들을 곱씹었다. 아버지가 살아 있었다면 틀림없이 답을 주었을 텐데…. 따지고 보면 답은 낙관주의자가 주는 것이리라. 오로지 흔들림 없는 낙관주의자만이 항상 답을 줄 수 있다. 인생이 침묵할 때조차.
‘산다는 게 의미가 있을까?’
톰은 아버지에게 이것만큼은 꼭 물어보고 싶었다. 그는 조수석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추억할 수 있는 물건이 놓여 있었다. 호주머니에도 넣을 만한 아주 작은 상자였다.
“빠르든 늦든 누구나 이곳을 찾아오게 마련이죠.”
톰은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노파는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방향을 잃고 헤매는 사람들.”
노파는 톰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늘 네판테(Nepanthe)를 찾아오죠.”
톰은 바깥에서 보았던 기묘한 이름을 다시 떠올렸다. ‘네판테’는 현관문 위쪽 나무 테두리에 새겨져 있던 이름이다. 도대체 무슨 뜻을 가진 이름일까? 톰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노파를 보았다.
“잠깐만 기다려요, 곧 알게 될 테니. 지금은 일단 뭘 좀 먹어야죠? 배가 무척 고플 텐데요.”
노파는 톰을 이끌고 쇠 접시 가까이에 있는 작은 탁자들 중 한 곳으로 데려갔다. 장작불은 따뜻했고, 그 앞에 앉아 있는 동안 젖은 옷이 천천히 말랐다. 장소가 여전히 기묘하기는 했지만, 톰은 편안하고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