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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중국소설
· ISBN : 9791173070228
· 쪽수 : 629쪽
· 출판일 : 2024-11-28
책 소개
목차
유오(謬誤)
36-1(0932) 감자포(甘子布)
36-2(0933) 소영사(蕭穎士)
36-3(0934) 치앙(郗昂)
36-4(0935) 장 장사(張長史)
36-5(0936) 소부(蕭俛)
36-6(0937) 최청(崔淸)
36-7(0938) 강서의 역참 관리(江西驛官)
36-8(0939) 곽무정(郭務靜)
36-9(0940) 이문례(李文禮)
36-10(0941) 장수신(張守信)
36-11(0942) 원주(苑䛆)
36-12(0943) 도성의 유생(京都儒士)
36-13(0944) 두소경(竇少卿)
36-14(0945) 하유량(何儒亮)
36-15(0946) 와전된 말(語訛)
유망(遺忘)
36-16(0947) 장이섭(張利涉)
36-17(0948) 염현일(閻玄一)
36-18(0949) 이원효(李元皛)
치비(嗤鄙)
36-19(0950) 전욱(顓頊)
36-20(0951) 준치(蹲鴟)
36-21(0952) 한창(韓昶)
36-22(0953) 한간(韓簡)
36-23(0954) 장유고(張由古)
36-24(0955) 탁지랑(度支郞)
36-25(0956) 권용양(權龍襄)
36-26(0957) 사사명(史思明)
36-27(0958) 최숙청(崔叔淸)
36-28(0959) 상정종(常定宗)
36-29(0960) 장회경(張懷慶)
36-30(0961) 매권형(梅權衡)
36-31(0962) 유의방(劉義方)
36-32(0963) 이거(李據)
36-33(0964) 소미도(蘇味道)
36-34(0965) 후사지(侯思止)
36-35(0966) 왕급선과 양도(王及善·陽滔)
36-36(0967) 세 가지 더러움(三穢)
36-37(0968) 대성 안의 말(臺中語)
36-38(0969) 왕초 형제(王初昆弟)
36-39(0970) 내자순(來子珣)
36-40(0971) 무의종(武懿宗)
36-41(0972) 조인장(趙仁獎)
36-42(0973) 숙종 때 초징된 인재(肅宗朝徵君)
36-43(0974) 임곡(任轂)
36-44(0975) 소응현의 서생(昭應書生)
36-45(0976) 장 박사(張博士)
36-46(0977) 세 명의 망령된 사람(三妄人)
36-47(0978) 정계(鄭綮)
36-48(0979) 여간(黎幹)
36-49(0980) 광주의 남쪽(廣南)
36-50(0981) 강변(康)
36-51(0982) 원수일(袁守一)
36-52(0983) 장현정(張玄靖)
36-53(0984) 최함(崔咸)
36-54(0985) 두풍(杜豐)
36-55(0986) 독고수충(獨孤守忠)
36-56(0987) 손언고(孫彦高)
36-57(0988) 호씨 현령(胡令)
36-58(0989) 설창서(薛昌緖)
36-59(0990) 장함광(張咸光)
36-60(0991) 긴 수염의 승려(長鬚僧)
권37 경박부(輕薄部) 조초부(嘲誚部)
경박(輕薄)
37-1(0992) 요표(姚彪)
37-2(0993) 사영운(謝靈運)
37-3(0994) 유효작(劉孝綽)
37-4(0995) 두심언 부자(杜審言父子)
37-5(0996) 양형(楊炯)
37-6(0997) 은안(殷安)
37-7(0998) 설능(薛能)
37-8(0999) 설보손 부자(薛保遜父子)
37-9(1000) 소영사(蕭穎士)
37-10(1001) 진통방(陳通方)
37-11(1002) 정광업(鄭光業)
37-12(1003) 가영(賈泳)
37-13(1004) 나은(羅隱)
37-14(1005) 풍연(馮涓)
37-15(1006) 이군옥(李群玉)
37-16(1007) 최소부(崔昭符)
37-17(1008) 온정(溫定)
37-18(1009) 남탁(南卓)
37-19(1010) 고봉휴(高逢休)
37-20(1011) 봉순경(封舜卿)
37-21(1012) 요암걸(姚巖傑)
조초(嘲誚)
37-22(1013) 변소(邊韶)
37-23(1014) 하순(賀循)
37-24(1015) 조사언(祖士言)
37-25(1016) 고상(高爽)
37-26(1017) 설종(薛綜)
37-27(1018) 서지재(徐之才)
37-28(1019) 마씨·왕씨와 감흡(馬王·甘洽)
