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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일의 신 택리지 : 충청

신정일의 신 택리지 : 충청

(두 발로 쓴 대한민국 국토 인문서)

신정일 (지은이)
쌤앤파커스
2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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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일의 신 택리지 : 충청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신정일의 신 택리지 : 충청 (두 발로 쓴 대한민국 국토 인문서)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문화/역사기행 > 한국 문화/역사기행
· ISBN : 9791165347765
· 쪽수 : 552쪽
· 출판일 : 2023-08-22

책 소개

대한민국 도보답사의 선구자 신정일 작가가 전국 방방곡곡을 직접 걸으며 완성한 도보답사기 《신정일의 신新 택리지》 시리즈의 여덟 번째 책 ‘충청’ 편이 출간되었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충청도에 대해 “산천이 평평하고 아름다우며 서울과 가까워 풍속에 큰 차이가 없으므로 터를 고르면 가장 살 만하다”고 했다.

목차

개요 _ 시간을 품고 마음을 낳는 충청도 : 천년의 맑은 바람 대를 이어 불다

1 풍요로운 삶의 터전 내포 : 우연히 만나는 아름다운 고장
내포, 가야산 아래 열 고을 | 비운의 성 예산 임존성 | 추사 김정희와 윤봉길 의사의 고향 | 용봉산 자락 암벽에 새긴 불심 | 발을 걷으니 구름이 산봉우리에서 나오고 | 서산 해미읍성의 빛과 그늘 | 마애불이 전하는 백제의 미소 | 마음을 열고 가는 개심사 | 무학이 달을 보고 깨달음을 얻은 간월도 | 나무숲이 아름다운 태안 | 왕실의 숲이었던 안면도 | 호서의 거읍 홍주 | 훌륭한 인물들의 고향 홍성 |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 정약용의 홍주 오죽헌 | 사금이 많고 시장이 컸던 광천

2 청양에서 서천에 이르는 길 : 지천구곡이 간직한 오랜 숨결
바람 맑고 달 맑은 청양 | 이몽학의 난 | 대가람의 옛터 성주사지 | 청라에서 태어난 천재들 | 창망한 바다와 면한 남포 | 세모시가 아름다운 서천의 한산 | 마량리 푸른 바다와 붉은 동백

3 시작의 땅 공주와 부여 : 백제의 도읍 웅진과 사비성
백제의 중흥을 꿈꾸던 공주 | 금강을 따라 흐른 역사 | 고마나루에는 곰이 없다 | 갑신정변의 주인공 김옥균 | 김옥균을 암살한 홍종우 | 금강 변에 들어선 세종특별자치시 | 김구가 숨어 지내던 마곡사 | 계룡산 계곡물은 쪽빛처럼 푸르고 | 새벽의 땅 부여 | 고란사 종소리 사무치는데 | 낙화암 낙화암 왜 말이 없느냐 | 임천에 있는 가림성 |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 불운한 천재의 마지막 은둔처 무량사

4 계룡산 높이 솟아 층층이 푸름을 꽂고 : 새 왕조의 꿈이 머물던 곳
염라대왕이 논산 사람에게 묻는다는 세 가지 명물 | 꼿꼿한 선비의 표상 김장생 | 놀뫼의 인물들 | 대한민국 남자들의 제2의 고향 | 신도안을 품은 계룡산 | 천호산에 얽힌 이야기들 | 팔괘정과 택리지 | 술잔 잡아 계백 장군에게 제사 올리고 싶으나 | 노성의 윤증 고택 | 은진의 서쪽 강경포구 | 나라 안에서 가장 큰 돌부처 은진미륵 | 갑천의 발원지 대둔산

5 사통팔달의 고장 대전과 천안 : 기억해야 할 땅과 사람들
교통의 요지 대전 | 동춘당과 남간정사 | 아나키스트의 고향 | 남적이 아산을 함락하고 | 천안 삼거리 흥 능수야 버들은 흥 | 소사하와 정유재란 | 말을 홍경사에 쉬게 하고 다시 옛 비문을 읽네 | 천안 아우내장터 | 땅이 기름지고 백성이 많은 아산 | 이순신이 살았던 곳 | 맹씨 집안이 사는 은행나무 집 | 외암민속마을 | 봉곡사에서 열린 성호 학회 | 솔밭 모양으로 솟아 있는 운주산

