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문학의 이해 > 일반문학론
· ISBN : 9791173322419
· 쪽수 : 204쪽
· 출판일 : 2025-06-16
책 소개
목차
Photo 임효진 《오동나무와 나, 웅크린 쥐》
Fiction 최추영 《문을 열면 마주하는》
Criticism 윤아랑 《오컬트, 혹은 변덕스러운 픽션의 삶》
책속에서
보광나들목과 한남나들목 사이에는 오백 년이 넘은 느티나무 서낭당이 있다. 언젠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다 남자애들 서넛이 모여 농구를 하는 코트 바로 옆에서 늙은 여자가 제를 지내는 모습을 보았다. 그 장면이 무척 인상 깊었다. 막연히 기도하는 사람을 다시 만나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나 자주 지나는 길이 아니었다. 지도 앱으로 자주 그 곳을 들여다봤다. 강변북로 위로 조금씩 보이는 나무들 중에 그 나무가 있을 것 같았다. 지도에 표기된 이름으로 검색해보니 무당들의 블로그가 나왔다. 기도를 드리러, 신의 목소리를 좀 더 선명하게 듣고자 마음을 닦으러 가는 곳이라 했다. 한남동, 이태원 같은 번화가와 한강공원 등 많은 것들을 함께 즐길 수 있어 특히 젊은 무당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_ 오동나무와 나, 웅크린 쥐
사실 우리의 대화는 다정한 형태의 주고받음이 아니라 나의 일방적인 질문 폭격에 가까웠다. 나는 인공지능 챗봇을 대하듯이 윤을 다루었다. 처음 윤의 태도를 폭력적이고 차갑다고 비난했지만, 정작 윤을 폭력적으로 대하는 건 나였다. 나의 질문에 성실히 대답하는 윤을 보며 미세한 죄책감을 느꼈다. 윤과 대화하면 대화할수록 그가 새로운 방식으로 다정하다고 느꼈다. 차가운 사람이라 비아냥거렸던 것이 미안해질 만큼. 그러나 윤에게 데이터를 주는 거야, 하는 생각으로 합리화했다. 그는 기계적인 사람이니까 그에게 필요한 것을 주는 것이라고.
_ 문을 열면 마주하는
오컬트란 낱말은 아무래도 이상하다. 발음이나 그것이 지시하는 세계관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이상한 건 순전히 이 낱말이다. 어디서든 쉬이 마주치고 거론할 수 있다고 해서 이상하지 않은 건 아니며, 오히려 그런 상황이 오컬트란 낱말을 더더욱 이상하게 만든다고 해야 한다. 그리고 이 이상함이란, 언어로서 그것의 고정성이 갈수록 모호해진다는 데서 기인한다.
_ 오컬트, 혹은 변덕스러운 픽션의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