37-29(1020) 적인걸(狄仁傑)
37-30(1021) 노사도(盧思道)
37-31(1022) 설도형(薛道衡)
37-32(1023) 우세기(虞世基)
37-33(1024) 내항(來恒)
37-34(1025) 구양순(歐陽詢)
37-35(1026) 진희민(陳希閔)
37-36(1027) 이상(李詳)
37-37(1028) 신단(辛亶)
37-38(1029) 우홍(牛弘)
37-39(1030) 고사렴(高士廉)
37-40(1031) 배약(裴略)
37-41(1032) 강회(姜晦)
37-42(1033) 조숭(趙崇)
37-43(1034) 송제(宋濟)
37-44(1035) 어사이행(御史裏行)
37-45(1036) 장원일 등(張元一等)
37-46(1037) 황번작(黃幡綽)
37-47(1038) 피일휴(皮日休)
37-48(1039) 설능(薛能)
37-49(1040) 이 주부(李主簿)
37-50(1041) 봉포일(封抱一)
37-51(1042) 최애(崔涯)
37-52(1043) 이선고(李宣古)
37-53(1044) 두목(杜牧)
37-54(1045) 정계명(程季明)
37-55(1046) 왕유(王維)
37-56(1047) 교임(喬琳)
37-57(1048) 이경현(李敬玄)
37-58(1049) 최신유(崔愼由)
37-59(1050) 당오경(唐五經)
37-60(1051) 청룡사의 객(靑龍寺客)
37-61(1052) 곽소(郭素)
37-62(1053) 요계(姚洎)
37-63(1054) 비단 짜는 사람(織錦人)
권38 회해부(詼諧部)
회해(詼諧)
38-1(1055) 안영(晏嬰)
38-2(1056) 원차양(袁次陽)
38-3(1057) 이적(伊籍)
38-4(1058) 제갈각(諸葛恪)
38-5(1059) 등애(鄧艾)
38-6(1060) 채모(蔡謨)
38-7(1061) 제갈회(諸葛恢)
38-8(1062) 학륭(郝隆)
38-9(1063) 장융(張融)
38-10(1064) 하승천(何承天)
38-11(1065) 하욱(何勗)
38-12(1066) 유회(劉繪)
38-13(1067) 서효사(徐孝嗣)
38-14(1068) 심소략(沈昭略)
38-15(1069) 호해지(胡諧之)
38-16(1070) 서릉(徐陵)
38-17(1071) 양 무제(梁武)
38-18(1072) 스님 중공(僧重公)
38-19(1073) 손소(孫紹)
38-20(1074) 북위 저잣거리의 사람(魏市人)
38-21(1075) 위언연(魏彦淵)
38-22(1076) 이서(李庶)
38-23(1077) 노순조(盧詢祖)
38-24(1078) 북해의 왕희(北海王晞)
38-25(1079) 서지재(徐之才)
38-26(1080) 후백(侯伯)
38-27(1081) 수나라의 말 더듬는 사람(隋朝吃人)
38-28(1082) 유작(劉焯)
38-29(1083) 장손무기(長孫無忌)
38-30(1084) 장손현동(長孫玄同)
38-31(1085) 허경종(許敬宗)
38-32(1086) 고최외(高崔嵬)
38-33(1087) 배현본(裴玄本)
38-34(1088) 임괴(任瓌)
38-35(1089) 배담(裴談)
38-36(1090) 이진악(李鎭惡)
38-37(1091) 노이(盧廙)
38-38(1092) 송수(松壽)
38-39(1093) 두연업(杜延業)
38-40(1094) 조겸광(趙謙光)
38-41(1095) 유조하(劉朝霞)
38-42(1096) 배도(裴度)
38-43(1097) 요현(姚峴)
38-44(1098) 주원(周願)
38-45(1099) 육장원(陸長源)
38-46(1100) 원덕사(袁德師)
38-47(1101) 양우경(楊虞卿)
38-48(1102) 심아지(沈亞之)
38-49(1103) 소미도(蘇味道)
38-50(1104) 장호(張祜)
38-51(1105) 교주와 광주의 유람객(交廣客)
38-52(1106) 양무직(楊茂直)
38-53(1107) 노조와 정능(盧肇·丁棱)
38-54(1108) 이환(李寰)
38-55(1109) 배휴(裴休)
38-56(1110) 공위(孔緯)
38-57(1111) 우문한(宇文翰)
38-58(1112) 왕탁(王鐸)
38-59(1113) 노연양(盧延讓)
38-60(1114) 고형(顧夐)
38-61(1115) 석동통(石動筒)
38-62(1116) 황번작(黃繙綽)
38-63(1117) 이가급(李可及)
38-64(1118) 안비신(安轡新)
38-65(1119) 목조릉(穆?綾)
