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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중국소설
· ISBN : 9791173070433
· 쪽수 : 437쪽
· 출판일 : 2024-11-28
책 소개
목차
야차(夜叉)
71-1(2327) 가서한(哥舒翰)
71-2(2328) 마수(馬燧)
71-3(2329) 강남의 오생(江南吳生)
71-4(2330) 주현의 딸(朱峴女)
71-5(2331) 두만(杜萬)
71-6(2332) 동락의 장생(東洛張生)
71-7(2333) 설종(薛淙)
71-8(2334) 유적(劉積中)
71-9(2335) 위자동(韋自東)
71-10(2336) 진월석(陳越石)
71-11(2337) 온 도사(蘊都師)
권72 요괴부(妖怪部)
요괴(妖怪) 1
72-1(2338) 동군의 백성(東郡民)
72-2(2339) 호욱(胡頊)
72-3(2340) 오정현 사람(烏程縣人)
72-4(2341) 허주의 승려(許州僧)
72-5(2342) 수안현의 남자(壽安男子)
72-6(2343) 영주의 부인(瀛州婦人)
72-7(2344) 조연노(趙燕奴)
72-8(2345) 동도의 걸인(東都乞兒)
72-9(2346) 다리 없는 부인(無足婦人)
72-10(2347) 맹씨 노파(孟嫗)
72-11(2348) 백항아(白項鴉)
72-12(2349) 누영(婁逞)
72-13(2350) 황숭하(黃崇嘏)
72-14(2351) 기이한 출산(産異)
72-15(2352) 최광종(崔廣宗)
72-16(2353) 영릉태수의 딸(零陵太守女)
72-17(2354) 이심언(李審言)
72-18(2355) 장전(張全)
72-19(2356) 정습(鄭襲)
72-20(2357) 침주의 좌사(郴州佐史)
72-21(2358) 형주 사람(荊州人)
72-22(2359) 사도선(師道宣)
72-23(2360) 황묘(黃苗)
72-24(2361) 봉소(封邵)
72-25(2362) 이징(李徵)
72-26(2363) 장봉(張逢)
72-27(2364) 양진(楊眞)
72-28(2365) 왕거정(王居正)
72-29(2366) 주 도사(朱都事)
72-30(2367) 호랑이로 변한 승려(僧虎)
72-31(2368) 정평현의 마을 사람(正平縣村人)
72-32(2369) 양 무제의 황후(梁武后)
72-33(2370) 송사종의 모친(宋士宗母)
72-34(2371) 제나라의 왕후(齊王后)
권73 요괴부(妖怪部)
요괴(妖怪) 2
73-1(2372) 장한(張翰)
73-2(2373) 강회의 선비(江淮士人)
73-3(2374) 이우(李虞)
73-4(2375) 이반(李泮)
73-5(2376) 요원기(姚元起)
73-6(2377) 도정방의 집(道政坊宅)
73-7(2378) 강교(姜皎)
73-8(2379) 주제천(周濟川)
73-9(2380) 돈구현 사람(頓丘人)
73-10(2381) 형양군의 요씨(滎陽廖氏)
73-11(2382) 고양이 귀신(猫鬼)
73-12(2383) 낙양의 부인(洛陽婦人)
73-13(2384) 왕헌(王獻)
73-14(2385) 맹씨(孟氏)
73-15(2386) 하북의 군장(河北軍將)
73-16(2387) 궁산의 승려(宮山僧)
73-17(2388) 왕종신(王宗信)
73-18(2389) 두불의(竇不疑)
73-19(2390) 여강의 백성(廬江民)
73-20(2391) 유씨(柳氏)
73-21(2392) 수반(壽頒)
73-22(2393) 범계보(范季輔)
