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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된 것 없는 공동체

공통된 것 없는 공동체

(한국 민주주의의 불가능성에 관하여)

박이대승 (지은이)
오월의봄
2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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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된 것 없는 공동체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공통된 것 없는 공동체 (한국 민주주의의 불가능성에 관하여)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한국정치사정/정치사 > 한국정치사정/정치사-일반
· ISBN : 9791168731721
· 쪽수 : 512쪽
· 출판일 : 2026-01-30

책 소개

전작 《‘개념’ 없는 사회를 위한 강의》 이후 9년 만에 펴낸 이번 책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불가능성’이라는 아포리아를 화두 삼아 한국의 현재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제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맞냐’는 반문은 한국 민주주의 내부의 문제를 직시하도록 이끈다.
인간적 가치 없는 교환관계
권리 없는 사회관계
이념 없는 정당
체계성 없는 법과 제도
공통의 규칙 없는 공동체
.
.
.
.
민주주의 없는 ‘민주주의 국가’의 현재

한국 시민들은 정말로 민주주의를 받아들이고 있는가?
그 민주주의의 정확한 내용은 무엇인가?


한국 시민들은 정말로 민주주의를 받아들이고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그 민주주의의 내용은 정확히 무엇인가? 이런 질문들은 한국 민주주의가 외부 세력에 의해 위협받고 있고, 따라서 시민들이 그것을 수호해야 한다는 식의 단순한 위기론을 거부한다. 2024년 12월 3일의 쿠데타 시도 역시 마찬가지다. 이재명 정부를 비롯해 ‘시민의 승리’를 칭송하는 이들 다수가 내란 사태를 외부의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는데, 과연 정말로 그러한가?

저자는 전작 《‘개념’ 없는 사회를 위한 강의》 이후 9년 만에 펴낸 이번 책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불가능성’이라는 아포리아를 화두 삼아 한국의 현재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제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맞냐’는 반문은 한국 민주주의 ‘내부’의 문제를 직시하도록 이끈다. 애초 (박근혜와) 윤석열을 지도자로 선출한 것은 한국 시민들의 민주주의적 투표였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결국 두 번의 대통령 탄핵이 보여주는 것은 한국 민주주의가 자기유지를 위한 정상적 조건을 결여하고 있다는 사실이며, 그렇다면 국정농단·내란 관련 세력을 척결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본래의 온전한 상태로 돌아가리라고 믿기는 어렵다.

책 제목인 ‘공통된 것 없는 공동체’란 합의된 공통의 기반/규칙이 부재하는 민주주의 공동체를 가리키는 역설적인 표현이다. 저자는 지금의 한국사회가 바로 이런 공동체에 해당한다고 분석한다. 즉 외형적으로는 민주주의 공동체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공동체이게끔 해주는 실질적인 공통 요소가 부재한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지금의 한국은 ‘민주주의 없는 민주주의 국가’라고 할 수 있다.

이 근본적인 문제를 명징하고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이 책에서 다루는 다음의 다섯 가지 주제다. (1) 사회적 약자의 문제를 전부 복수의 문제로 해결하려 하는 경향(가해자-피해자 도식의 기계적 적용), (2) ‘그 어떤 시민도 차별받으면 안 된다’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 무시되고 노골적으로 불평등을 지지하는 경향, (3) 민주주의가 심각한 위협을 받는 상황의 반복(국정농단, 내란사태) (4) 차별과 억압을 묘사하고 다루는 언어의 부정확함, (5) 내란 사태를 기점으로 극명하게 드러난 한국 민주주의 자체의 비정상성.

복수극에 열광하는 사회: 가해자-피해자 도식이 묻지 않는 것

1부에서는 한국 대중문화 창작물을 지배하는 ‘복수극 광풍’을 다룬다. 가해자인 빌런에 맞서는 히어로가 등장해 피해자 대신 복수를 실행하고 완성하는 복수극이야말로 대다수 창작물의 주류 장르로 자리 잡았다. 이런 장르의 핵심은 선악의 구별이나 히어로-빌런의 대립을 가해자-피해자 도식으로 환원한다는 점에 있다. 히어로는 피해자를 위해 법과 제도가 하지 못한 복수를 수행하는 정의로운 존재로 그려진다. 그러나 이것은 일반적인 의미와 전혀 다른, 가해자의 고통으로 실현되는 선과 정의다. 결국 흥행의 성패는 가해자에게 얼마나 잔인한 고통을 돌려줄 수 있는지, 가해자를 향한 관객의 분노를 얼마나 끌어낼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복수의 쾌감)

