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logo
x
바코드검색
BOOKPRICE.co.kr
책, 도서 가격비교 사이트
바코드검색

인기 검색어

실시간 검색어

검색가능 서점

도서목록 제공

생명의 에너지를 일깨워라 2

생명의 에너지를 일깨워라 2

(초월과 변형을 위한 오쇼의 쿤달리니 이야기)

오쇼 (지은이), 손민규 (옮긴이)
젠토피아
27,000원

일반도서

검색중
서점 할인가 할인률 배송비 혜택/추가 실질최저가 구매하기
25,650원 -5% 0원
270원
25,380원 >
yes24 로딩중
교보문고 로딩중
11st 로딩중
영풍문고 로딩중
쿠팡 로딩중
쿠팡로켓 로딩중
G마켓 로딩중
notice_icon 검색 결과 내에 다른 책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중고도서

검색중
서점 유형 등록개수 최저가 구매하기
로딩중

eBook

검색중
서점 정가 할인가 마일리지 실질최저가 구매하기
로딩중

책 이미지

생명의 에너지를 일깨워라 2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생명의 에너지를 일깨워라 2 (초월과 변형을 위한 오쇼의 쿤달리니 이야기)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동양철학 > 동양철학 일반
· ISBN : 9791185151052
· 쪽수 : 464쪽
· 출판일 : 2014-04-25

책 소개

명상에 관심을 가진 분들 대부분이 신비체험을 원하고, 이 책은 바로 그 신비체험에 관한 내용이다. 이 강의는 본래 힌디어로 행해진 것이다.

목차

1권
역자 서문
잠자는 뱀을 깨워라 · 9
물질과 신은 하나이다 · 47
명상은 죽음이자 부활이다 · 87
신의 은총과 우리의 노력 · 125
결정적인 순간이 다가왔다 · 167
쿤달리니와 삭티파트 · 221
이제 명상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 265
호흡의 연금술 · 315
쿤달리니가 그대를 변형시킬 것이다 · 343

2권
역자 서문
쿤달리니 에너지의 상승 · 9
먼저 그대 자신을 준비하라 · 63
자유에 이르는 쿤달리니의 길 · 113
일곱 가지 신체와 차크라의 신비 · 167
종교와 쿤달리니 · 225
삭티파트, 에너지의 전이 현상 · 281
쿤달리니, 초월의 원리 · 319
탄트라의 신비 · 365
니르바나, 궁극의 차원 · 413

저자소개

오쇼 (지은이)    정보 더보기
오쇼의 가르침은 어떠한 틀로도 규정하기 힘들 만큼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의 강의는 삶의 의미를 묻는 개인적인 문제에서부터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시급한 정치ㆍ사회적인 문제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주제를 망라한다. 오쇼의 책은 그가 직접 저술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국적의 청중들에게 들려준 즉흥적인 강의들을 오디오와 비디오로 기록하여 책으로 펴낸 것이다. 그는 자신의 강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하건 그 말은 지금 이 시대의 당신들을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다가오는 미래 세대를 위한 말이기도 하다.” 런던의 『선데이 타임스Sunday Times』는 20세기를 빛낸 천 명의 위인들 중 한 사람으로 오쇼를 선정했으며, 미국의 작가 탐 로빈스(Tom Robbins)는 오쇼를 ‘예수 이후로 가장 위험한 인물’로 평하기도 했다. 인도의 『선데이 미드데이Sunday Mid-Day』는 인도의 운명을 바꾼 열 명의 인물을 선정했는데, 그중에는 간디, 네루, 붓다 등의 인물과 더불어 오쇼가 포함되어 있었다. 오쇼는 자신의 일에 대해 새로운 인간이 탄생하도록 기반을 닦는 것이라고 했으며, 이 새로운 인간을 ‘조르바 붓다(Zorba the Buddha)’로 부르곤 했다. 조르바 붓다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속 주인공인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세속의 즐거움을 누리는 동시에, 붓다와 같은 내면의 평화를 겸비한 존재를 일컫는다. 오쇼의 가르침에 일관되게 흐르는 정신은, 과거로부터 계승되어온 시대를 초월한 지혜와 오늘날의 과학문명이 지닌 궁극적인 가능성을 한데 아울러 통합하는 것이다. 또한 오쇼는 점점 가속화되는 현대인들의 생활환경에 맞는 명상법을 도입하여 인간의 내면을 변화시키는 데 혁명적인 공헌을 했다. 그의 독창적인 ‘역동 명상법’들은 심신에 쌓인 스트레스를 풀어줌으로써 일상생활 속에서 더 수월하게 평화와 고요함을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펼치기
손민규 (옮긴이)    정보 더보기
오쇼의 제자로 입문한 후 20여 년 동안 인도를 오가며 여러 스승들을 만나 교류했다. 영혼의 테러리스트로 알려진 유지 크리슈나무르티를 만나 큰 감화를 받았고, 오쇼의 법맥을 이은 끼란지와 12년 동안 친교를 나누며 깊은 가르침을 받았다. 명상 서적 전문 번역가로 일하면서 50여 종의 책을 한국에 번역, 소개했다. 현재 오쇼와 끼란지의 가르침에 대해 공부하는 오쇼코리아(oshokorea.com)를 이끌고 있다.
펼치기