권74 요괴부(妖怪部)
요괴(妖怪) 3
74-1(2394) 산정(山精)
74-2(2395) 산소(山魈)
74-3(2396) 부양 사람(富陽人)
74-4(2397) 원자허(元自虛)
74-5(2398) 산도와 목객(山都·木客)
74-6(2399) 장요(張遼)
74-7(2400) 조낭(曹朗)
74-8(2401) 등차(鄧差)
74-9(2402) 소아(素娥)
74-10(2403) 서명 부인(西明夫人)
74-11(2404) 노욱(盧郁)
74-12(2405) 청강군의 노인(淸江郡叟)
74-13(2406) 화음현의 촌장(華陰村正)
74-14(2407) 안양현의 황씨(安陽黃氏)
74-15(2408) 정인(鄭絪)
74-16(2409) 요 사마(姚司馬)
74-17(2410) 최각(崔珏)
74-18(2411) 요강성(姚康成)
74-19(2412) 김우장(金友章)
74-20(2413) 우응(于凝)
74-21(2414) 비현의 왕씨 집(費縣王家)
74-22(2415) 조혜(曹惠)
74-23(2416) 상향 사람(商鄕人)
74-24(2417) 노함(盧涵)
74-25(2418) 장불의(張不疑)
74-26(2419) 잠순(岑順)
74-27(2420) 황금 봉황과 금옥 나비(金鳳·金玉蝴蝶)
74-28(2421) 우도현 사람(雩都縣人)
74-29(2422) 금우(金牛)
74-30(2423) 은우(銀牛)
74-31(2424) 위사현(韋思玄)
74-32(2425) 소알과 하문(蘇遏·何文)
74-33(2426) 잠문본(岑文本)
74-34(2427) 거연 부락의 우두머리(居延部落主)
74-35(2428) 여생(呂生)
권75 요괴부(妖怪部)
요괴(妖怪) 4
75-1(2429) 용사초(龍蛇草)
75-2(2430) 쪼갠 나무 속의 고기(破木有肉)
75-3(2431) 유 장군(柳將軍)
75-4(2432) 스님 지통(僧智通)
75-5(2433) 최현미(崔玄微)
75-6(2434) 소창원(蘇昌遠)
75-7(2435) 전등낭(田登娘)
75-8(2436) 조생(趙生)
75-9(2437) 늙은 쥐(老鼠)
75-10(2438) 노추(盧樞)
75-11(2439) 주인(朱仁)
75-12(2440) 살쾡이(狸)
75-13(2441) 파리(蠅)
75-14(2442) 벌이 먹다 남긴 것(蜂餘)
75-15(2443) 도마뱀(守宮)
75-16(2444) 쥐며느리(鼠婦)
75-17(2445) 박쥐(蝙蝠)
75-18(2446) 메뚜기(蚱蜢)
75-19(2447) 매미(蟬)
75-20(2448) 지렁이(蚯蚓)
75-21(2449) 개구리(蛙)
75-22(2450) 과두 낭군(科斗郞君)
75-23(2451) 땅강아지(螻蛄)
75-24(2452) 심우당(審雨堂)
75-25(2453) 서현지(徐玄之)
75-26(2454) 원앙(鴛鴦)
75-27(2455) 오군산(烏君山)
75-28(2456) 푸른 학(蒼鶴)
75-29(2457) 아계(鵝溪)
책속에서
72-13(2350) 황숭하(黃崇?)
[오대십국] 왕촉(王蜀 : 전촉)의 재상 주상(周庠)은 처음에 공남(?南)의 막부에서 부의 일을 맡아보고 있었다. 그때 임공현(臨?縣)에서 실수로 불을 낸 황숭하를 압송해 하옥했는데, 황숭하가 곧바로 시 한 수를 바쳤다.
“어쩌다 깊숙한 은거지를 떠나 임공에 살게 되었으나, 행동거지의 올곧음은 계곡의 소나무에 견줄 수 있으리. 어찌하여 수경(水鏡)처럼 맑은 정사를 펼치시면서, 저 들녘의 학을 잡아 깊은 새장에 가두려 하십니까?”
