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중국사 > 중국사 일반
· ISBN : 9791173573477
· 쪽수 : 536쪽
· 출판일 : 2025-07-23
책 소개
목차
머리말 AI 시대, 질문하는 역사 공부
1 중국 최초의 황제 진시황, 희대의 폭군인가 중국 통일의 영웅인가?
우리는 진시황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 ‘아웃라이어’ 진시황이 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은 이후 무엇을 하였는가? | 진시황은 왜 대규모 토목공사를 시행하였을까? | 진시황은 어떻게 그 넓은 영역을 일원적으로 통치할 수 있었을까? | 진시황은 ‘폭군’의 대명사인가? | 오늘날 우리에게 진시황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2 실크로드는 중국 고대 제국과 어떻게 연결되었을까?
실크로드란? | 실크로드는 언제 ‘개통’되었을까? | 실크로드에는 누가 오갔을까? | 실크로드 횡단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은? | 중국 왕조에 도착한 후 내지에서의 활동은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 오늘날 우리에게 실크로드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3 진한시대 사람들이 계약서를 작성한 이유는?
2000년 전 중국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 중국 고대사회 계약서 '권서'는 어떤 형태였을까? | 개인 간의 물자 거래 시 매번 계약서를 작성했을까? | 국가권력은 개인의 매매를 어디까지 파악하여 관리했을까? | 옷을 거래할 때조차 계약서를 쓴 이유는? | 계약서 작성의 진짜 목적은? | 오늘날 우리에게 진한시대 생활사가 갖는 의미는?
4 유일한 여성 황제, 무측천을 어떻게 볼 것인가?
우리는 무측천을 왜 알아야 할까? | 무측천은 어떻게 태종의 여인에서 고종의 여인이 되었나? | 당시 사람들은 무측천의 재입궁을 어떻게 봤을까? | 무측천은 어떤 과정을 거쳐 황제가 되었나? | 무측천을 ‘여성’ 황제로 이해하는 것이 맞을까? | ‘주’의 황제 무측천은 왜 ‘당’의 부활을 선택했나?
5 당대 환관, 그들은 역사 속 악인에 불과한가?
당대 환관을 통해 무엇을 알 수 있을까? | 중국사에서 당대 환관이 특별한 이유는 무엇인가? | 당대 환관은 노비인가? 관인인가? | 환관은 어떻게 권력에 다가섰는가? | 당대 환관의 활동은 무엇을 남겼는가?
6 왜 당의 통치 시스템을 중국 전통 왕조의 전형이라고 하는가?
당이 만든 전형은 무슨 의미를 갖는가? | 당을 왜 율령제 국가라고 하는가? | 중앙 통치 시스템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 지방의 행정구역은 어떻게 편성되는가? | 제도는 살아 있는가? 죽어 있는가?
7 장안은 왜 ‘기나긴 평안’을 영속하지 못했나?
장안의 번영과 쇠퇴는 무엇을 말하는가? | 당대에는 왜 만리장성이 축조되지 않았나? | 장안은 어떠한 도시였는가? | 안사의 난은 무엇을 바꾸어 놓았나? | 천하의 중심은 어디로 가는가?
8 동파육은 어떻게 탄생하였을까?
송대 사대부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소식은 어떻게 사대부들의 표상이 되었는가? | 송대 사대부 관료들은 왜 의약 지식 보급에 열성적이었는가? | ‘천하의 풍속을 하나로 한다’라는 말은 왜 송대 사대부들의 구호가 되었나? | 송대 사대부가 조선시대 사대부에 남긴 유산은 무엇일까?
9 문치주의는 송나라를 문약하게 만들었는가?
군에 대한 문민통제가 왜 중요한가? | 송대 문치주의에 대한 비판은 어디서 기원하는 것일까? | 군에 대한 문민적 통제는 군사력을 약하게 만들었는가? | 송나라 시기에도 전통적인 중화 제국 질서는 유지되었는가? | 요나라의 군사력은 송나라를 압도하였을까? | 금나라의 기병은 왜 약체화되었을까? | 송은 과연 문약한 나라였는가?
10 송나라 사람들은 왜 바다로 나아갔을까?
송나라에서는 왜 해상 교역이 번창했을까? | ‘미지의 세계’로 나아간 송나라 사람들은 무엇을 경험하였을까? | 무엇이 송대 중국인을 해상 교역으로 이끌었나? | 송대 해상 교역은 어떻게 진행되었나? | 송대 번성한 해상 교역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가?
11 송나라 사람들은 소고기 식용을 왜 꺼렸을까?
소고기 식용에 대한 금기는 어디에서 유래되었나? | 법으로 금지된 소 도축에 지식인조차 뛰어든 이유는? | 민간의 응보설화는 어떻게 소고기 금기를 널리 퍼지게 만들었나? | 법률적 금지와 민간의 금기에도 불구하고 소고기는 어떻게 소비될 수 있었을까? | 송대 소고기 금기의 확산은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 주고 있을까?
