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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동양철학 > 중국철학
· ISBN : 9791171830534
· 쪽수 : 336쪽
· 출판일 : 2024-09-20
책 소개
목차
제자백가 축의 시대 주요 연표
들어가는 말 내 인생의 나침반이 되어 줄 2,500년의 지혜
1장 “앞날을 준비하려거든 뒤부터 돌아보라”│공자의 준비
왜 하늘에 의지하고자 하는가│천인관계
바로 서기 위한 최소한의 태도│학문의 자세
“생사는 명에 달려 있고, 부귀는 하늘에 달려 있다”│사명과 운명
단 하루를 살아도 필요한 삶의 자세│살신성인
형식보다 마음이 더 중요한 이유│제사의 태도
2장 “버틸수록 하늘이 길을 연다”│맹자의 인내
자리마다 걸맞은 덕이 있다│왕도정치
누구에게나 열린 ‘인의’의 길│사생취의
사람으로 태어난 소명을 안다는 것│성선설
“물도 노력도 가득 차야 앞으로 나간다”│수양론
인생 후반의 근심이 오히려 고마운 이유│우환의식
3장 “내가 바르면 천하가 뒤따른다”│순자의 처신
“사람은 스스로 타고난 바를 바꿀 수 있다”│성악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화성기위
“모든 것은 깊이 보고 두루 살펴라”│비판적 사고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의 진짜 의미│예론
효는 처음과 끝이 같아야 한다│상례와 제례
4장 “이루고자 할 때는 의지가 필수다”│묵자의 실천
마음을 열면 모든 것이 열리는 이유│겸애교리
극복하려면 멀어져라│명정론 비판
반드시 기준이 있어야 하는 이유│삼표법
유연할수록 잃지 않는 것이 있다│후장구상 비판
“계속해서 부딪쳐야 한다”│묵가의 실천력
5장 “마음을 따르니 걸리는 바가 없다”│노자의 자존감
왜 억지로 취하려 하는가│무위자연
무엇도 두렵지 않게 될 단 하나의 원리│도와 덕
멀리 있는 명성보다 소중한 것이 있다│유약과 견강
“태산을 넘는 자는 스스로를 낮춘다”│섭생의 원칙
적을 수록 이득이고 많을 수록 손해 보는 것│양생법
6장 “나를 잃으면 비로소 내가 보인다”│장자의 자유
“가장 비천한 곳에 가장 높은 것이 있다”│가치판단
왜 함부로 판단하는가│무용지용
천하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상대주의
항상 잊지 말아야 하는 만고불변의 진리│기화 사상
“내가 나비의 꿈을 꾸는가 나비가 나의 꿈을 꾸는가”│물화 사상
7장 “빨리 결단하고 변화에 순응하라”│한비자의 통찰
세상이 달라지면 기준도 달라진다│수주대토
모든 일에는 반드시 때가 있다│법·술·세의 통합
모든 재앙은 티끌로부터 시작한다│조짐
어떻게 헤아릴 것인가│유세의 어려움
어떻게 날카로운 창으로 단단한 방패를 뚫을까│모순
나가는 말 제자백가, 생각의 힘을 기르는 여정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즉, ‘사람은 악하게 태어난다’라는 것이 아니라, ‘사람은 사회질서에 반하는 욕망을 갖고 태어난다’라는 의미로 악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맹자가 선험적이고 윤리적인 측면에서 성선을 논했다면, 순자는 사회적인 관점에서 질서에 반하는 성향으로서 성악을 논한 것입니다.
순자가 말한 ‘성(性)’은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자연적인 속성, 즉 본성을 뜻합니다. ‘위’는 ‘인위’로 이해할 수 있는데, 오늘날의 개념처럼 자연스럽지 않고 가공되거나 꾸며진 모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노력이 가해진 문화 전반을 가리킵니다. 여기에는 교육, 윤리도덕 관념, 예악 등이 포함됩니다. 순자는 인간이 태어날 때 ‘눈이 색을 좋아하고, 귀가 소리를 좋아하며, 입이 맛을 좋아하고, 마음이 이득을 좋아하며, 온몸이 안락을 좋아하는’ 성정을 타고 난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성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변화시켜 바꿀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순자의 처신: “사람은 스스로 타고난 바를 바꿀 수 있다”〉 중에서
제자백가 가운데 동양의 예수라 불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사람들에게 서로 사랑할 것을 주장한 묵자입니다. 그의 사상 중 핵심은 ‘겸애’라는 개념으로, 다음은 《묵자》의 〈겸애하(兼愛下)〉 편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만약 자네가 전쟁을 나가기 위해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쓰고 있다고 하자. 자네는 살아서 돌아올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그게 아니라면 군주가 멀리 사신을 보내려고 한다고 하자. 이 또한 다시 돌아 올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자네에게 물어보겠네. 자네가 집을 비운 동안 자네는 집안의 관리와 부모님 봉양하는 문제와 처자의 부양 문제를 어떤 친구에게 부탁하겠는가? (중략) 내 생각에는 누구라도 이런 상황이 되면 설령 ‘겸애(평등한 사랑)’를 비판하는 사람일지라도 반드시 겸애를 말하는 친구에게 부탁할 것이네. 이것이 바로 말로는 겸애를 틀리다고 하면서도 막상 위급할 때는 겸애를 취하게 되는 이유라네.”
묵자는 이 이야기를 통해 겸애를 비판하는 사람조차도 자신이 막상 급한 상황에서 도움을 요청할 때는 겸애를 주장하는 사람에게 의탁하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겸애란 차별 없는 평등한 사랑을 의미합니다. 묵자가 동양의 예수라고 불리는 이유도 이처럼 평등한 사랑을 주장했기 때문이지요.
〈묵자의 실천: 마음을 열면 모든 것이 열리는 이유〉 중에서
지나치게 삶을 좋게 하려는 행위는 결코 오래 사는 길로 가지 못할 것이라고 했는데, “만물이 끊임없이 살려고만 하면 장차 소멸하게 될 것”이며, “삶을 보태려 하는 것은 불길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사는 길을 떠나 죽는 길로 들어서는구나. 삶의 부류가 열에 셋이고, 죽음의 부류가 열에 셋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삶을 살리려 하지만, 하는 일마다 모두 죽는 길로 가는 것이 또 열에 셋이구나. 왜 그런가? 지나치게 삶을 좋게 하려 하기 때문이다.”
《노자》에서는 “삶을 살린다”라는 말이 부정적인 의미로 쓰였습니다. 노자는 계속 자신을 살리려고 하는 지나친 욕망은 죽음으로 들어서는 길이라고 보았습니다. 말하자면 의식적으로 생명을 늘리고자 하면 생명에 오히려 부정적인 나쁜 영향을 주어서 죽음을 가속화시킨다고 본 것입니다.
〈노자의 자존감: 왜 억지로 취하려 하는가〉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