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70401124
· 쪽수 : 268쪽
· 출판일 : 2022-09-16
책 소개
목차
시인의 말
1부 어느 황혼을 위하여
빈자일기 ― 삯전 받는 손들을 위한 노래 / 사랑법 / 동백 / 빨래 너는 여자 / 비리데기의 여행 노래 ― 1곡: 폐허에서 / 우리가 물이 되어 / 연애 / 풀잎 / 안갯속에는 / 둥근 지붕 / 혜화동 ― 어느 황혼을 위하여 / 십일월 / 진눈깨비 / 황혼곡조 4번 / 내 만일 / 일어서라 풀아 / 자전自轉 1 / 소리 9 / 꽃을 끌고
2부 그대의 들
허총가虛塚歌 1 / 진달래 / 저물 무렵 / 가을 / 자전自轉 2 / 햄버거와 구름 / 파도 / 상처 / 그 담쟁이가 말했다 / 회귀回歸 ― 영수를 위하여 / 하관下棺 / 비 / 그대의 들 / 오래전에 쓴 시: 비마飛馬 / 여름날 오후
3부 어떤 사랑의 비밀 노래
섬 ― 어떤 사랑의 비밀 노래 / 그 꽃의 기도 / 사과에 대하여 / 기적 / 살그머니 / 가족 / 그 집 ― J를 추억함 / 나무가 말하였네 / ㄱ씨와 ㅈ양이 / 엘리베이터 속의 꽃잎 한 장 / 가을의 시 / 숲 / 벽 속의 편지 ― 눈을 맞으며 / 봄날의 끈 / 운조
4부 아직도 못 가 본 곳이 있다
청계폭포 / 당고마기고모네 싱크대 / 자장면 / 빈자일기 ― 구걸하는 한 여자를 위한 노래 / 봄·기차 / 희명 / 붉은 저녁 너의 무덤가 / 이 세상의 시간은 / 운조의 현 ― 셋째 노래: 연꽃 미용실 / 아직도 못 가 본 곳이 있다 / 너를 사랑한다 / 별똥별 / 그 마당의 나무에서 들리다 / 초록 거미의 사랑 / 아벨서점
5부 그리운 것은 멀리 있네
그리운 동네 / 아, 이걸 어째? / 어둠이 한 손을 내밀 때 / 배추들에게 / 시든 양파를 위한 찬미가 / 벽 속의 편지 ― 누군가의 집 뒤에서 / 겨울 햇볕 / 빗방울 하나가 / 시詩, 그리고 황금빛 키스 / 당고마기고모의 구름무늬 블라우스 / 그리운 것은 멀리 있네 / 물길의 소리 / 운조의, 현絃을 위한 바르 ― 열한 번째 가락: 뒤꼍 / 찻집, ‘1968년 가을’ / 망와望瓦 / 빗방울 하나가 1 / 봉투 / 당고마기고모의 대바늘 / 당고마기고모 모자 가게에 가다
저자소개
책속에서
우리의 이 만남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를 나는 가끔 고통스럽게 떠올릴 때가 있다. 이 모든 무지의 만남, 망각 속의 만남들을 어떻게 저녁 하늘처럼 따뜻이 포옹하며 우리의 삶을 타인의 삶에 접속할 수 있을는지, 모르고 있는 순간에, 혹은 떠나고 있는 순간에 실은 만나고 있는 이들을 영원히 잊지 않으며 사랑할 수 있을는지…….
각자의 크고 작은 잠자리에서, 베갯머리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세며 그중 몇 올은 밤새도록 축축한 손가락으로 슬피 집어내면서 “아, 살아야지”라고 중얼거리는 아침. 단지 한 번 더 머리칼을 빗질하기 위하여, 단지 한 번 더 이빨을 닦기 위하여, 단지 한 번 더 먼지와 불화하고 소음과 화해하기 위하여, 단지 한 번 더 사랑하기 위하여…… 아, 이 무수한 한 번의 가능성들을 만져 볼 수 있다면…… 우리들은 그렇게 추억이 되어 가고 있다.
결혼한 딸이 첫 출산을 하는 날이었다. 병원 옆, 탁자가 두 개밖에 없는 조그만 찻집 겸 빵집에서 나는 아기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 통유리 창 앞 높은 의자에 앉게 되었다. 통유리 창으로 황혼이 느릿느릿 걸어오고 있었다. 순간 그 자그만 가게는 결혼하면서 떠난, 나의 옛 어린 시절, 동네의 한 빵집이 되었다. 플라타너스 잎에 햇살이 은빛으로 흩날리던 그 로터리 한구석에 둥글게 있던 작은 빵집, 통유리 창의, 나의 옛 연애가 있는 그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