38-66(1120) 호찬(胡趲)
권39 휼지부(譎智部) 궤사부(詭詐部) 무뢰부(無賴部)
휼지(譎智)
39-1(1121) 위 태조(魏太祖)
39-2(1122) 진 명제(晉明帝)
39-3(1123) 최사긍(崔思兢)
39-4(1124) 유현좌(劉玄佐)
39-5(1125) 이포정(李抱貞)
39-6(1126) 마 태수(馬太守)
39-7(1127) 진무의 씨름군(振武角抵人)
궤사(詭詐)
39-8(1128) 곽순과 왕수(郭純·王燧)
39-9(1129) 고양이와 앵무새를 길들이다(調猫兒鸚鵡)
39-10(1130) 당동태와 호연경(唐同泰·胡延慶)
39-11(1131) 측천무후의 상서로운 징조(則天禎祥)
39-12(1132) 스님 호초(胡超僧)
39-13(1133) 안녹산(安祿山)
39-14(1134) 이임보(李林甫)
39-15(1135) 한전회(韓全誨)
39-16(1136) 이경원(李慶遠)
39-17(1137) 장호(張祜)
39-18(1138) 대안사(大安寺)
39-19(1139) 배현지(裴玄智)
39-20(1140) 성도의 걸인(成都丐者)
39-21(1141) 설씨의 아들(薛氏子)
39-22(1142) 진중의 젊은이(秦中子)
무뢰(無賴)
39-23(1143) 한영규(韓令珪)
39-24(1144) 왕 사군(王使君)
39-25(1145) 이 수재(李秀才)
39-26(1146) 성이 엄씨인 사람(姓嚴人)
39-27(1147) 곽헌가(霍獻可)
39-28(1148) 송지손(宋之愻)
39-29(1149) 악종훈(樂從訓)
39-30(1150) 팽선각과 장덕(彭先覺·張德)
39-31(1151) 사리를 삼킨 선비(士子呑舍利)
39-32(1152) 장간 등(張幹等)
39-33(1153) 촉 사람 조고와 위소경(蜀趙高·韋少卿)
39-34(1154) 형주의 문신한 자(荊州札者)
39-35(1155) 한신(韓伸)
권40 요망부(妖妄部) 무부(巫部)
요망(妖妄)
40-1(1156) 채탄(蔡誕)
40-2(1157) 수만경(須曼卿)
40-3(1158) 강무 선생(姜撫先生)
40-4(1159) 장안의 도사(長安道士)
40-5(1160) 설회의(薛懷義)
40-6(1161) 송자현(宋子賢)
40-7(1162) 유용자와 백철여(劉龍子·白鐵余)
40-8(1163) 후원(侯元)
40-9(1164) 공덕산(功德山)
40-10(1165) 한차(韓佽)
40-11(1166) 호승(胡僧)
40-12(1167) 진 복야(陳僕射)
40-13(1168) 유원형(劉元逈)
40-14(1169) 여용지와 제갈은 등(呂用之·諸葛殷等)
40-15(1170) 낙빈왕(駱賓王)
40-16(1171) 동창(董昌)
무(巫)
40-17(1172) 무당 서례(師舒禮)
40-18(1173) 적유겸(狄惟謙)
40-19(1174) 하파와 내파(何婆·來婆)
40-20(1175) 아마파(阿馬婆)
40-21(1176) 위근(韋覲)
40-22(1177) 이항(李恒)
40-23(1178) 엽주법(厭?法)
책속에서
36-8(0939) 곽무정(郭務靜)
당(唐)나라의 창주(滄州) 남피현승(南皮縣丞) 곽무정이 처음 부임했을 때, 통판(通判) 왕경(王慶)이 사건을 처리하고 있자 곽무정이 말했다.
“그대는 성이 무엇인가?”
왕경이 말했다.
“왕씨(王氏)입니다.”
잠시 뒤에 왕경이 다시 오자 곽무정이 또 성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왕경이 다시 말했다.
“왕씨입니다.”
그러자 곽무정은 한참 동안 이상해하고 놀라면서 왕경을 쳐다보며 말했다.
“남피의 좌사(佐史)들은 모두 왕씨인가?”
곽무정은 본디 흐리멍덩했는데, 주부(主簿) 유사장(劉思莊)과 함께 객점에 투숙했을 때 유사장에게 말했다.
“어가(御駕)를 수행하는 일은 정말 어렵네. 내가 한번은 어가를 수행하다가 식구를 사흘 동안 잃어버렸는데 시종관의 장막에서 찾아냈네.”
유사장이 말했다.
“공의 부인이 그 안에 있었습니까?”
곽무정이 말했다.
“만약 그 안에 있지 않았다면 다시 무슨 일을 논하겠는가?”
곽무정이 또 유사장에게 말했다.
“요즘은 도둑이 정말 많네. 어젯밤 2경 후에 내가 밖에서 들어오다 보니 한 도둑이 갑자기 내 방 안에서 도망쳐 나오더군.”
유사장이 말했다.
“어떤 물건을 잃어버렸습니까?”
곽무정이 말했다.
“없네.”
유사장이 말했다.