6 남한강 물길 따라 : 천하에 으뜸가는 물맛
달디단 충주 달천 | 남방의 목구멍을 질러 막은 곳 | 치열한 싸움터였던 중원 | 남한강 변에 있던 가흥창 | 번성했던 목계나루 | 탄금대에 서린 한 | 이연경과 원평리 석불입상 | 온천으로 유명한 수안보와 영남대로 | 청풍명월의 고장 청풍은 사라지고 | 의림지가 있는 제천 | 사랑을 간직한 박달재 | 단양은 옛 고을이라 산수가 빼어나고 | 바보 온달이 고구려 왕의 사위가 되어 쌓은 온달산성

7 세속을 떠난 속리산이 품은 땅 : 구비구비 흐르는 세월의 흔적을 찾아
산 좋고 물 좋고 인심 좋은 괴산 | 청천 선유동계곡 | 고개가 많았던 괴산의 연풍 | 연풍 현감 김홍도 이야기 | 깨달음의 연못에서 얻은 석불 | 비야 오지 마라 대추 꽃이 떨어지면

8 충청도와 경상도의 길목 : 추풍령 굽이마다 한 많은 사연
산 높고 물 맑은 옥천 | 성인이 주신 아들 송시열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 개혁가의 아내는 노비가 되어 | 학은 날아갔어도 누는 그대로 있고 | 삼도봉 넘어가는 장꾼 보게 | 무주 한풍루냐 영동 금호루냐 | 양산을 가세 양산을 가요 | 칡넝쿨 다리를 건너 영국사에 간 공민왕 | 아름다운 자풍당 글 읽는 소리 | 박연의 고향

9 미호천 주변의 고을들 :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이 한곳에
충청북도 서부를 질러 흐르는 미호천 | 유명한 음성 고추와 담배 | 살 제 진천, 죽어 용인 | 내륙 지방의 관문이었던 부강포구 | 대청댐과 문의 | 청주 취경루에 끌어들인 경치 | 청주에서 시작된 이인좌의 난 | 랜드마크 용두사지 철당간

저자소개

신정일 (지은이)    정보 더보기
문화사학자이자 도보여행가, 전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역사와 문화 관련 저술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작가이자 우리나라 산, 강, 섬, 바다, 자연을 40여 년 주유했던 대한민국 대표 도보여행자이다. 1980년 10월, 2년 6개월의 제주도 생활을 청산하고 전주에 자리 잡았다. 1980년대 중반 홍토현문화연구소를 발족해 동학과 동학과 동학농민혁명을 재조명하기 위한 여러 가지 사업을 펼쳤고, 1989년부터 문화유산답사 프로그램을 만들어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1994년 동학농민혁명 100주년 기념사업회에 참가했다. 한국의 10대 강 도보답사를 기획해 금강에서 압록강까지 답사를 마쳤고, 우리나라 옛길인 영남-관동-삼남대로를 도보로 답사했으며, 부산에서 통일전망대까지 걷고 해파랑길을 만들었다. 한국의 산 500여 곳을 오르기도 했다. 2005년 시작된 우리땅걷기 모임의 대표를 맡고 있으며, 포털 다음의 카페 ‘길 위의 인문학 우리땅 걷기’에 글을 올리고 있다. 전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전 산림청 국가산림문화자산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다. 저서로 《신택리지》 시리즈(11권)와 《왕릉 가는길》 《길을 걷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 《대동여지도로 사라진 옛 고을을 가다》 시리즈(3권), 여행자를 위한 도시 인문학 《전주·완주》, 《공주·부여》, 《꿈속에서라도 꼭 가고 싶은 곳》 《동해 바닷가 길을 걷다》 《가슴 설레는 걷기 여행》 《신정일의 동학답사기》 등 100여 권이 있다. JTV 전주방송 프로그램 ‘신정일의 천년의 길’에 출연했고, 유튜브 ‘길 위의 철학자 우리 땅 걷기’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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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개심사는 임진왜란 때 전화를 입지 않았다. 그러한 연유로 조선시대 건축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는 건물들이 여러 채 전한다. 보물로 지정된 대웅보전은 수덕사의 대웅전을 축소해 놓은 듯한 모습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의 주심포식 맞배지붕 건물인데, 우리나라 건축이 천축식에서 다포집으로 이행하는 과도기적 양식을 보여 주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보다 더욱 이 절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고 있는 건물은 심검당尋劍堂이라는 이름의 요사채다. 대웅보전과 같은 시기에 지어지고 부엌 채만 다시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이 요사채는 나무의 자연스러움을 한껏 살린 건물 중 나라 안에서 손꼽힐 만큼 아름답다. (…) 실제 규모는 크지 않지만 유서 깊은 사찰인 개심사를 두고 “자연의 흐름을 한 치도 거스르지 않으면서 마음껏 멋을 부린 옛 선인들의 지혜로운 마음이 제대로 표현된 절”이라고 누군가는 말했다.
- 마음을 열고 가는 개심사


