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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중국사 > 중국고대사(선사시대~진한시대)
· ISBN : 9791173578946
· 쪽수 : 484쪽
· 출판일 : 2026-04-01
책 소개
목차
역자(譯者) 서(序)
삼가주(三家注) 서(序)
권1 오제본기(五帝本紀) 제1
권2 하본기(夏本紀) 제2
권3 은본기(殷本紀) 제3
권4 주본기(周本紀) 제4
권5 진본기(秦本紀) 제5
저자소개
책속에서
사마천의 『사기』라고 하면 흔히 하는 말이 ‘다양한 인간 군상에 대한 해부’ 혹은 ‘인간 지혜의 보고서’라고 한다. 특히 이는 주로 열전(列傳)을 두고 하는 말인데, 틀린 말은 아니지만 피상적이다. 우리는 속으로 들어가서 군군신신 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 그중에서도 공(公)의 영역인 군군신신(君君臣臣)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21세기 민주 사회에서 무슨 군신(君臣)이냐고 하겠지만, 예나 지금이나 모든 조직에는 상하(上下) 관계가 필수적이다. 따라서 리더십과 팔로우십은 옛날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전쟁을 비롯한 큰일을 기록한 역사는 옛날이야기가 되고 말지만 그와 관련된 사람 이야기, 즉 군신 간의 의견 충돌과 의견 합치 등을 빚어내는 인간 내면을 조명하는 역사는 늘 지금의 이야기가 된다. 이는 사마천의 『사기』가 2000년이라는 시간 거리를 뛰어넘어 지금도 펄떡펄떡 생동감이 넘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역자(譯者) 서(序)】
순은 제위를 밟게 되자 수레에 천자의 기를 꽂고 아버지 고수에게 가서 인사를 올렸는데, 화순하면서도 조심하기를[夔夔] 오직 삼가며 자식의 도리 그대로 했다. 동생 상을 봉해 제후로 삼았다. 순의 아들 상균(商均) 또한 (요의 아들 단주처럼) 똑똑하지 못했는데[不肖], 이에 순은 마침내 우(禹)를 하늘에 미리 천거했다[豫薦]. 17년이 지나 붕했다. 삼년상을 마치자 우 역시 순이 요의 아들에게 했던 것처럼 마침내 순의 아들에게 양보했다가, 제후들이 귀의한 다음에야 천자의 자리를 밟았다. 요의 아들 단주, 순의 아들 상균 모두 강토(疆土)를 소유했고, 그리하여 선조의 제사를 모셨다. 자기 신분에 맞는 옷을 입고, 예악(禮樂)도 그와 같았다. 빈객(賓客)의 자격으로 천자를 만났고 천자도 그들을 신하로 대하지 않았으니[弗臣], 감히 함부로 하지 않겠다는 뜻을 드러내 보여준 것이다.
【오제본기(五帝本紀) 제1】
【집해(集解)】 장안(張晏)이 말했다. “우(禹)나 탕(湯)은 모두 자(字)이다. 두 왕은 당우(唐虞-요순) 시대의 애쓰고 꾸밈[文]을 멀리하고 고양(高陽)의 질박함[質]을 따랐기에, 그래서 하나라와 은나라의 왕들은 모두 이름을 칭호[號]로 삼았던 것이다.” 시호법에 이르기를 “학정을 제거하고 잔적을 없앤 것[除虐去殘]을 일러 탕(湯)이라고 한다”라고 했다. 【색은(索隱)】 탕의 이름은 이(履)이니,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나 소자 이(履)”라고 한 것이 그것이다. 또 천을(天乙)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초주(譙周)가 말하기를 “하나라와 은나라의 예법에서는 살아 있을 때는 왕(王)이라고 하다가 죽었을 때는 사당의 신주를 갖고서 불렀는데, 둘 다 제의 이름과 짝한다. 하늘은 또한 제(帝)와 같은 뜻이고 은나라 사람들은 탕을 높였기에, 그래서 천을(天乙)이라고 칭했다”라고 했다. 설에서 탕까지 모두 14대이니, 그래서 『국어(國語)』에서 말하기를 “현왕(玄王)이 상나라를 위해 부지런히 일하시어 14대가 흥했다”라고 했다. 현왕은 설(契)이다.
【은본기(殷本紀) 제3】
포사가 잘 웃지 않아 유왕이 온갖 방법으로[萬方] 그녀를 웃기려 했으나, (그녀는) 일부러[故] 웃지 않았다. 유왕은 봉수(烽燧)를 올리고 대고(大鼓-큰 북)를 울려서 적이 쳐들어와 봉화를 올리는 것처럼 했다. 제후들이 모두 달려왔지만 도착해보니 적군은 보이지 않았고, (이를 본) 포사는 마침내 크게 웃었다. 유왕이 기뻐하며 여러 차례 봉화를 올렸다. 그 후에는 믿지 않게 되어 제후들도 더는 오지 않았다.
【주본기(周本紀) 제4 - 349쪽】
진왕 정은 세워진 지 26년 만에 비로소 천하를 집어삼켰다[幷=倂呑]. 36개 군(郡)을 두고 칭호를 시황제(始皇帝)라고 했다. 시황제가 51살에 붕(崩)하자 아들 호해(胡亥)가 세워졌으니, 이 사람이 2세 황제(二世皇帝)다. 3년에 제후들이 아울러 일어나[並起] 진나라에 반기를 드니, 조고(趙高)가 2세를 죽이고 자영(子嬰)을 세웠다. 자영이 세워진 지 한 달여 만에 제후들은 그를 죽이고 드디어 진나라를 멸망시켰다. 그 이야기는 「시황 본기(始皇本紀)」 안에 있다.
【진본기(秦本紀) 제5 - 482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