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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91163025610
· 쪽수 : 464쪽
· 출판일 : 2022-02-21
책 소개
목차
Chapter 1. 다시 시작하는 열두 살
Chapter 2. 진짜 아버지
Chapter 3. 그 남자, 자이거 대공
Chapter 4. 로젤리타의 함정
Chapter 5. 비앙카의 비밀
Chapter 6. 황궁으로의 초대
Chapter 7. 명명식
Chapter 8. 에잇틴 어게인
Chapter 9. 내 가이드가 되어라 (1)
저자소개
책속에서
높은 탑의 꼭대기에는 세찬 바람이 불었다. 창틀 위로 올라선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세찬 바람이었다.
바닥을 내려다보자 눈앞이 핑 돌았다. 율리아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비릿한 피 맛이 났지만 느끼지 못했다. 다리가 벌벌 흔들리고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렸다.
사실은, 죽고 싶지 않다.
사랑하는 만큼 사랑받고 싶었다.
그러나 그게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으니까, 이 비참한 생을 더 이어 나가고 싶지 않았다.
‘황비가 되면, 더 비참해질 뿐이야. 알렉산더는…… 나를 때려죽일지도 몰라. 아니, 죽일 거야. 시간문제겠지. 내 남편이 나를 언제 죽일까 벌벌 떨며 살고 싶지 않아. 나를 남보다 못하게 여기는 가족의 애정을 구걸하며 살고 싶지도 않아.’
율리아나는 눈을 부릅떴다.
첨탑의 난간 위로 올라서자 사방이 캄캄했다. 먹구름이 낀 하늘마저 검었다. 위도 아래도 모두 새까만 어둠.
‘캄캄해. 어두워. 무서워. 하지만, 이번만 힘내면 돼.’
이번만 힘내면, 더는 힘내지 않아도 된다.
힘내서 버티며 살아가지 않아도 된다.
버틸 뿐이기만 한 삶은 싫다.
살짝 미소 지은 율리아나는 그대로 어둠 속으로 뛰어들었다.
잠시 공중을 유영했던 몸이 그대로 아래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죽는 건 무서웠지만 죽은 후에 자신을 미워하지 않는 먼저 떠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그리 무섭지 않았다.
‘엄마. 이제 엄마 곁으로 가요.’
엄청난 속도로 추락하며 율리아나는 환하게 웃었다.
퍽!
제 머리에서 나는 것 같지 않은 커다란 소리와 함께 의식이 멀어졌다. 새빨갛게 물든 시야가 가물거렸다. 천천히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이게 죽는 거구나. 생각보다 괴롭지 않네.’
지금 느끼는 고통보다, 아버지의 냉대가 더 아팠다. 휴렌의 싸늘한 눈초리가, 바이델의 폭언이 더 아팠다. 안젤리카에겐 더없이 다정한 남자인 알렉산더가 제게만 세상에서 가장 잔인해지는 남자인 게 더 아팠다.
그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라는 사실이 더 아팠다.
‘고통 없는 세계로 가고 싶어…….’
이런 선택을 한 죄인을 신께서 거두어 주시길 바라는 것도 사치일까. 죽어 가는 와중에도 눈물이 흐르는 게 우습다고 생각하던 찰나.
“……리아나! 율리아나!”
누군가 다급히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다급히 자신의 상처를 틀어막으려 애를 쓰는 몸짓이 느껴졌다.
‘누굴까? 설마 아버지? 오빠?’
더 궁금해할 새도 없이 율리아나의 눈앞이 새까맣게 물들었다.
암전.
죽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