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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교양 인문학
· ISBN : 9791170431190
· 쪽수 : 272쪽
책 소개
목차
지은이의 말 - 전국이 나의 정원이다
1장.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곳
전주 한옥마을: 조선의 뿌리, 전통의 멋을 간직하다
제천 청풍문화재단지: 호수 위에 펼쳐진 천 년의 역사기행
공주 공산성: 천도와 몽진, 4명의 왕을 껴안은 ‘공주의 품’
영주 소수서원: 성리학의 중심, 조선 최초의 사립학교
부여 궁남지: 백제 무왕의 탄생신화를 품은 연못
담양 소쇄원: 세상 꿈 접은 선비의 오래된 정원
문경 문경새재: 청운의 꿈을 안고 걷던 과거길
제천 배론성지: 신유박해의 애환을 간직한 순교자들의 성지
2장. 그곳에 가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영주 무섬마을: 육지 속의 섬, 시간도 멈춘 선비의 고장
광양 매화마을: 매실이 식탁 위에 올라오기까지
제천 옥순봉: 퇴계를 사모한 애틋한 두향 이야기
봉화 계서당: 『춘향전』 이몽룡의 모델 성이성을 만나다
영월 낙화암: 동강을 따라 흐르는 슬픈 일화
공주 무령왕릉?송산리 고분군: 죽어서 더 유명해진 왕
영월 청령포?관풍헌: 삼촌에게 내몰린 단종의 유배지
예천 삼강주막: 주모 주안상에 세월도 쉬었다 가는 곳
3장. 자연을 벗 삼아 거닐다
고창 청보리밭: 어느 봄날 ‘초록 추억’에 물들고 싶다
예천 회룡포: 자연이 빚은 육지 속의 섬
해남 땅끝마을: 땅끝에서 희망의 시작을 외치다
순천 순천만: 하늘이 내린 정원이자 새들의 낙원
단양 도담삼봉: 신이 빚어낸 한 폭의 동양화
담양 죽녹원: 세상의 때를 씻겨주는 푸른 대숲
합천 황매산: 가던 봄도 붙잡는 철쭉동산
단양 사인암: 풍류객의 시심을 품은 대자연의 병풍
4장. 따뜻한 이야기가 녹아 있는 곳
남해 독일마을: 한국에서 독일 중세마을의 풍경을 만끽하다
구례 산수유마을: 노랗게 물든 ‘설움의 꽃’ 산수유
부안 채석강?적벽강: 연인들의 사랑은 붉은빛으로 채색된다
봉화 만산고택: 옛 정취를 느끼며 묵는 고택에서의 하룻밤
남원 광한루원: 춘향과 몽룡이 만난 아름다운 정원
괴산 산막이옛길: 걷다 보면 나는 ‘자연’이 된다
여수 오동도: 연인들의 이야기가 소곤대는 사랑의 섬
여행지 탐방과 사진 제공에 도움을 주신 분들
참고문헌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한옥 탐방에서는 특히 장독대를 관심 있게 보자. 장독대는 그 자체가 하나의 ‘과학’이다. 장독대는 바닥에 자갈을 많이 깔아둔다. 이는 빗물 배수 기능을 하며 장을 담갔을 때 자갈이 햇볕에 달궈져서 장의 숙성을 돕도록 하기 위해서다. 또 장독대 주변에는 앵두나무나 모과나무·살구나무·감나무 등 과실수가 있다. 이는 그저 관상용으로 심은 것이 아니라 봄철에 장독대 뚜껑을 열어두면 꽃가루가 들어가서 장맛을 깊게 하고 숙성을 돕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듬뿍 담겨 있다. 먹는 음식까지도 자연과 더불어 맛을 빚었다.
작은 돌다리를 건너 왼쪽 길로 오르면 산비탈 담장에 ‘소쇄처사 양공지려(瀟灑處士 梁公之廬, 소쇄처사 양공의 조촐한 집)’라는 글씨가 적혀 있다. 이는 양산보의 집임을 알려준다. ‘처사’는 조선 선비들이 가장 불리고 싶어 했던 호칭으로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초야에 묻혀 학문에 정진하며 후진을 양성한 선비’를 말한다. 제아무리 훌륭한 학자나 선비여도 벼슬길에 오르면 ‘처사’로 불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옛말에 “왕비를 배출한 집안보다 대제학(정2품 벼슬)을 배출한 집안이 낫고, 대제학보다 문묘배향자를 배출한 집안이 나으며, 문묘배향자보다 처사를 배출한 가문이 가장 영예스럽다.”라고 했다. 그러니 선비들이 가장 선망했던 호칭인 셈이다. 1등만 추구하고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야만 인정받는 오늘날에는 보기 힘든 선비정신이다.
그렇다면 과거에서 낙방한 사람들의 귀향길 심정은 어땠을까? 유우잠(1575~1635년)은 이 심정을 시로 표현했다. “지난해 새재에서 비를 만나 묵었더니, 올해는 새재에서 비를 만나 지나갔네. 해마다 여름비 해마다 과객 신세, 필경엔 허황한 명성으로 무엇을 이룰 수 있을까.”라며 여러 번 과거길에 올랐으나 급제하지 못한 것을 한탄했다. 낙방했지만 선비로서의 자존심을 지킨 사람도 있었다. 박득녕(1808~1886년)은 “선비가 비록 과거에 낙방했다 하더라도 슬픈 마음이야 가질 수 없지 아니한가.”라고 말했다. 이처럼 한양 가는 길 중에서 가장 험한 소백산맥을 넘는 문경새재에는 영남 선비들의 애환이 서려 있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