가해자-피해자 도식에 기초한 복수극은 단지 픽션의 구조가 아니다. 이제 이 관계 도식은 현실의 문제를 인식하고 다루는 기본 형식이 되었다. 저자는 이러한 관계 도식이 세월호 참사와 미투운동과 같은 대규모 참사, 사회적 폭력을 거치며 일반화되었다고 본다. 모든 문제가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물리적 개인 사이의 관계로 환원되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사건·사고나 폭력이 발생하면 사건의 성격과 상관없이 가해자 특정과 처벌 요구가 빗발치고, 이때 폭력 뒤에 놓인 구조와 배경은 잊히고 만다.

그러나 가해자-피해자 도식은 폭력의 문제에 상품 교환의 논리를 도입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즉 등가교환될 수 없는 등가교환하기 위해 인간의 고통이 가진 고유성을 삭제하고, 가해자와 피해자의 고통을 관객의 심리적 효과로 번역한다. 이 효과들의 등가교환, 즉 심리적 보상이나 상쇄를 통해 부채(죄)는 완전히 청산된 것처럼 보이게 되고, 피해자의 고통을 가해자의 고통으로 보상하는 것만이 유일한 대응책으로 남는다. 이런 식으로 상품 교환의 논리는 심리적 등가교환의 논리로 변형된다. 이를 인간적 가치에 대한 모독이라고 말할 수도 있는데, 인간의 고통이 오직 관객의 심리적 효과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복수극은 피해자의 존재를 가해자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하는 보조 장치 정도로 축소해버린다. 가해자에게 어떻게 고통을 줄 것인지에만 집중할 뿐, 피해자의 고통을 어떻게 재현할 것인지에는 관심이 없다.

“지금 한국을 지배하는 가해자-피해자 도식은 청산 불가능한 부채를 청산해보려는 헛된 집착이다. 나는 이런 집착이 상품 교환 논리의 확장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는 강한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한국사회는 돈을 주고 물건을 사듯, 빌린 돈을 받고 채무관계를 정리하듯 폭력의 부채관계를 손쉽게 청산하려고 하지 않는가? 가해자가 강력히 처벌받으면 그것으로 정의가 실현될 것이라는 발상은 얼마나 무책임한가? 가해자를 향한 분노는 하늘을 찌르지만, 폭력에 대한 공동체의 책임은 너무나 가볍게 다뤄진다.”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당신에게: ‘인간을 도구로 취급하라’

2부에서는 불평등을 노골적으로 지지하는 경향에 대해 논한다. 한국사회는 인간의 등급을 나누는 데 특화되어 있다. 개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 각자가 놓여 있는 사회적, 경제적 조건 모두가 차별의 기준으로 작동하는 탓에 개인 간의 평등한 관계가 무엇인지 이해하는 사람은 극소수다. 이곳을 지배하는 것은 오직 세상은 불평등하고, 계속 불평등해야 한다는 명령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토록 노골적으로 불평등을 지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수가 원하는 것은 불평등한 사회 그 자체라기보다 자신의 ‘부자 되기’와 신분 상승이다. 사회가 계속 불평등하게 유지되어야만, 자신이 그 불평등 구조의 위쪽으로 올라가 아래쪽을 내려다볼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흔히 거론되는 공정도 결국 이런 것이다.

‘이익을 위해 인간을 도구로 취급하라’는 명령 속에서 폭력은 사회적, 경제적 관계의 기본 형식이 된다. 여기서 여기서 폭력이란 인간을 사물로 대하는 모든 태도, 행위, 제도, 구조 등을 의미한다. 실제로 죽거나 다친 사람이 없어도, 인간을 소모품 취급하는 제도와 구조가 있다면 그 자체가 폭력이다. 지금의 한국사회를 규정하는 연속적이고 상대적인 불평등, 즉 월소득 300만 원을 버는 사람과 500만 원을 버는 사람, 아파트에 사는 사람과 임대 아파트에 사는 사람, 정규직 공장 노동자와 비정규직 하청업체 노동자에게서 드러나는 연속적 차이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폭력으로 드러난다. 타인도 나를 도구로 대하고, 나도 타인을 도구로 대한다.