“물건을 잃어버리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그 사람이 도둑인지 아십니까?”
곽무정이 말했다.
“그놈이 허둥대며 도망가는 것만 봐도 의심을 피할 수 없지.”
36-45(0976) 장 박사(張博士)
당(唐)나라의 한완(韓琬)과 장창종(張昌宗)·왕본립(王本立)은 함께 태학(太學)에서 수학했다. 성이 장씨(張氏)인 태학박사는 장창종의 당숙이었는데, 오경(五經)에는 정통했으나 세상일에는 어두웠다. 그는 닭 한 마리를 키우고 있었는데 그 닭을 “발 공자(勃公子)”라고 부르며 끔찍이 아꼈다. 그는 매번 경서를 강의할 때면 그 닭을 학생들 사이에 두었는데, 그러면 닭이 학생들의 책을 할퀴어서 찢곤 했다. 닭을 쫓아내는 학생은 반드시 그에게 야단을 맞았다.
“이 닭은 오덕(五德)을 겸비하고 있는데 너는 어찌하여 그를 업신여기느냐?”
장창종도 일찍이 이 닭 때문에 매를 맞은 적이 있었는데, 왕본립과 한완은 이 일에 자못 불평하면서 말했다.
“저 고루한 유생은 세상일을 알지 못하니 우리가 공(公 : 장창종)을 위해 저놈의 닭을 죽이겠소.”
장 박사는 평소에 학생들이 먹다 남긴 음식을 가져다가 닭의 모이로 주었는데, 왕본립이 일 처리를 잘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 합당한지 여부를 물어보았더니 왕본립이 말했다.
“문서에 기록해 놓으면 됩니다.”
장 박사는 기뻐하며 매일 학생들이 남긴 음식을 받아 가서 모두 문서에 기록해 두었다. 다른 날 장 박사가 휴가를 내자 왕본립은 고소장을 써서 그 닭의 죄행을 하나하나 열거한 후 잡아서 먹어 치웠다. 장 박사는 태학으로 돌아온 후 닭이 보이지 않자 놀라며 말했다.
“내 발 공자는 어디에 있느냐?”
좌우에서 왕본립이 죽였다고 알려 주자 장 박사가 대노하며 말했다.
“고소장을 가져와라, 고소장을 가져와!”
그는 열거한 닭의 죄행을 보고 말했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죽여서는 안 되지.”
왕본립이 말했다.
“닭은 사람과 달라 곤장을 칠 수도 없으니 죽이는 게 마땅합니다.” 협 : 말을 잘했다.
장 박사는 손으로 책상을 재삼 치며 말했다.
“발 공자는 고소장이 제출되었을 때 또한 무엇을 알았겠는가?” 협 : 고루함이 심하도다!
당시 장안(長安)에서는 고소장이 제출되면 그 사안을 사실이라고 여겼다.
38-1(1055) 안영(晏?)
제(齊)나라의 안영은 키가 작고 왜소했는데, 그가 초(楚)나라에 사신으로 갔더니 초나라에서는 큰 문 옆에 작은 문을 만들어 놓고 안자(晏子 : 안영)를 맞이했다. 그러자 안영이 들어가지 않으면서 말했다.
“개 나라에 사신으로 왔으면 개구멍으로 들어가겠지만, 지금 신은 초나라에 사신으로 왔으니 개구멍으로 들어가는 것은 마땅치 않습니다.”
초나라 왕이 말했다.
“제나라엔 인재가 없나 보오?”
안영이 대답했다.
“제나라에서는 현명한 자를 현명한 왕에게 사신으로 보내고, 못난 자를 못난 왕에게 사신으로 보냅니다. 저는 못난 사람이므로 왕께 사신으로 온 것입니다.”
초나라 왕이 좌우 신하들에게 말했다.
“안영은 말주변이 뛰어난데, 내가 그를 곯려 주고 싶다.”
사람들이 좌정하자 한 사람을 포박해서 끌고 왔다. 초나라 왕이 물었다.
“뭐 하는 사람이냐?”
좌우 신하들이 대답했다.
“제나라 사람인데 도둑질을 했습니다.”
초나라 왕이 안영을 보며 말했다.
“제나라 사람들은 도둑질을 잘하는가 보오?”
안영이 대답했다.
“제가 듣기에 귤나무는 강남에서 자라는데 그것이 강북으로 가면 탱자가 된다고 했습니다. 가지와 잎은 서로 비슷하지만 열매와 맛이 다른 것은 수질과 토양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사람은 제나라에서 자랄 때는 도둑질을 할 줄 몰랐는데 초나라에 들어와서는 도둑질을 했으니, 아마도 초나라의 수질과 토양이 그를 도둑질하게 만든 것 같습니다.”
초나라 왕이 웃으며 말했다.
“과인이 도리어 사서 욕을 먹었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