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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동양철학 > 중국철학
· ISBN : 9791166840906
· 쪽수 : 316쪽
· 출판일 : 2024-02-20
책 소개
목차
일러두기
제3장 한대 전제정치하의 봉건 문제
1. 문제의 한정
2. 봉건과 초(楚)·한(漢) 흥망의 관계
3. 한대 봉건의 3대 변천
4. 봉건에 대한 전제의 억제 과정
5. 억제 과정에서 학술발전에 미친 중대한 영향
6. 학술사에서 동중서(董仲舒)가 뒤집어쓴 억울한 죄
7. 후한 전제정치의 계속되는 압박
원주
제4장 한대 일인(一人) 전제정치하의 관제(官制) 변천
1. 관제는 재상(宰相)제도를 골간으로 한다
2. 역사상 관제에서의 삼공(三公)·구경(九卿)에 대한 해명
3. 한대 관제의 일반적 특성
4. 관제 변천에 있어서 무제(武帝)의 핵심적 지위
5. 무제의 재상제도 파괴
6. 상서(尙書)·중서(中書)의 문제
7. 중조(中朝, 內朝) 문제에 대한 해명
8. 상서(尙書)는 전한시기에 내조신(內朝臣)이 아니었다
9. 무제 이후 재상의 지위와 관제상 삼공(三公)의 출현
10. 광무제의 추가적 재상제도 파괴와 이후 전제하의 관제변천 구조
11. 광무제의 지방 군제(軍制) 파괴와 그 심각한 결과
원주
찾아보기
책속에서
한 문제(文帝)는 4명의 아들을 낳았는데 두(竇)황후가 경제(景帝)를 낳았고 나머지는 모두 왕으로 봉하였다. 경제는 14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왕(王)황후가 무제(武帝)를 낳았고 나머지는 모두 왕으로 봉하였다. 무제는 6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위(衛)황후가 여(戾)태자 거(據)를 낳았으나 무고(巫蠱) 사건 때 죽었고, 조첩여(趙??)는 소제(昭帝)를 낳았다. 무제 원수(元狩) 6년(B.C.117) 아들 굉(?)·단(旦)·서(胥)를 동시에 왕으로 책봉하였다. 이 3대에 걸친 봉건은 모두 “제후왕”의 성격을 띤다. 그러나 고조 때와 다른 점은 (1) 한의 지방정치는 이미 점차 기반이 마련되어 중앙에서 직접 통제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들 왕의 봉건에 “천하를 진무(鎭撫)한다”는 의미는 없었다. (2) 왕으로 봉해진 자가 모두 왕자라는 점은 이후 천자의 아들을 모두 왕으로 봉하는 국면을 열었다.
옥사의 발단은 회남왕 유안의 태자 유천(劉遷)이 그의 낭중 뇌피(雷被)와 “검술을 겨루다 뇌피가 잘못하여 태자를 찌르는” 사건에서 비롯되었다. 뇌피는 태자가 이 일로 오해를 할까 두려워 장안으로 가서 종군하여 흉노를 분격(奮擊)하기를 원했지만 유안은 뇌피의 낭중을 면직하였으며 이것은 매우 일반적인 조치였다. 그러나 원삭(元朔) 5년(B.C.125) 뇌피는 (도망하여) 장안에 도착하자 “글을 올려 자신의 입장을 해명하였고” 이에 무제는 “이 사안을 정위(廷尉)와 하남(河南)에게 내려보냈다. 하남에서는 이 사건을 조사하며 회남국 태자를 체포하려 하였다.” 이런 사소한 일로 회남국의 태자를 체포하는 것은 조금이라도 핑계거리가 있으면 오랫동안 품어 온 사전 모의를 실현하는 기회로 삼겠다는 뜻이 분명하다. ??사기??와 ??한서??의 서술 중간에는 회남왕의 문객 오피(伍被)의 자백이 삽입되어 있으며, 유안이 모반을 꾸미기까지의 과정을 진술하면서 유안을 세상 물정도 모르는 우둔하고 어리석은 무리로 묘사하고 있는데, 이것이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하고 그럴듯한 장식을 덧입혀 꾸며 낸 문장이라는 것은 너무도 명백한 일이다.
선제는 민간에서 영입된 자로, 곽광이 죽은 후 친히 정사를 돌보며 전력을 다해 나라를 다스렸다. 5일에 한 번 직접 관료들로부터 국사에 대한 보고를 받았고, 항상 선실전(宣室殿)에 나아가 재계하고 안건을 처리하였으며, 공적이 있는 자에게는 반드시 상을 주고 죄지은 자에게는 반드시 벌을 주는, 중흥(中興)을 이룬 군주로 일컬어졌다. “대장군”에 의한 정치 전횡의 화를 경계하여 정권은 형식상으로 대장군 같은 내신(內臣)에서 다시 재상의 수중으로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