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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중력

그리운 중력

강영은 (지은이)
황금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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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중력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그리운 중력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68151161
· 쪽수 : 144쪽
· 출판일 : 2025-06-30

책 소개

시집 『그리운 중력』에는 최소 3개 이상의 독립적인 공간들이 존재한다. 어떤 공간은 여기와 저기, 현재와 과거의 차이를 중심으로 직조되어 있고, 어떤 공간은 삶과 죽음, 그 속에서 ‘나’의 기원과 근거를 반추하는 실존적 물음으로 채워져 있다.

목차

1부 그리운 중력重力

그리운 중력重力·12
나의 애인·14
섬망譫妄의 숲·16
The Tree Of Life·19
우로보로스·22
시계의 미래·24
나의 두개골·26
대상 a·28
당신의 결심·30
회복기回復期·32
방문visitation·34
동행·36
언어言語·38

2부 여름밤이 남긴 것

여름밤이 남긴 것·40
가을 아침·42
시간의 나비·43
오늘 밤엔 바나나가 자라는구나·44
뫼비우스의 띠·46
알마게스트 벚나무·48
자연주의자自然主義者·50
갈마羯磨의 바다·52
지구가 달을 가릴 때·54
돛대·56
유리창의 내면·58
비의 수상식授賞式·60
개불알꽃·62
아름다운 오독·64

3부 눈물은 공평하다

눈물은 공평하다·68
봄의 시그널·70
나는 내게 가장 먼 상처·72
분재盆栽·74
개똥참외·75
백로전미발白露前未發·76
검정개·78
젖은 돌·80
무성무기양순파열음無聲無氣兩脣破裂音·82
사구沙丘 이야기·84
이것·86
이것은 ‘이것’을 해석한 시이다·88
고사은거도高士隱居圖·90

4부 지중해

지중해·92
에페소, 잿빛 고양이·94
깊은 우물·96
투즈괼·98
안탈리아·100
히드리아누스의 문·102
블랙홀 탈출 익스프레스·104
에스키모 인사·106
펭귄우체국·108
라쿠카라차La cucaracha·110
지구인·112
말테우리·114
시데, 시대時代·116

해설 | 고봉준_‘나’는 어디에 있는가·120

저자소개

강영은 (지은이)    정보 더보기
제주 서귀포에서 태어난 강영은 시인은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을 졸업(문학 석사)했습니다. 2000년 『미네르바』 등단 이후 주업은 주로 시를 쓰는 일이지만, 한국의 좋은 시 작품을 싣는 개인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시와 사진 그리고 에세이의 밭을 일구고 있습니다. 시집으로 『스스로 우는 꽃잎』 『나는 구름에 걸려 넘어진 적이 있다』 『녹색비단구렁이』 『최초의 그늘』 『풀등, 바다의 등』 『마고의 항아리』 『상냥한 시론(詩論)』 『너머의 새』 등과 시선집 『눈잣나무에 부치는 詩』, 에세이 『산수국 통신』 등이 있습니다. 2014년 아르코 문학창작기금을 받았고 2015년 세종우수도서, 2018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우수콘텐츠, 2024년 문학나눔 도서에 선정되었습니다. 문학청춘 작품상, 시예술상 우수작품상, 한국시문학상, 한국문협 작가상, 서귀포문학상 등을 받았습니다. https://blog.naver.com/kiroro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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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1부 그리운 중력重力

그리운 중력重力


평생 걷다가 한 번쯤 만나는 그대가 극지極地라면 함박눈 쌓이는 하룻밤쯤은 극지로 가는 열차를 꿈꾸어도 좋겠네.

기차보다 먼저 도착하는 기적 소리에 실려 한 번도 닿지 않은 그대 마음속, 극지로 떠나보는 것도 좋겠네.

함박눈 맞으며 걷고 있는 나는 여기 있지만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는지, 얼어붙은 빙하가 녹고 있는지

묵묵히 선 빙벽 아래 길을 내고 고요 속에 싹 트는 한 송이 꽃을 기다릴 수 있으리.