불평등에 대한 긍정은 모든 개인이 인간과 시민이라는 점에서 평등하다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소득과 자산, 고용 형태, 교육 수준, 거주 지역과 형태, 성별과 성 정체성, 인종, 신체 조건 등에 따른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은 곧바로 정치적 불평등으로 이어지며, 모든 시민의 자유, 즉 ‘그 어떤 시민도 타인의 지배에 종속되지 않는 상태’를 위협한다. 개인 사이의 사회적·경제적 차이가 시민의 정치적 평등을 위협하는 상황은 민주주의의 결정적이고도 고질적인 문제이지만, 한국의 국가와 시민들은 평등을 위한 노력을 노골적으로 포기해왔다. 말하자면 지금 한국에는 정치적 불평등을 해소할 기본적인 장치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다. 그 결과 부자, 정규직 노동자, 주택 소유자, 남성, 이성애자, 비장애인 등이 공동체의 운영을 주도하고, 나머지는 정치적 참여에서 멀어지게 된다.

단순히 선거제도가 작동한다고 해서, 모두가 1인 1표를 행사한다고 해서 정치적 평등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식으로 통치하는 자와 통치받는 자가 점차 분리되고, 한국 민주주의는 민주주의 아닌 것이 되어간다.

전진을 멈춘 민주주의: 한국사회는 어디를 향해 움직이고 있는가

3부에서는 집단의 부분으로만 존재하는 개인, 사적인 것에 대한 공적인 것의 우위, 이념 없는 정당, 하위 계급의 목소리가 지워진 선거, 민주주의 모델의 부재 등을 다루며 한국 민주주의의 현재를 검토한다. 군부 독재가 무너지고 대의민주주의 제도가 도입된 이후에도 한국 민주주의가 여전히 전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근대 민주주의를 자유, 평등, 연대의 원리에 기초한 보편적 정치체제 모델로 이해한다면, 그리고 현실의 민주주의를 그 모델에 접근시키는 것이 ‘전진’이라고 한다면, 한국 민주주의는 전혀 그렇지 않다. 제도로서의 한국 민주주의는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과연 민주주의의 기본 조건을 충족하고 있는지는 불확실하다.

한국 민주주의 현재는 결국 우리를 다음과 같은 근원적 질문으로 인도한다. 서구 문화의 발명품으로 탄생한 민주주의 모델이 동아시아, 특히 한국에서 실현될 수 있는가? 민주주의 문화적 조건을 이식하는 작업은 복잡한 문제를 제기한다. 한국에 ‘서구 문화’를 이식한다는 것은 결국 한국 문화의 창조물을 한국에 설치한다는 말과 같다. 저자는 이 차이, 즉 한국인이 생각하는 ‘서구 문화’와 서구인이 생각하는 ‘서구 문화’의 차이가 민주주의 그 자체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즉 서구의 민주주의는 인민이 자기 자신을 통치하는 정치체제로 정의되지만, 한국의 민주주의는 오랫동안 독재 반대와 대의 제도의 수립으로 이해되어왔다. 그러나 군사독재 종식과 대의 제도는 인민의 자기통치라는 민주주의의 최종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일 뿐 그 자체가 목표가 될 수는 없다. 그 점에서 한국인은 수단을 목표의 자리에 올려놓았다고 할 수 있다.

인민의 자기통치를 목표로 하는 서구의 민주주의가 하나의 모델/원본/표준이라고 할 때, 한국의 민주주의는 당연히 그것을 모방하고 변이시켜 재창조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한국 민주주의의 문제가 그 모델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애초 그 모델을 향해 움직이지 않았다는 데 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어디’를 향해 움직이고 있는지 알 수조차 없다. 그저 독재자를 쫓아내고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투표로 선출하는 제도를 운영하는 것만으로는 ‘정치적 권리의 평등한 보장’을 실현할 수 없다. 이것이 한국의 사회관계 일반이 여전히 위계질서의 지배 아래 있는 이유다. 권리의 평등은 없고 위계 구조만이 존재하는 사회가 ‘민주주의’를 향해 전진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언어의 규칙을 거부하는 사회: ‘개념적 언어’ 없는 공동체는 불가능하다

4장에서는 한국을 지배하는 근본적 경향 중 하나인 규칙의 표준 체계에 대한 거부를 다룬다. 권리란 개인이 해도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정하는 규칙이다. 권리의 내용, 권리와 권리의 관계, 권리를 정당화하는 근거 등은 하나의 체계를 구성하지만, 한국사회의 행위 규칙은 권리의 체계를 따르지 않는다. 전통적 습관, 다수의 선호나 이익, 권력관계 등이 권리보다 우선한다. 그래서 노동자의 파업할 권리보다 이른바 ‘시민의 불편’이 더 중요하게 고려되고, 정치인은 ‘사회적 합의’를 운운하며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무시한다. 차별금지법 거부가 헌법적 권리의 부정이라는 사실 역시 진지하게 고려되지 않는다.