무학은 태조와 함께 계룡산과 한양을 오가며 도읍지를 물색하고 천도하는 데 찬성했다. 무학은 조선 건국 초기 나라를 안정시키는 데 헌신하다 태종 5년(1405) 78세에 금강산 금장암金藏庵에서 입적했다.
무학이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의 일이다. 아버지가 나라에 진 빚을 갚지 못해 쫓겨 다니고 있었다. 포졸들이 아버지 대신 어머니를 붙잡아서 고개를 넘어가는데 갑자기 산기가 있었다. 그때 온 산천이 눈으로 덮여 있었으나 둘러보니 한 곳만 눈이 없어 그곳에서 해산하고 아기를 옷가지로 덮어 놓은 뒤 태안 현청으로 끌려갔다. 그 사실을 전해 들은 현감이 어머니를 풀어 주어 다시 그곳으로 가 보니 큰 학이 두 날개를 펴고서 아기를 감싸 안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크게 감격한 어머니가 아이의 이름을 ‘무학舞鶴’(후에 無學)이라고 지었으며, 그 고개를 ‘학이 돌본 고개’라 하여 ‘학돌재’라고 하게 되었다. 그 후 출가한 무학이 이곳 간월도에 암자를 짓고 수행하던 중 어느 날 문득 ‘달을 보고 깨달음을 얻었다’ 하여 이 암자 이름을 간월암看月庵이라 했다. 간월도에 절이 사라지고 터만 남아 있던 것을 안면 면장 박동래와 만공선사가 암자를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 무학이 달을 보고 깨달음을 얻은 간월도


그 뒤 인조 16년(1638)에 삼남 지역의 세곡을 실어 나르는 것이 불편하여 충청 감사 김육이 지금의 남면과 안면도 사이의 바닷길을 파서 안면도는 섬이 되었다. 섬이 되면서 안면도를 싸고도는 뱃길보다 200여 리가 단축되었다. 이것이 우리나라 운하의 효시가 되었으며, 이름을 백사수도白沙水道라고 불렀다.
그러나 1970년 나라 안에서 세 번째로 섬과 육지를 잇는 연륙교가 생기면서 배를 타지 않고도 육지로 나올 수 있게 되었다. 유독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리는 이곳에서 유명한 것이 바로 세계꽃박람회와 꽃지해수욕장 그리고 안면도 소나무숲이다.
고려 때까지만 해도 안면도에는 사람들이 살았다. 그런데 이 지역이 제주도처럼 말을 기르는 목장이 되면서 사람들이 쫓겨나고 말았다. 그 후 다시 사람들이 들어오게 된 것은 재목으로 쓸 나무를 심고 관리하기 위해서였다. 조선시대에 안면도는 섬 전체가 ‘왕실의 숲’으로 지정되어 온통 소나무숲이었다. 조선 조정은 왕실의 관을 짜는 데만 쓰기 위해 소나무를 비롯해 여러 종류의 나무를 심어 ‘황월장봉산黃月長封山’이라 하고 산지기 70여 명을 살게 했다. 그 뒤 자연스레 숨어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나 천재지변으로 땅을 잃은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마을이 조성되었다.
- 왕실의 숲이었던 안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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