주상은 그 시를 읽고 마침내 황숭하를 불러 만났다. 황숭하는 자신을 향공진사(鄕貢進士)라 칭했으며 나이는 30세쯤으로 보였는데, 공손한 태도로 치밀하고 민첩하게 대답하자 주상은 즉시 그를 석방하라고 명했다. 며칠 후에 황숭하가 노래를 바치자, 주상은 그를 빼어난 인재라 여기고 학원(學院)으로 불러들여 여러 조카들과 어울리게 했다. 황숭하는 바둑과 금(琴)에 뛰어났고 그림과 글씨에도 절묘했다. 이튿날 주상은 황숭하를 부(府)의 사호참군(司戶參軍)을 대리하도록 천거했는데, “삼어(三語)”라는 칭송이 제법 자자했으며, 서리(胥吏)들도 그를 경외하며 복종했다. 그가 작성한 공문서는 문장이 유려하고 조리가 분명했다. 주상은 이미 그의 총명함을 중시하고 있었는데 그의 풍채까지 훌륭하다고 여겨, 그가 직임을 맡은 지 1년이 넘어가려 할 때 마침내 자신의 딸을 그에게 시집보내려고 했다. 황숭하는 소매에 봉함한 장계를 넣어 와서 감사드렸으며 아울러 시 한 수를 바쳤다.
“푸른 강가에서 비취새 깃털 줍는 일 그만두고, 가난하게 초가집 지키며 시만 지었네. 남삼(藍衫) 입고 하급 관리가 된 이후로, 화장 거울 보며 고운 눈썹 그리는 일 영원히 포기했네. 청송(靑松) 같은 지조로 탁월하게 몸을 세웠고, 백옥 같은 자태로 굳세게 뜻을 세웠네. 막부(幕府)께서 만약 나를 훌륭한 사윗감으로 받아 주신다면, 하늘이 나를 어서 남자로 만들어 주길 원하네.”
주상은 시를 읽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마침내 주상이 황숭하를 불러들여 캐물었더니, 그는 바로 황 사군(黃使君)의 딸이었으나 어려서 부모를 잃고 오직 늙은 유모와 함께 살면서 본래 시집을 가지 않았다고 했다. 주상은 그녀의 정결함을 더욱 우러렀으며, 군민들은 모두 기이한 일에 감탄했다. 미 : 지금 전기(傳奇 : 희곡) 중에 《여장원춘도기(女壯元春桃記)》가 있는데, 이 일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얼마 후에 황숭하는 사직을 청하고 임공현으로 돌아갔는데, 결국 그 생사를 알 수 없었다.
평 : 맹씨(孟氏) 노파와 백항아(白項鴉)는 부인이었지만 능력이 있는 자이고, 누영(婁逞)과 황숭하는 여자였지만 문재(文才)가 있는 자다. 하지만 괴이하다고 여김을 면치 못한 것은 그들이 부인과 여자에 안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무씨(武氏 : 측천무후)가 면류관을 드리우고 천자가 된 것도 괴이하다고 여기기에 부족하도다!
72-21(2358) 형주 사람(荊州人)
형주의 어떤 사람이 산길을 가다가 난데없이 창귀(?鬼 : 호랑이에게 잡아먹힌 후에 호랑이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귀신)와 마주쳤는데, 창귀가 그에게 호랑이 가죽을 씌우자 그는 호랑이로 변해 창귀의 지시를 받게 되었다. 그렇게 3∼4년 동안 그가 잡아먹은 사람과 가축과 들짐승은 이루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는 몸은 비록 호랑이가 되었어도 마음속으로는 그것을 원치 않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나중에 창귀가 호랑이를 이끌고 한 절문 앞을 지나가자, 호랑이가 황급히 절의 창고로 뛰어 들어가서 창고를 지키는 스님의 침상 밑에 엎드렸더니, 스님이 놀라고 두려워했다. 그때 여러 사나운 짐승을 복종시킬 수 있는 한 선사가 호랑이 있는 곳으로 가서 석장(錫杖)을 두드리며 호랑이에게 물었다.
“제자는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 사람을 잡아먹고자 하는가, 아니면 짐승의 몸을 싫어하는가?”