권리, 이념, 법, 제도, 민주주의 등이 규칙의 표준 체계로 존재하는 데 필수적인 것이 ‘명확한 규칙을 따르는 언어 사용’이다. ‘권리’ 개념에 기초하지 않고서는 권리의 체계를 수립할 수 없듯, 법과 제도가 하나의 체계를 이루려면 그것을 구성하는 수많은 용어의 의미부터 엄밀히 규정되어야 한다. 규칙의 체계를 거부하는 한국사회의 경향은 무엇보다 언어 사용의 규칙을 거부하는 것(반개념적 언어 사용)으로 나타난다. 말과 의미 사이의 고정된 관계를 거부하고 언어 규칙의 끊임없는 변이를 추구한다는 데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개념적 언어가 사용되어야 할 학술 영역이나 법과 제도에서조차 반개념적 언어가 난립한다는 데 있다. ‘주권’이나 ‘국민’처럼 헌법을 구성하는 개념 상당수는 물론이고, ‘인권’, ‘생명권’, ‘교권’ 등과 같이 분명 이론적 개념임에도 이론적 지식이 결여되어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렇다 보니 서로 분명히 구분되는 개념들이 혼란스럽게 뒤섞이고, 사람들이 같은 말로 서로 다른 의미를 지시하는 난장판이 벌어진다. 공적 논의를 위한 토대 자체가 부재하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레토릭으로 개념을 대체하는 ‘금수저’, ‘흙수저’, ‘안전불감증’, 내포는 빈약한데 외연은 과도하게 넓은 ‘갑질’, ‘남성 혐오’ 등 반개념적 언어 사용의 유형은 매우 다양하고 광범위하다. 이런 이유로 한국에서는 개념적 언어에 기초한 합리적 토론 자체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언어생활 전체가 이런 토론을 방해하는 방식으로 조직된다.

반개념적 언어 자체를 두고 좋다 나쁘다 평가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개념적 사용과 반개념적 사용 모두가 필요하고, 권력에 저항하는 대중운동은 반드시 반개념적 언어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동체의 규칙이란 결국 언어적 형태로 존재하기에, 언어의 규칙이 부재하면 공동체 유지에 필요한 공통의 규칙 역시 수립될 수 없다. 지금 한국의 문제는 규칙을 파괴하는 경향이 언어생활 전체를 지배한다는 데 있다. 언어의 규칙, 행위의 규칙, 제도의 규칙은 별개의 문제가 아니며, 따라서 권리에 기초한 사회관계를 만드는 작업은 ‘권리 개념’에 관한 표준적 이해를 수립하는 작업과 다르지 않다. 민주주의 공동체의 규칙 그 자체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개념적 언어의 공간을 확장해야만 한다.

한국 민주주의의 비정상성: 내란 사태는 ‘어디에서’ 발생했는가?

마지막 5장에서는 12·3 내란 사태에 관한 직접적 분석을 통해 한국 민주주의의 비정상성을 여러 측면에서 다룬다. 윤석열의 군사 쿠데타는 곧바로 저지당했고, 탄핵 이후 지금은 법적 처벌을 기다리고 있다.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한국 시민은 내란 세력에 맞서 싸우며 민주주의를 방어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 승리의 의미와 정상적 민주주의에 대한 문제가 충분히 논의되었는가는 또 다른 문제다.

