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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서양철학 > 윤리학/도덕철학
· ISBN : 9791185295206
· 쪽수 : 240쪽
책 소개
목차
서문 5
1장 엄청난 낙천주의와 병적 혐오 13
2장 진화로는 충분하지 않은 이유 30
3장 인간 본성의 변화? (또는 복제양 돌리뿐만 아닌 비자연적인 행위) 43
4장 책임감 있게 신처럼 굴기 54
5장 부자가 생물학적으로도 더 부유해질까? 74
6장 증강이 사람들을 도덕적으로 타락시키는가? 90
7장 증강 기획 105
참고문헌 217
찾아보기 227
역자 후기 233
비오스총서를 펴내며 237
책속에서
▲ 저자 서문
최근 생명의료 향상 윤리에 관한 「인간 너머?(Beyond Humanity?)」라는 제목의 분량이 많은 학술서를 옥스퍼드 대학 출판사에서 출간했다. 그 책은 학문적인 독자들을 위한 책이다. 누구보다도 전문적인 생명윤리와 도덕철학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했다. 하지만 독자 다수가 그 책에서 다룬 주제에 관심이 있을 것 같아 더 넓은 독자층을 염두에 두고 이 책을 썼다.
이 책은 방대한 참고문헌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주석을 표시하지 않았다. 이 책에서 내가 언급한 것에 대한 참고자료를 원하는 사람들은 「인간 너머?」를 참고하기를 추천한다. 이 참고문헌은 책의 마지막 부분에 너무나 지루하게 넓은 공간을 차지한다.
이 책 「인간보다 나은(Better than Human)』은 「인간 너머?」의 축약본이 아니다. 이 책은 「인간 너머?」가 출판된 이후에 떠오른 수없이 많은 단상을 포함하고 있다. 그렇더라도 「인간보다 나은」은 「인간 너머?」보다 상당히 군살을 뺀 책이다. 어느 정도 복잡한 논의와, 학자들에게는 적합하지만 일반 독자들을 여지없이 깊은 잠에 빠져들게 하는 난해한 논의는 생략했다.
게다가 이 책은 약간 다른 내용을 포함하고 있고, 두 책은 상당히 다른 양식으로 쓰였다. 이 책은 형식에 얽매어 있지 않고 대화하는 듯하다. 또한 주제에 대해서 그리고 그 주제가 어떻게 제시되고 논의되는지에 대해서 나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 책이 전작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전작을 쓰는 데 도움을 주셨던 모든 분에게 다시 감사를 표해야겠지만 「인간 너머?」에서 감사를 표했던 분들은 다시 언급하지 않겠다. 다만 훌륭하게 연구를 보좌해준 매슈 브래덕, 휘트니 케인, 샌디 아네슨에게, 그리고 탈고되기 전 원고에 값진 논평을 해준 제프 홀즈그레프, 러셀 파월에게 특별히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또한 옥스퍼드 대학 출판사의 피터 올린과 액션 시리즈 철학의 탁월한 편집장인 월터 시낫-암스트롱에게 감사한다.
2010년 7월 25일
앨런 뷰캐넌
▲ 역자 후기
모든 공부하는 사람들이 마찬가지이겠지만 백지에 한 땀 한 땀 수놓아지는 글을 보면서 뿌듯함을 느끼다가도 그 글을 닫을 즈음이 되면 책임감으로 어깨는 천근만근이 되어가고,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에 내몰리게 된다. 이 두어 장의 말로 220여 장에 이미 놓아진 수를 어찌해볼 요량은 아니다. 이 책은 저자도 언급하고 있다시피 전문가들만을 위한 책이 아니다. 오히려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한 책이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이 일반 독자들에게 난해하게 다가간다면 이는 모두 역자들이 부족한 탓이다. 번역하는 입장에서 원작의 의도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우려되어 우선 독자들의 넓은 아량을 구하고, 현학들의 지도 편달을 바란다. 그리고 번역하면서 원서 외에 『생명의 윤리를 말하다: 유전학적으로 완벽해지려는 인간에 대한 반론』 (마이클 샌델 지음, 강명신, 김선욱 옮김, 동녘, 2010)을 참고하였다는 점을 밝혀둔다.
