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68151253
· 쪽수 : 144쪽
· 출판일 : 2025-09-30
책 소개
목차
^^1부^
강릉·10
칠월·11
처녑·12
무한계단육면체·14
등·16
미음·18
나팔꽃·19
납매臘梅·20
새장·21
똥을 위한 사소한 반성·22
지금·24
누가 나를 이 숲에 혼자 세워놓았나·26
김치전·27
돌의자·28
빨강을 고백하다·30
파본破本·31
주름들·32
꽃기린·34
천년수담千年手談·36
보라를 헹구다·39
그 집·40
칼레이치의 유리창·42
산딸나무·44
^2부^
슬픈 알리바이·46
기별·48
슈바비슈할 중세 인형 박물관·50
우물, 십일월·52
사춘기·54
우산·56
처서處暑·57
자술연보·58
소행성 B-612·60
묵헌종택·61
피팅룸·62
벚꽃 유감有感·64
예후豫後·66
능소화·67
쥐똥나무·68
앵두·70
시집詩集·72
그·73
구멍가게·74
텀블위드·76
^3부^
이른 눈·78
섬·80
묵언默言·82
중이염·83
두루치기 백반·84
흉터·86
나팔꽃·87
그 남자·88
그냥 그렇다는 말이다·90
동지·92
적막의 둘레 한 뼘·94
창문 잎사귀들·96
차경借景·98
신행 오는 날·100
남산 돌부처·105
무인옷가게, 압구정·106
김치밥국 끓이는 아침·108
로즈힙·110
산양유 요구르트·111
늪·112
버슨분홍으로 저렇게 봄날은 가는데·114
나비국수나무·117
해설 | 이성혁_주름 또는 기억을 위한 음화와 양화·118
저자소개
책속에서
1부
강릉
편지는 일 년 만에 당도했다 작년 여름 바닷가에서 부친 편지였다 흰 봉투를 나이프로 뜯자 파도 소리 바람 소리와 함께 모래펄에 팬 낯선 발자국들이 동봉되어 있었다 내가 송부한 것은 눈부신 수평선과 수평선 끝에 눈썹처럼 걸린 흰 돛과 그보다 더 흰 팔월의 뭉게구름과 그 곁의 연필 밑그림 같은 낮달이었다 그런데 내가 평생 바다만 바라보는 해변의 낡은 우체통처럼 서서 받아 든 것은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 신새벽 꿈 같은, 해식애海蝕崖 너머 알 수 없는 곳으로부터 와서 괭이갈매기 무수한 울음 너머 알 수 없는 곳으로 사라지는 내 청춘의 휘파람 소리뿐이었다 파도에 닳아 조금씩 없어지는 모래펄의 낯선 발자국 같은 휘파람 소리뿐이었다 한때 누군가의 연인이었을 이의 뒷모습이 어느 황폐한 별자리처럼 자꾸 어두워지는 그해 여름 강릉 앞바다, 또는 내 청춘의 불온하고 아름다운 파일들
칠월
슴베 빠지듯 슴베 빠지듯
어린 마음 쑥! 빠져
늬가 영영 돌아나간 고샅길 어귀 저수지
어리연 부레옥잠 물그늘 따라
차라리 눈부셔라
은피라미 몇 오라기
회창회창 햇살에 제 몸을 헹구는
처녑
여름나기로 단골정육점에서 처녑을 샀다
소의 세 번째 위장인 처녑은
천 장의 잎새라는 뜻이랬다
검정 비닐봉지에 싸인 채 서너 근으로
갈무리된 전 생애의 중량
밀가루를 묻혀 아코디언 같은 주름을 치댄다
위장 하나 다스리는 일이
첩첩산중 만경창파를 이고 넘는 것 같다는데
어쩌자고 이 초식성 짐승은
깊고 어둔 위장을 네 개나 붙잡고 있는 걸까
쇠뜨기, 둑새풀의 독하고 푸른 숨결과
매미의 울창한 울음과
마지기 마지기 쏟는 작달비를 오래 되새김질했겠다
질기고 무더웠던 여름날을 견뎌내느라
크고 순한 짐승의 위장 같은
울음의 겹 안에 들어가 본 적이 있다
처녑 한 젓가락을 기름장에 찍는
적막한 허기의 저녁,
씹을수록 싱싱해지는 천 장의 이파리가
가망 없이 몸을 뒤집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