책속에서

나는 그대들이 왜 여기에 왔는지 모른다. 아마 그대들 또한 그 이유를 모를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왜 사는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살아간다.
우리는 스스로에 대해 ‘왜?’라고 자문하지 않는다. 우리는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이렇게 삶 전체를 덧없이 낭비한다. 그러므로 그대들 모두가 목적도 모르면서 여기에 왔다 해도 그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몇몇 사람은 그 목적을 인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우리는 깊은 잠과 같은 무의식 상태에서 살아간다. 걷고, 보고, 듣는 것 모두가 그런 상태에서 일어난다. 그래서 우리는 분명하게 존재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명확하게 말해진 것을 듣지 못한다. 사방에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분명한 것들을 경험하지 못한다. 따라서 그대들이 이유도 모르면서 무의식적으로 여기에 왔다 해도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우리는 살아가는 이유를 모른다.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너무나 무의식적이기 때문에 숨 쉬고 있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한다. 그러나 내가 이 자리에 앉아있는 이유를 나는 잘 알고 있다. 그것이 바로 그대들에게 나누어주고자 하는 것이다.
인간의 의문은 수많은 생 동안 계속 이어진다. 그리고 수많은 생을 거치면서 노력한 후에야 지복, 평화, 진리, 신, 또는 모크샤나 니르바나라고 불리는 세계를 힐끗 엿보게 된다. 그 세계를 어떤 이름으로 부르건 그대의 자유이다. 사실, 그것을 표현할 단어는 없다. 그대는 수많은 생을 거친 후에야 그 세계를 깨닫는다.
그 세계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것을 발견한 후에는 완벽한 즐거움을 만끽하는 일만 남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터무니없는 착각이다. 그 세계를 얻은 후에 그들은 그것이 새로운 노동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거기엔 새로운 과제가 기다리고 있으며 휴식할 틈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것을 발견하려고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던 사람들이 일단 그것을 발견한 후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을 나누어주려고 사방으로 달려간다. 그렇지 않았다면 붓다가 여러 곳을 방문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마하비라가 우리의 문을 두드리지도 않았을 것이며, 그리스도가 우리를 초대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궁극의 세계와 접촉한 후에는 새로운 과제가 시작된다. 삶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모든 것은 그대가 그것을 발견한 후에 즐거움과 지복을 가져다준다. 그러나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은 더 즐겁고 행복한 일이다.
지복의 세계, 또는 신의 세계에 들어가 축복을 맛본 사람은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야 한다. 활짝 핀 꽃이 그 향기를 널리 퍼뜨리듯이, 구름이 비를 뿌리고 파도가 밀려와 해안을 포옹하듯이, 누군가 저 너머의 것을 발견했을 때 그의 영혼은 사방으로 달려 나가 그 향기를 퍼뜨리기를 갈구한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완전히 깨어있다. 나는 내가 여기에 있는 이유를 잘 알고 있다. 그대들과 내가 똑같은 이유로 여기에 있고, 똑같은 차원에서 서로 만난다면, 우리의 만남은 깊은 의미를 지닐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서로 스쳐 지나가는 사이일 뿐 만남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그대들이 나와 똑같은 이유로 여기에 있지 않다면, 아무리 육체적으로 가까이 있다 해도 우리 사이엔 만남이 일어날 수 없다.
나는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을 그대들 또한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것은 너무나 가까이 있다. 어떻게 이것을 못 보는지 놀라울 정도이다. 혹시 그대들은 의도적으로 눈과 귀를 닫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그런 의심이 들 때가 많다. 일부러 눈과 귀를 닫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것을 놓칠 수 있을까?
예수는 ‘눈 있는 자가 보지 못하고 귀 있는 자가 듣지 못한다.’라고 여러 차례 말했다. 귀먹은 자만 듣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멀쩡하게 눈 있는 자가 보지 못하고, 멀쩡하게 귀 달린 자가 듣지 못한다. 그들 역시 장님이며 귀머거리이다. 너무나 가까이 있는 것, 사방에서 둘러싸고 있는 것을 보지도 듣지도 느끼지도 못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그대가 보는 방식에는 어떤 장애가 있다. 이것은 의심할 바 없이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그것은 아주 사소한 장애일 뿐 심각한 것이 아니다. 마치 눈에 박힌 작은 티끌 하나 때문에 산 전체를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티끌 하나가 그대를 장님으로 만들 수도 있다. 논리적으로 본다면, 산 전체를 못 보게 하는 장애물은 거대한 것이어야 한다. 산술적으로 본다면, 산을 보지 못하게 가로막는 장애물은 산보다 더 거대한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 장애물은 미세한 먼지 알갱이에 불과하다. 먼지가 우리의 눈을 덮고 있기 때문에 산 전체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내면의 시야를 가로막는 장애물도 산처럼 거대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작은 먼지 알갱이에 불과하다. 그것이 우리를 실체를 보지 못하는 소경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 하찮은 장애물 하나가 우리로 하여금 삶의 모든 진리를 보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
인식할 수 있는 진리만이 우리에게 의미를 가진다. 우리의 지각 능력은 그 진리를 이해하고 포착하기 위해 창조된 것이다. 바다가 아무리 큰 소리로 불러도 귀가 없는 사람은 듣지 못할 것이다.
설령 바다가 영원토록 포효한다 해도 그는 그 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다. 듣는 귀가 없다면 바다의 포효는 무의미하다. 찬란한 햇빛이 문간을 비추어도 눈이 없는 사람은 보지 못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손이 없는 사람은 아무것도 만질 수 없다. 아무리 그가 만지기를 원한다 해도.
신과 지복에 대해 많은 말들이 있다. 세상에는 수많은 경전이 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사원과 교회, 모스크에서 기도하고 찬양의 노래를 부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신과 긴밀한 교류를 나누는 것 같지는 않다. 우리가 그를 보고 그의 음성을 듣거나, 우리의 존재 깊은 곳에서 그의 심장이 고동치는 소리를 느끼는 것 같지는 않다.
이 모든 것이 그저 공허한 말장난에 불과한 것 같다. 마치 우리는 신에 대해 끝없이 떠들기만 하면 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것 같다.
그러나 귀머거리가 평생 동안 음악에 대해 떠든다 해도 그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장님이 빛에 대해 열심히 떠들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물론, 그들이 ‘나는 장님도 아니고 귀머거리도 아니다.’라는 착각에 빠질 가능성은 있다. 그렇게 계속 떠들어댐으로써 그들은 소리가 무엇이고 빛이 무엇인지 안다고 믿기 시작한다.
우리가 지구 방방곡곡에 건설한 교회와 사원들은 이런 착각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거기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가진 것은 환상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그들은 기껏해야 신을 믿을 뿐, 직접 알지는 못한다. 그리고 믿음은 끝없는 말장난과 마찬가지로 무의미한 것이다.
우리는 어떤 말이 설득력 있게 들릴 때 그 말을 믿기 시작한다. 어떤 사람이 신의 존재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반면, 우리가 그에 대항해 신의 부재不在를 증명하는데 실패했다고 하자. 그럴 때 우리는 패배감을 느끼고 신을 인정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믿음은 ‘앎’이 아니다. 우리가 빛에 대해 아무리 설득력 있는 주장을 펼쳐도 장님은 그 빛을 알 수 없다. 그에게는 볼 눈이 없다. 나는 ‘앎’이 가능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이해하고 이 자리에 앉아있다.
우리의 내부에는 어떤 센터center가 있다. 비록 지금은 활동하지 않지만 그 센터가 있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 센터를 통해 크리슈나가 앎에 도달했으며 환희의 춤을 추기 시작했다. 예수가 앎에 도달하고 십자가에 매달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지금 무엇을 하는지 모르고 있나이다.’라고 외친 것도 그 센터를 통해서이다. 마하비라도 이 센터에 대해 알고 있었으며, 고타마 싯다르타 또한 이 센터를 통해 붓다가 되었다.
우리의 내면에 이러한 센터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 센터는 곧 내면의 눈이며 귀이다. 다만 깊이 잠들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은 그 센터를 일깨우는데 도움을 주기 위함이다.


