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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외국에세이
· ISBN : 9791164710324
· 쪽수 : 292쪽
책 소개
목차
01 광란의 수요일
모든 것이 시작된 날 … 009
토끼 굴로 떨어지다 … 021
양극의 세계 … 037
예술가이자 암살자 … 043
02 화염 속으로
마음의 산을 오르다 … 055
은유의 세계에서 … 069
나의 구원자들 … 084
죽음의 그림자 … 101
03 동요하는 영혼
메르쿠리우스와 헤르메스 … 119
트릭스터의 흔적 … 139
광기가 원하는 것 … 146
04 영혼의 빛
광기, 언어, 그리고 시 … 163
내 마음은 헐벗은 겨울 산에 있었다 … 175
치명적인 눈사태 … 188
한밤의 꿈에서 깨어나다 … 200
05 고요한 비행
나를 추스르기 위해 … 211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 … 220
생의 한가운데 … 231
영혼에 달린 날개 … 242
조울증과 지내며 쓴 시 … 249
감사의 말 … 290
책속에서
광기의 원인은 무엇이며, 광기는 언제 드러나는 걸까? 비극이 극적인 사고와 배경, 주인공을 파멸로 이끄는 비극적 결함이 모여 이야기가 진행되듯 광기도 이와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 극적인 사고에 해당하는 촉발 계기, 배경이 되는 장기간의 스트레스, 비극적 결함인 유전적 소인이 결합하면 광기가 드러난다. 내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오랜 기간에 걸친 스트레스와 유전적 소인이 있었고 계기가 될 만한 일도 겪었다.
내 정신! 내가 산산조각 냈어! 머릿속이 텅 비었다. 불이 나고, 홍수가 몰아치고, 폭탄이 터지고, 쓰나미가 닥친 후처럼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현관문으로 가면서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려고 했다. 이런 적이 없었으니, 이런 일이 일어날 리 없어. 소용없었다. 비명은 애원으로 바뀌었다. 제발 멈춰 주세요. 서재를 기어다니며 바닥을 치고 울부짖은 일이 선명히 기억난다. 정신을 잃고 있어. 미쳐 가고 있어. 제정신이 아니야. 이후 열두 시간 동안 나는 정신 착란 상태에 빠졌다. 낄낄대며 웃다가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고, 감정이 솟구치다 추락했다. 몇 분 사이에 기분이 오락가락했다. 짜릿한 황홀감에 젖었다가도 극심한 고통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해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바로 이날이 내가 완전히 정신을 잃은 광란의 수요일Wednesday, 프랑스어로 메크레디mercredi, 메르쿠리우스를 만난 날이었다.
또 다른 질문이 생겼다. ‘조울증을 겪는 사람’을 구분하는 조울증만의 특성이 있다면, 그 특성은 개인의 고유한 정체성과는 별개가 아닐까? 조울증을 겪는 사람들은 비슷한 과정을 거치지만, 그 증상은 개인마다 뚜렷한 차이를 보이며 다르게 발현된다. 그렇다면 조울증을 단순히 개인의 정신세계로 생각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여러 형태로 발현되는 예술처럼 조울증도 소통을 원하고 자신을 표현하고자 한다. 따라서 조울증을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자아의 경계를 뛰어넘어 외부와 소통하고자 하는 인간의 ‘보편적인 정신세계’의 관점에서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