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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91165342944
· 쪽수 : 616쪽
· 출판일 : 2021-02-03
책 소개
목차
01 핏빛 토요일
02 사라져야 해
03 알콘
04 첫 만남
05 영혼의 여왕에게
06 탈출
07 칠판싱고
08 라 레추사
09 침묵
10 피할 수 없는 선택
11 바퀴 달린 짐승
12 카사 델 미그란테
13 소문
14 뛰어내리다
15 동행
16 두 자매
17 로렌소
18 마르타
19 엘메르
20 계획
21 먹잇감
22 몸값
23 다시, 시작
24 조금만 더
25 베토
26 노갈레스
27 코요테
28 그의 흔적
29 솔레다드
30 국경을 넘다
31 사막 횡단
32 폭우
33 낙오
34 동굴
35 엘 엘
36 19번 도로
에필로그
작가의 말
리뷰
책속에서
맨 처음에 발사된 총알 중 하나가 루카가 소변을 보려는 변기 위의 열린 창문으로 날아든다. 루카는 그것이 총알인 줄도 모른다. 미간에 총알이 박히지 않은 이유는 순전히 운이 좋아서다. 자신을 지나친 총알이 뒤쪽 타일 벽에 부드럽게 박히는 소리도 듣지 못한다. 하지만 그 후에 이어진 총알 세례는 귀청이 떨어질 듯 요란해서 헬리콥터 날개가 돌아가는 듯한 두두두, 탕탕, 딸칵딸칵 소리가 울려퍼진다. 비명도 쏟아지지만 오래가지 못하고 이내 총격으로 전멸된다. 루카가 바지 지퍼를 올리고 변기 뚜껑을 내린 다음 그 위에 올라가 창밖을 내다보기도 전에, 저 끔찍한 아우성의 원인이 무엇인지 확인하기도 전에 욕실 문이 활짝 열리더니 엄마가 나타난다.
“미호, 이리 와.” 엄마가 어찌나 나직이 속삭이는지 처음에는 알아듣지 못한다.
엄마는 거친 손길로 루카를 샤워실 쪽으로 몬다. 루카는 샤워실로 올라가는 계단에 발이 걸려 앞으로 넘어지고 손으로 바닥을 짚는다. 엄마도 덩달아 넘어지면서 루카를 덮치는 바람에 루카의 아랫입술이 이에 찔려 찢어진다. 루카의 입에서 피 맛이 난다. 샤워실 바닥에 깔린 연초록색 타일 위로 핏방울이 붉고 작은 원을 그린다. 엄마는 루카를 샤워실 구석으로 밀친다. 이 샤워실에는 문이나 커튼이 없다. 그저 욕실 한쪽 귀퉁이에 타일 벽을 칸막이처럼 하나 더 세웠을 뿐이다. 높이가 168센티미터, 폭이 90센티미터쯤 돼서 둘을 가려줄 수 있다. 운이 따른다면. (핏빛 토요일)
“그들이 나도 죽일 거예요.” 이 말을 내뱉은 후에야 리디아는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형사는 반박하지 않는다. 대다수 동료―정확히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그건 중요치 않다―와 달리 그는 카르텔로부터 뇌물을 받지 않고 아무도 믿지 않는다. 사실 지금 이 순간 사건 현장인 집과 정원을 돌아다니며 탄피가 떨어진 자리를 표시하고, 족적을 검사하고, 피가 튄 자국을 분석하고, 사진을 찍고, 맥박을 확인하고, 리디아의 몰살된 가족들 시신 위로 성호를 긋는 스물네 명이 넘는 경찰과 의료진 중 일곱 명이 이 지역 카르텔로부터 정기적인 뇌물을 받고 있다. 이 불법 수당은 정부가 주는 월급보다 세 배나 많다. 사실 이미 한 명이 헤페에게 리디아와 루카가 살아 있다는 소식을 문자로 전했다. 나머지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바로 그러라고 카르텔이 돈을 주기 때문이다. 그저 제복을 입고 돌아다니면서 상황이 잘 통제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라고. 몇몇 사람은 그런 현실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만, 나머지는 아예 느끼지도 않는다. 어차피 그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으므로 그들이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는 별로 중요치 않다. 멕시코에서 미해결 범죄율은 90퍼센트를 훨씬 넘는다. 제복 입은 경찰의 존재는 카르텔이 전혀 처벌받지 않는 현실을 은폐하는 데 꼭 필요한 반 환상을 제공한다. 리디아는 이 사실을 알고 있다. 모두가 알고 있다. 리디아는 지금 당장 여기를 빠져나가야 한다고 마음먹고 앉아 있던 갓돌 위에서 벌떡 일어난다. 놀랍게도 다리에 힘이 하나도 없다. 형사는 리디아에게 공간을 주려고 뒤로 물러선다.
“제가 살아 있다는 걸 알면 그가 다시 사람을 보낼 거예요.” 그러자 가슴이 욱신거리며 기억이 되살아난다. 마당에서 “아이는?” 이라고 외치던 목소리. 리디아는 다리가 후들거린다. “그가 내 아들을 죽일 거라고요.” (사라져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