저자는 우리가 무엇보다 내란이라는 위협이 한국 민주주의 외부에서 왔는지, 아니면 내부에서 탄생했는지를 질문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시민의 승리’를 칭송하는 이들 다수가 내란 사태를 외부의 위협으로 인식하지만, 윤석열의 쿠데타 시도는 결코 ‘외부 병원체의 침입’과 같은 것이 아니었다. (박근혜와) 윤석열이 애초 한국 시민들의 민주주의적 투표를 통해 선출되었다는 사실을 참고할 때, (국정농단과) 내란은 한국 민주주의 내부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두 번의 대통령 탄핵이 보여주는 바는 한국 민주주의가 자기유지를 위한 정상적 조건을 결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윤석열과 그 지지 세력을 통해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한국의 극우가 최소한의 이성과 합리성조차 철저히 거부한다는 점이다.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이성적 판단조차 하지 않는 윤석열 본인이 이를 잘 보여준다. 그의 결정과 행동을 설명하는 것은 항상 무속, 술, 음모론 따위다. 그런 맥락에서 내란 세력과 윤석열 지지 집단의 운동 방식을 가장 정확히 규정하는 개념은 ‘반이성’이다.

여기서 더욱 중요한 사실은 지금 한국에서 극우의 특징으로 간주되는 이 반이성이 극우만의 특징이 아니라는 점이다. 정기적으로 반복되는 부정선거 음모론을 비롯해 반페미니즘 집단의 손가락 모양 사냥, 한강 대학생 사망 사건(2021),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 사태(2016) 등 한국사회를 지배해온 것은 언제나 기괴한 음모론, 사이비 역사학과 같은 반이성과 감정의 논리였다. “한국에는 모든 종류의 합리성을 거부한 채 지속성과 일관성 없는 집단적 감정의 논리에 따라 흘러 다니는 충동적 흐름이 있다. (……) 망상이든 음모론이든 자신이 원하는 감정만 얻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 허용된다.”

내란 사태 이후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상황을 가장 정확히 설명해줄 수 있는 것은 이러한 감정의 논리이며, 그 점에서 윤석열과 그의 지지 세력은 한국의 일반적 특징을 극단적 형태로 폭발시켰을 뿐, 결코 예외적이거나 우발적인 존재가 아니다. 이들을 단순히 극우로 분류하는 것은 한국사회 일반의 문제를 특정 진영의 문제로 축소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합리가 비합리를 압도하고, 이성이 반이성을 통제하고, 우파와 극우가 구분되는 상태에 도달하지 않는다면, 한국 민주주의는 또다시 예상 불가능한 위협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 민주주의 공동체를 공동체이게끔 해주는 공통 규칙을 수립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 수단 중 가장 기초적이고 필수적인 것이 개념적 언어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던져야 하는 실천적 질문은 예컨대 이런 것이다. 어떻게 개념적 언어를 문화적 헤게모니로 구축할 것인가? 개념적 언어에 기초한 공적 논의 공간을 확보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목차

들어가는 말 4

1부 가해자-피해자 도식을 넘어

복수극에 열광하는 사회 · 14
감정 중독 사회 · 20
가해자-피해자 도식을 넘어 · 26
부채감으로 유지되는 사회 · 32
신상 공개라는 공적 복수 제도의 탄생 · 38
양적 교환이 지배하는 사회 · 44
뉴라이트의 헛소리가 가능한 이유 · 50
〈소년의 시간〉: 살인자의 이해를 이해하기 · 56

*깊이 읽기: 부채의 인류학과 복수의 문제 · 62
부채의 인류학 | 인간 경제 | 상품 교환과 비상품 교환의 논리 | 복수란 무엇인가? | 복수의 역설과 통속적 복수극 | 가해자-피해자 도식의 특징 | 폭력과 상품 교환의 논리 | 마치며: 청산 불가능한 부채를 인정하기

2부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당신에게

괴롭힘이 노동의 정상적 조건이 되었을 때 · 122
페미니즘 사냥에 어떻게 맞설 것인가? · 128
한국에 시민의 공동체가 존재하는가? · 134
〈오징어 게임〉: 한국의 지옥도가 재현하는 세계 자본주의의 작동 방식 · 140
공정과 능력주의는 고립된 수험생의 세계에서 태어난다 · 146
당신은 민주주의에 진정으로 동의하는가? · 152
강자가 지배하는 이상한 사회 · 158
노동자의 죽음은 사고인가 폭력인가? · 164
돈의 논리가 지배하는 자기파괴적 사회 · 170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당신에게 · 176
이민자는 노동력이 아니라 사람이다 · 182
‘외국인’이란 누구인가? · 188
동성결혼을 반대하는 것은 가능한가? · 194
공통된 것 없는 공동체의 모습 · 200

