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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고대~고려시대 > 한국고대사 > 한국고대사 일반
· ISBN : 9791185346939
· 쪽수 : 324쪽
책 소개
목차
머리말; 삼국유사를 새롭게 봐야 할 이유
프롤로그;
역사를 새롭게 보면서 활력있는 삶을 위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길….
1부 고조선과 삼한
단군신화와 왕검 조선
위만조선
마한과 한사군
말갈과 발해
이서국
가야
부여
고구려
변한과 백제
진한과 사절유택
2부 상고기의 신라
신라 시조 혁거세왕
제2대 남해왕
제3대 노례왕
제4대 탈해왕
경주 김 씨 시조 김알지
제8대 아달라왕 대
연오랑과 세오녀
제13대 미추왕대 죽엽군
제17대 나물왕대 김제상
제18대 실성왕
제21대 소지왕대 사금갑
제22대 지철로왕
3부 중고기의 신라
제24대 진흥왕(真興王)
제25대 진지왕과 도화녀 비형랑
제26대 진평왕대 천사옥대
제27대 선덕여왕의 지기삼사
제28대 진덕여왕
김해 김 씨 중시조 흥무대왕 김유신
제29대 태종무열왕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719년 (대)조영이 죽자, 그 시호를 고왕(高王)이라 했다. 세자(世子)가 왕위에 오르자 당 현종이 왕에 책봉했다.” 그런데 중국의 연호를 버리고 스스로 인안(仁安)이라는 연호를 만들며 해동(海東)의 큰 나라로 컸다. 중국 입장에서는 커도 너무 큰 것이다. 5경(京)·15부(府)·62주(州)의 지방행정 제도를 두었다. 중국은 발해가 너무 얄미워서 손 한번 봐주고 싶었나 보다.
“926년 거란(契丹)이 발해를 공격해서 승리한 후, 거란이 이 지역을 지배했다.”라고 중국 역사서인 『통전(通典)』에서는 ‘발해’가 ‘당’에게 까불다가 ‘거란’한테 까불다가 ‘거란’한테 혼났다고 속내를 드러낸다. -〈고조선과 삼한〉 ‘말갈과 발해’
신라 시조 혁거세왕은 나라를 다스린지 61년 되는 해에 하늘로 올라갔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하늘로 올라갔다는 것이지 죽었다는 뜻이 아니다. 설사 붕어했다고 해도 혁거세왕은 참으로 오래 살았다.
생몰년은 서기전 69년부터 서기 4년이며 재위 년은 서기전 57년부터이므로 만으로 73세를 산 것이다. … 혁거세왕은 올라가서도 1주일이나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장사를 지내려고 해도 시신이 없으니 왕비는 물론 태자를 비롯한 신료 대신들이 모두 황당했을 것이다.
그런데 7일 후, 왕의 죽은 육체가 땅에 흩어져 떨어졌고 왕후도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살아서 승천한 왕이 죽어서 몸만 돌아왔다. 문제는 온전히 내려온 것도 아니라 흩어져서 떨어져 내려왔다. _〈상고기의 신라〉 ‘신라 시조 혁거세왕’
토함산에 지은 돌집〔石塚〕을 ‘무덤형의 돌무지’로 보고, 탈해가 이 안에 머물렀다는 사실을 죽음과 재생을 표상하는 입사식(入社式)으로 이해한 학자도 있다. 또한, 웅녀가 굴에 들어가 일광금기(日光禁忌) 등을 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와 달리 피신해서 와신상담한 것이라면 어떨까?
뜻대로 이루지 못해서 7년 만에 태어난 탈해가 일주일, 즉 7일이라는 상징성을 가진 기간 절치부심으로 모종의 준비를 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초기 정착에 실패해서 토함산으로 피신한 탈해가 7일 동안 계략을 낸 것이 바로 동향 출신으로 정착에 성공한 호공 세력과의 연합을 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신라인들의 눈으로 볼 때는 ‘야합’이기도 하다. 그런 야합을 들키지 않고 정상으로 권력과 재산을 넘겨주기 위해 벌인 일이 ‘숯 묻기’가 아닌가 한다. 주위의 눈을 피하려고 벌인 해프닝으로 사실은 ‘눈 가리고 아웅 하기’와 진배없다. 하지만 신라인들을 속였다. 아니 어쩌면 인정을 받아 신라 지배세력들이 모르고 속은 것이 아니라 알고도 속아 준 것이 아닌가 싶다. _〈상고기의 신라〉 ‘제4대 탈해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