지구상에 홀로 남은 동물처럼 가다가, 서다가, 돌아서서 울다가 얼어붙은 대지와 한통속이 된들 어떠리.

발자국만 남긴 그림자처럼 흔적 없이 사라진 미증유의 존재면 어떠리.

만남은 여기보다 조금 더 추운 곳에서 얼어붙고 헤어짐은 여기보다 조금 더 따뜻한 곳에 닿고 싶어 하는데

마지막 남은 눈사람처럼 눈 감고 귀 닫고 오로지 침묵 속에서 그대에게 닿을 순간을 기다리네.

나 여기 포근한 함박눈 속에 누워 있으니, 그대 함박눈 속을 다녀가시라. 모든 길은 몸속에 있으니, 목적지目的地가 어디든 다녀가시라.

목숨이 오고 가는 길도 하나여서 녹아내리는 손바닥 위의 눈송이

나, 함박눈 같은 극지에 도착하네. 함박눈 쌓이는 하룻밤이 수목한계선에 꽃으로 피네.


나의 애인

나를 가장 많이 울리고
나를 가장 많이 웃게 하는 이가
나의, 애인입니다.
누구보다 나를 잘 알고
누구보다 나를 모르는 이가
나의, 애인입니다.
나의 표정과 감정을 살피거나
나의 외모와 마음을 지배하는 이가
나의, 애인입니다.
함께 쓰러지고
함께 일어서는 이가
나의, 애인입니다.
어제 했던 약속도
어제라는 독약도 모두 삼키는 이가
나의, 애인입니다.
매일 만나거나 죽어서도 만날 이가
나의, 애인입니다.
너무 많은 애인을 가져서
무겁습니다.
너무 많은 애인을 두어서
괴롭습니다.
아니 외롭습니다.
내가
나의, 애인이기 때문입니다.


섬망?妄의 숲

고라니는
소리의 본기本紀와 열전列傳을
갖는다.

어떤 소리가 고라니의 진짜 소리인지
고라니가 기술하는 소리의 내력을 알지 못하지만
고라니의 목청은
방울을 굴리거나 개처럼 짖어대거나 사람처럼
휘파람 불기도 한다.

개울가 풀숲에서 불쑥
튀어나온 고라니를 본다. 반가운 마음에
휘익, 휘파람 불자 방울뱀처럼 목젖 굴리며
개울 너머로 달아난다.

주고받은 소리 사이,
남아 있는


축축한 낙엽, 썩은 나무뿌리, 가시덤불, 막 돋아난 어린 새싹들,
망설임 없이 뛰어내린 동백 꽃송이들,
삶과 죽음이 어우러져
한층 풍만해진
소리의 바닥이 거기 있었다.

소리에 소리가 쌓여도
고라니의 눈높이에선 하늘이 보이지 않았을 거다.?
고개 들어 하늘을 본 적도 없었을 거다.

고라니를 다시 본 것은,
꿈인 듯 생시인 듯 내 울음을 불러내던
회복실에서였던가,

자신이 죽은 것도 모른 채 짖고 있는
고라니, 소리가 엉켜 있는
숲속에서
죽음에서 해방되지 못한 내 눈동자가
소리의 향방을 찾아
두리번거린다.

죽음을 처음 만난 것처럼
고라니는 부르는
크고 작은 목소리가 흩어진다.
그 소리는 내 목소리가 아닐 수도 있다.

고라니가 내 목소리를 어떻게 들었는지 알아야 한다.
내 목소리를 찾아내야 한다.
소리 없이 달아나는 소리를 찾아야 한다.

그래, 스며들 듯 사는 거다. 소리의 바닥에
다정하게 달라붙어 사는 거다. 이끼처럼,

한 번도 본 적 없는 숲속에
축축한 바닥에
내 소리의 영역을 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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