호랑이는 귀를 늘어뜨린 채 눈물을 흘렸다. 선사가 수건으로 호랑이의 목을 묶어 본원(本院)으로 끌고 와서 호랑이에게 사람들이 먹는 음식과 그 밖의 음식을 먹였더니, 호랑이는 반년 만에 털이 빠지고 사람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 사람은 처음에 자기가 호랑이로 변하게 된 사정을 자세히 얘기했으며, 2년 동안 감히 절을 떠나지 않았다. 나중에 잠깐 절을 나갔다가 갑자기 다시 창귀를 만났는데, 창귀가 또 그에게 호랑이 가죽을 씌웠다. 그는 황급히 절 안으로 뛰어 들어갔으나 가죽이 허리 아래까지 내려오자 결국 다시 호랑이로 변했다. 호랑이는 독실하게 불경을 염송한 끝에 1년 남짓 만에 비로소 사람으로 변했다. 그때부터 그는 죽을 때까지 감히 절문을 나가지 않았다.
73-8(2379) 주제천(周濟川)
주제천은 여남(汝南) 사람으로 양주(揚州)의 서쪽에 별장이 있었다. 그의 형제 몇 명은 모두 학문을 좋아했는데, 한번은 어느 날 밤에 강학(講學)을 끝낸 뒤 삼경(三更) 즈음에 각자 침상에 가서 자려고 했다. 그때 갑자기 창밖에서 딸깍거리는 소리가 한참 동안 계속 들렸다. 주제천이 창틈으로 엿보았더니 백골의 한 아이가 정원의 사방을 달려 다니고 있었는데, 처음에는 손가락을 깍지 끼더니 잠시 뒤에는 팔을 흔들었다. 딸깍거리는 소리는 바로 뼈마디가 서로 부딪쳐 나는 소리였다. 주제천은 형제들을 불러 함께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한참 뒤에 주제천의 동생 주거천(周巨川)이 매서운 목소리로 한 번 꾸짖자 아이는 섬돌 위로 뛰어올랐고, 다시 소리치자 문으로 들어왔으며, 세 번째 소리치자 곧장 침상 위로 올라오려 했다. 주거천이 더욱 다급하게 꾸짖자 아이가 말했다.
“엄마 젖 좀 주세요!”
주거천이 손바닥으로 아이를 치자 아이는 바닥에 떨어졌다가 다시 일어나서 곧장 침상 위로 올라갔는데, 뛰어 올라가는 민첩함이 마치 원숭이 같았다. 집안 식구들이 그 소리를 듣고 괴이한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해 칼과 몽둥이를 들고 왔다. 아이가 또 말했다.
“엄마 젖 좀 주세요!”
집안 식구들이 몽둥이로 아이를 때렸더니, 몽둥이에 맞은 아이는 뼈마디가 별처럼 흩어졌다가 이내 다시 모이기를 여러 차례 했다. 아이가 또 말했다.
“엄마 젖 좀 주세요!”
집안 식구들은 자루에 아이를 담아 들고 멀리 나갔는데, 아이는 여전히 젖을 달라고 했다. 미 : 틀림없이 젖이 고픈 귀신이다. 집안 식구들은 성곽을 나가 4∼5리 떨어진 마른 우물에 아이를 던졌다. 다음 날 밤에 아이가 또 왔는데, 손에 자루를 들고 던지면서 신나게 뛰놀았다. 집안 식구들은 아이를 붙잡아 이전과 마찬가지로 자루에 담아 밧줄로 자루를 묶고 커다란 돌을 매달아 강에 빠뜨렸다. 며칠 후에 아이가 또 왔는데, 왼손에는 자루를 들고 오른손에는 끊어진 밧줄을 쥔 채 이전처럼 이리저리 달려 다니면서 놀았다. 집안 식구들은 미리 커다란 나무를 준비해서 그 속을 파내 북처럼 만든 뒤에 아이를 그 속에 몰아넣었다. 그러고는 커다란 철판으로 그 양 끝을 덮고 못을 박은 뒤에 자물쇠로 잠그고 커다란 돌을 매달아 장강(長江)에 띄워 보냈다. 아이는 돌을 지고 급히 밖으로 나오려 하면서 말했다.