*깊이 읽기: 민주주의의 순수하고 단순한 정의 206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 평등의 원리 | 민주주의의 수단과 목적 | 마치며

3부 전진을 멈춘 민주주의

민주화 이후의 ‘역사’를 묻다 · 222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윤리적 인간이 될 수 있는 것은 누구인가? · 228
재앙은 미래가 아니라 현재에서 온다 · 234
‘보통 사람’이라는 성역 · 240
민주주의의 진정한 적은 누구인가? · 246
가족을 이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252
우리는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가 · 258
〈매드 맥스〉부터 〈원피스〉까지: 다른 국가와 정치를 상상하기 · 264
공과 사를 둘러싼 전쟁 · 270
복지가 선착순 서비스인가 · 276
금융과 투자가 사회보장을 대체한 시대 · 282

*깊이 읽기: 민주주의의 문화적 조건 · 288
민주주의의 보편성 | 민주주의의 문화적 조건 (1): 헌법의 언어 | 민주주의의 문화적 조건 (2): 권리에 대한 이해 | 마치며

4부 언어의 규칙을 거부하는 사회

‘반지성주의’ 사용 금지 · 316
‘정치적 올바름’은 쓸모없다 · 322
노동운동의 위기는 곧 민주주의의 위기다 · 328
문제는 문해력이 아니다 · 334
노키즈존과 일상의 무례함 · 340
교권이 아니라 인간, 시민, 노동자의 권리다 · 346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불편이다 · 352
모두가 평등하게 막말하는 사회 · 358
폭력을 왜 갑질이라 부르는가? · 364
누가 주권자인가? · 370

*깊이 읽기: 개념에 맞서는 말 · 376
말의 개념적 사용 | 유동적 말: 반개념적 사용의 첫 번째 유형 | 반개념적 사용의 다른 유형들 | 헌법 용어의 반개념적 사용 | 모방과 변이: 기의를 창조하는 기표 | 빈 기표와 적대 전선 | 마치며: 규칙의 합리적 체계

5부 내란 사태 이전과 이후: 반이성과 비정상

대선 후보 윤석열: 이념 없는 정치의 암울한 결말 · 442
뒤처리 전문 민주주의 · 448
어떻게 극우를 제거할 것인가? · 454
윤석열은 한국의 트럼프가 아니다 · 460
한국 민주주의는 또 다른 내란을 막을 수 있는가? · 466
정교 분리를 다시 생각한다 · 472
제3정당의 불가능성 · 478

*깊이 읽기: 극우와 반이성 · 484
극우의 기원 | 한국에도 극우가 존재하는가? | 반이성 | 마치며

나가는 말 · 501
초출 일람 · 509

저자소개

박이대승 (지은이)    정보 더보기
정치철학자. 프랑스 툴루즈-장 조레스 대학 초청 연구원으로 재직하며 ‘탈식민적 인류학 세미나’를 조직하고 있다. 《세계의 종말을 늦추기 위한 아마존의 목소리》(공저, 2024), 《임신중단에 대한 권리: 비합리는 헌법재판소에서 시작된다》(2020), 《‘개념’ 없는 사회를 위한 강의: 변화를 향한 소수자의 정치전략》(2017)을 썼고, 《식인의 형이상학: 탈구조적 인류학의 흐름들》(2018)을 공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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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2024년 12월 3일의 쿠데타 시도는 예외적인 해프닝이 아니라 한국 민주주의의 비정상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사건이었다.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더욱 절실하게, 한국의 근대와 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하다. 이 책이 질문의 시작점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


“지금 한국을 지배하는 가해자-피해자 도식은 청산 불가능한 부채를 청산해보려는 헛된 집착이다. 나는 이런 집착이 상품 교환 논리의 확장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는 강한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한국사회는 돈을 주고 물건을 사듯, 빌린 돈을 받고 채무관계를 정리하듯 폭력의 부채관계를 손쉽게 청산하려고 하지 않는가? 가해자가 강력히 처벌받으면 그것으로 정의가 실현될 것이라는 발상은 얼마나 무책임한가?”


“한국사회는 인간의 등급을 나누는 데 특화되어 있다. 개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 각자가 놓여 있는 사회적·경제적 조건 모두가 차별의 기준으로 작동한다. 모든 개인은 서로 다르지만, 인간과 시민이라는 점에서 모두 평등하다는 민주주의의 원리는 어디에서도 찾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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