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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추리/미스터리소설 > 한국 추리/미스터리소설
· ISBN : 9791163164203
· 쪽수 : 260쪽
· 출판일 : 2022-11-25
책 소개
목차
임규리 「시체꽃」
정재환 「네 이웃을 사랑하라」
하은경 「네레이스」
이규락 「누시」
구현 「오 분의 세계」
장희가 「봄날, 히어로」
저자소개
책속에서
마음이 가라앉자 꽃의 모습이 더욱더 자세히 보였다. 수잔은 온 정신력을 끌어모아 꽃을 찬찬히 살폈다. 솔직히 말하면 이 낯선 꽃 앞에서 수잔이 가진 식물학 지식의 절반은 필요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어?
영현은 수잔이 꽃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다 좁은 방 안을 왔다 갔다 하고, 손가락으로 딱딱 소리를 내거나 손뼉을 치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저기, 박사님? 혹시 뭐 하시는…….”
한참 만에야 영현은 의문이 가득한 목소리로 수잔을 불렀다. 수잔이 이 상황에 대해 바로 답을 내려줄 거라는 기대는 애초에 하지 않았지만, 저런 장면을 기대한 것도 아니었다.
“영현 씨, 봐봐요.”
잔뜩 흥분한 수잔이 영현의 팔을 잡아끌었다.
“보이세요? 이 꽃은 인간처럼 숨 쉬고 있어요. 여기 오르락내리락하는 거 보여요?”
정말이었다. 꽃은 마치 사람이 숨을 쉬는 것처럼 일정하게 조금 부풀었다가 가라앉길 반복하고 있었다. 숨을 죽이자 잔뜩 가래 낀 듯한 나지막한 숨소리도 들렸다.
“그것만이 아니에요. 눈과 귀가 어디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를 보고 있고, 소리도 듣고 있어요.”
- 「시체꽃」 중에서
녀석이 땅바닥을 툭툭 걷어차며 투덜거렸다.
“그니까 왜 죽음을 선택할 수 있게 만들어놨냐고! 뻑하면 네레이스에 빠져 죽겠다잖아. 그러면 헤븐 개발자들만 떼돈 버는 거지. 남은 사람들은 다 어쩌라고!”
가까스로 내가 답했다.
“걱정 마라. 그곳엔 안 빠질 테니까.”
규현이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그럼, 헤븐에 자주 들어가지 마.”
녀석을 곁눈질했다. 내 눈빛을 보며 규현이 재차 덧붙였다.
“네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솔직히 걱정된다. 네레이스는 스스로 선택하는 게 아니어도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빠져드는 곳이야. 자살하는 사람들이 마지막 순간에 환영을 보고 죽는 것처럼.”
“무슨 소리야?”
“너, 물에 빠져 죽은 사람들이 마지막 순간에 뭘 보는 줄 아냐?”
“몰라…….”
“그 사람들은 마지막 순간에 환영을 본대. 거센 물줄기가 자신들을 마구 덮친다고 생각하는 거야. 제 발로 빠져든 게 아니라 물이 덮쳤다고 착각하면서 죽는 거라고. 그만큼 절박했다는 뜻이겠지. 물에 빠져 죽으려다 살아난 사람들이 하나같이 그렇게 말하는 걸 잡지에서 본 적이 있어.”
잠시 뜸을 들이더니 규현이 이어 말했다.
“네레이스도 마찬가지야. 너는 안 들어가겠다고 하지만 네 의지와 상관없이 홀려 빠질 수도 있다고. 그러니까 헤븐에 너무 자주 들어가지 마.”
- 「네레이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