“관을 만들어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후로 아이는 더 이상 오지 않았다. 그때는 [당나라] 정원(貞元) 17년(801)이었다.
74-2(2395) 산소(山?)
산소[산의 요괴]는 영남(嶺南)의 도처에 있는데, 발 하나에 발꿈치가 앞에 있고 손가락과 발가락이 세 개씩이다. 그 암컷은 연지와 분 바르기를 좋아한다. 산소는 큰 나무 속에 둥지를 만들고 나무 병풍과 장막을 두르고 사는데, 먹을 것을 매우 풍성하게 갖추고 있다. 남방 사람들 중에 산길을 가는 자들은 대부분 누런 연지와 분, 돈 등을 몸에 지니고 다니는데, “산공(山公)”이라 불리는 수컷은 사람을 만나면 반드시 돈을 요구하고, “산고(山姑)”라 불리는 암컷은 사람을 만나면 반드시 연지와 분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요구하는 것을 준 사람은 그들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당(唐)나라 천보(天寶) 연간(742∼756)에 북쪽에서 온 어떤 길손이 영남의 산길을 가다가 밤에 자주 나타나는 호랑이가 두려워서 나무 위에 올라가 잠을 자려고 했는데, 갑자기 암컷 산소를 만났다. 그 사람은 평소 약간의 재물을 가지고 다녔기에 나무에서 내려와 재배하면서 산고를 불렀다. 그러자 산고가 멀리 나무 속에서 물었다.
“어떤 물건을 가지고 있는가?”
그 사람이 연지와 분을 산고에게 주었더니, 산고가 매우 기뻐하며 그 사람에게 말했다.
“아무 걱정 말고 편안히 주무시게.” 미 : 요괴도 아첨을 좋아한다.
그 사람은 나무 아래에서 잤다. 한밤중에 호랑이 두 마리가 그가 자는 곳으로 다가오려 하자 산소가 나무에서 내려와 손으로 호랑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반자(斑子 : 호랑이)야, 내 손님이 여기에 계시니 속히 물러가거라.”
그러자 호랑이 두 마리가 떠났다. 다음 날 헤어질 때가 되자 산소는 매우 공손히 손님에게 감사를 표했다. 또 매년 산소는 사람과 함께 밭을 일구는데, 사람은 밭과 씨앗만 내줄 뿐 그 나머지 땅을 경작하고 씨앗을 심는 것은 모두 산소가 하는데도 곡식이 익으면 사람을 불러 공평히 나눈다. 산소는 성품이 소박하면서도 강직해 사람과 나눌 때 많이 가지지 않는다. 사람 또한 감히 많이 가지려 하지 않는데, 많이 가진 자는 역병에 걸린다.
천보 연간 말에 유천(劉薦)이라는 사람이 영남판관(嶺南判官)이 되었다. 그가 산길을 가다가 갑자기 산소를 만나자 요괴라고 외쳤더니 산소가 화를 내며 말했다.
“유 판관, 나는 혼자 잘 놀고 있는데 그대에게 무슨 누를 끼쳤다고 이처럼 나를 욕하시오?”
그러고는 나뭇가지로 올라가서 반자를 불렀다. 잠시 뒤에 호랑이가 오자 산소는 유 판관을 잡아가라고 했다. 유천이 겁에 질려 말을 채찍질하며 달아났지만 순식간에 호랑이에게 붙잡혀 호랑이 발아래에 앉혀졌다. 그러자 산소가 웃으며 말했다.
“유 판관, 다시 나를 욕할 게요?” 협 : 재미있다.
유천은 너무 무서워서 거의 기절할 뻔했다. 사람들이 유천을 부축해 돌아왔는데, 그는 며칠 동안 병을 앓고 나서야 비로소 나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