저자는 아주 위태롭고 좁은 길을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항상 양시론이나 양비론은 무용하고, 중도(中道)는 위태롭다. 저자는 중도를 간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왠지 저자의 입장이 명백하게 생명의료 기술의 개입을 옹호하는 쪽으로 치우쳐 있는 듯하다. 정말 저자는 중도를 걷는가? 그렇다. 우리는 조금 거시적으로 증강에 대한 논의를 책 밖으로 확장시켜볼 필요가 있다. 복잡한 논란에 끼어들자는 게 아니다. 단지 지금까지의 지배적인 담론이 증강에 대한 반대였다는 흐름을 파악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저자가 어떤 길을 가고 있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마치 한쪽으로 기울어 있는 저울의 수평을 맞추듯 저자는 저울의 기울어진 반대편에 분동을 하나씩 하나씩 올려놓듯 논의를 진행해간다. 이는 저울을 반대편으로 기울이기 위함이 아니다. 단지 그 수평 자체가 의미가 있다. 이러한 예는 한국 철학사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조선시대 율곡 이기론(理氣論)의 핵심은 이기지묘(理氣之妙)에서 찾을 수 있다. 이는 그동안 항상 절대의 자리를 차지하며 순선의 핵심이었던 이(理)와 탁함의 근원인 기(氣)를 불가분의 관계로 설명함으로써 보다 실현 가능한 성인(聖人)이 되는 길을 열었다. 그동안 기는 버려야하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이와 떨어질 수 없으니 버릴 수도 없을뿐더러 다스려야 하는 것이 되었다. 이와 같이 저자도 한쪽의 논의를 모두 폐기하자거나 다른 한쪽의 논의를 전적으로 취해야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저자는 글 첫머리에서 생명의료 증강을 무작정 반대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고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오히려 향상을 위한 시도가 역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위험성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고도 주장한다.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인간보다 더 나은 인간이 될 가능성을 항상 열어두어야 한다고도 말한다. 이 책에서 이러한 양날의 검과 같은 논의를 살펴보기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이것은 오히려 저자의 기우에서 비롯한, 항상 균형감을 유지하려는 의도에 의한 것이다. 아마도 저자 스스로도 본인이 얼마나 좁고 위태로운 길을 가고 있는지 알고 있는 듯하다. 저자는 증강에 반대하는 논거들을 철저하게 반박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반박이 그 위험성마저 무마시키려는 시도는 아니다. 이것은 단지 증강에 대한 반대가 얼마나 팽배해 있는지에 대한 방증일 뿐이다.
기술의 발전이 이미 우리 곁에서 우리와 함께 한다는 사실은 더 이상 놀랄 일도 아니다. 단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한 태도가 문제일 뿐이다. 막연한 두려움이나 대중을 호도하는 수사어구들은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다. 설령 유용성의 논증으로 설득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단순히 유용성의 문제로 환원해서도 안 된다. 그러한 기술들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위험성에 대한 정확하고 정당한 근거와 예측이 담보되어야 하고,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생명의료 증강 즉, ‘향상’에 대한 보다 포괄적인 담론이 형성되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향상’에 대한 담론의 말단에 놓여있는 논의이다. 이 책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증강에 대한 논의의 거대한 물줄기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역자들은 본 역서를 통해 독자들이 그 거대한 물줄기와 조우하기를 기대해본다. 또한 저자와 마찬가지로 그 거대한 물줄기를 마주하고도 거침이 없기를 기대해본다.
이 책 「인간보다 나은 인간」에서 철학자이자 생명윤리학자인 앨런 뷰캐넌은 생명의료 증강 혁명의 윤리적 딜레마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 고심한다. 우리는 생명의료 증강을 통해 더 똑똑해질 수 있고, 더 좋은 기억력을 가질 수 있고, 더 강해지고 더 빨라질 수 있으며, 더 강인한 체력을 가질 수 있고, 훨씬 더 오래 살 수도 있으며, 질병과 노화에 더 강한 저항력을 가질 수 있고, 더 풍성한 정서적 삶을 향유할 수도 있다. 이러한 생명의료 증강이 초래할 이점들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생명의료 증강을 거부한다. 이것을 거부하는 근거는 무엇이며, 그러한 근거가 올바르다고 할 수 있는가? 뷰캐넌은 증강에 대한 논의가 잘못된 가정들과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수사적 논증들로 왜곡되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점에서 이 책의 의의는 단순히 의학 기술로 인간 증강에 대해 찬성하기보다는 기존의 선입견에 기대어 인간 증강을 판단하는 데 대한 우려를 표함에 가깝다. 이는 우리가 인간이 포크를 사용하기까지 500년이란 세월이 걸렸으며, 에테르의 사용을 금지하여 몇백 년간 마취를 하지 못하고 수술대에 오른 수많은 사람들이 감수해야만 했던 끔찍한 고통을 상기해보면 명확해질 것이다. 윤리학은 어쩌면 ‘해서는 안 되는 것’에 대한 강요가 아니라, ‘해야만 하는 것’에 대한 사고와 운신의 여지를 넓히는 역할에 그 의의가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졸역에 대한 독자들의 넓은 아량에 호소하면서 감사의 말로 글을 마치고자 한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많은 분들의 노고와 격려가 있었다. 항상 묵묵히 지켜봐주시는 부모님과 식구들, 지금까지 가르침을 주신 은사님들과 기꺼이 토론에 응해주신 이어강(Bernhard Irrgang, TU Dresden) 교수님, 동학 미하엘(Michael Funk, TU Dresden), 로도스출판사의 김수영 사장님, 역자들의 우문에도 항상 현답으로 응원해주신 권복규 교수님께 특별히 감사드린다.
2015년 8월 한국과 독일의 여름을 오가며
심지원, 박창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