앞으로 도래할 몇 십년간은 인류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다. 이제 소수의 영적인 사람들만으로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강력한 영성靈性,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대규모의 영적인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물질주의라는 수렁에서 이 세상을 구해내는 것이 불가능하다.
앞으로 도래하는 시기는 인간의 삶에서 아주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다. 다가오는 50년 동안이 결정적인 시기로 작용할 것이다.
종교가 살아남거나 아니면 종교에 반대되는 모든 것이 살아남거나 둘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이 50년이 붓다, 마하비라, 크리슈나, 예수, 모하메드, 라마Rama 등의
선각자들이 일구어놓은 일을 결정할 것이다. 천칭 저울로 비교한다면, 이 빛나는 존재들은 우리 쪽에 있고, 다른 쪽에는 비정상적인 정치가들, 유물론자들, 그리고 망상과 무지에 찬 사람들이 있다.
우리 쪽에 소수의 사람들이 있는 반면 그들 쪽에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있다.
오랫동안 계속되어온 이 투쟁이 곧 절정에 이를 것이다. 그대도 알고 있듯이, 우리 쪽에는 소수의 사람들 밖에 없다. 지금 상태로는 별로 희망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나는 실망하지 않는다.
나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에 영적인 혁명을 일으킬 수 있는 간단하고도 자연스러우며 쉬운 길이 발견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현대에는 소수의 사람들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고대에는 단 한 사람이 깨닫는 것으로도 충분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이 시점에서 소수의 사람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제는 수많은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대규모의 영적인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그런 운동만이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이 포스팅은 제휴마케팅이 포함된 광고로 커미션을 지급 받습니다.
도서 DB 제공 : 알라딘 서점(www.aladin.co.kr)
최근 본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