12 몽골은 왜 한인 사대부를 차별했을까?
역대 중국 왕조는 왜 사대부를 우대했나? | 몽골은 한인 사대부를 어떻게 인식했을까? | 과거는 공정하게 시행되었을까? | 사등인제는 종족 차별 제도인가?
13 원대 외래 종교가 왜 흥성했을까?
원대 이전 중국에 외래 종교가 전래했을까? | 몽골은 종교를 어떻게 대우했을까? | 티베트불교는 어떻게 몽골의 주류 종교가 되었나? | 이슬람은 어떻게 몽골에 전파되었나? | 몽골에서 번성하던 기독교는 왜 사라졌는가? | 종교 정책으로 본 몽골제국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14 유목민족 몽골은 왜 해상무역을 진흥했을까?
‘팍스 몽골리카’는 무엇인가? | 몽골은 상업과 무역을 어떻게 인식했을까? | 몽골의 동남아시아 정벌은 실패했는가? | 몽골은 어떻게 해상무역을 진흥했을까? | 해상무역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 해상무역의 번영이 세계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15 명나라는 왜 정화의 원정 기록을 태워 없앴을까?
왜 명은 정화 관련 기록의 파기를 묵인했을까? | 영락제는 정화를 왜 파견했을까? | 정화의 원정은 중국사에서 해양 활동의 절정기였을까? | 대운하와 해금은 무슨 관계일까? | 다시, 정화와 관련된 기록은 왜 불타 없어질 수밖에 없었을까?
16 명은 왜 대대적으로 만리장성을 재건해야 했을까?
지금 중국에서 보는 장성은 언제 만들어진 것일까? | 명 초기 대몽골 전략은 어땠을까? | 그럼 장성은 어쩌다 재건되었을까? | 무엇이 대대적인 장성 건설로 이끌었을까? | 1571년 ‘융경화의’로 ‘몽골의 위협’은 완화되었나? | 맹강녀는 왜 장성 앞에서 통곡했을까?
17 명·청 시대 최고의 상인이 된 휘주 상인의 성공 전략은 무엇이었을까?
상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언제부터 변하기 시작했나? | 대운하는 어떻게 ‘초연결의 아이콘’이 되었을까? | 휘주 상인이 발견한 취약점은 무엇일까? | 대운하를 활용한 휘주 상인의 성공 전략은 무엇일까? | 휘주 상인에게 유학은 어떤 의미였을까?
18 17세기 소빙기는 명과 청의 교체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1644년 명은 왜 허망하게 무너졌을까? | 17세기 위기론이란 무엇일까? | 소빙기는 명나라 멸망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 소빙기 청의 흥기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 기후 위기 시대에 국가는 어떤 대처를 해야 할까?
19 코끼리는 어떻게 길들여져 천하에 쓰였는가?
중국사에서 코끼리는 어떤 존재였을까? | 중원에 살던 코끼리는 어디로 갔을까? | 명대 조선 사신의 눈에 순상은 어떻게 보였을까? | 순상을 둘러싼 조선과 요·금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 명나라에서 코끼리를 본 조선 사신은 왜 찬양 일색이었을까? | 청대 조선 사신의 코끼리 감상평은 왜 바뀌게 되었을까? | 청나라 말기 코끼리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 동물은 어떻게 외교의 상징이 되는가?
20 영국 사절 매카트니는 건륭제에게 정말 두 무릎을 꿇었을까?
건륭제는 왜 조선 사신을 열하로 불렀을까? | 왜 영국 사절에게 바닷길을 열어 줬을까? | 매카트니는 조공사신인가, 전권대신인가? | 예법 논쟁 속에서 영국은 무엇을 원했나? | 매카트니에게서 네덜란드 사절은 무엇을 배웠는가? | 매카트니의 ‘실패’와 티칭의 ‘성공’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나?
21 조선과 베트남은 청의 속국이었나?
‘속국’이라는 표현은 우리를 화나게 만드는가? | 조선은 어떻게 청의 속국이 되었는가? | 속국은 전쟁을 통해 만들어지는가? | 상국은 속국에 무엇을 원하는가? | 상국은 진심으로 ‘자소’를 다했는가? | 속국인 ‘자주’국의 위험에 상국은 어떻게 대처했는가? | 다시 ‘속국’이란 무엇인가?
22 미국은 정말 중국에 ‘아름다운 나라’였는가?
미・중 관계는 어디로부터 왔는가? | 미국은 독립 후 왜 중국으로 향했는가? | ‘화기국’은 어떻게 ‘미국’으로 불리게 되었나? | 벌링게임은 어떻게 청나라 ‘칙사’가 되었나? | 청나라 최초의 유학생들은 왜 미국으로 떠났나? | 청나라는 왜 조선에 미국을 소개했나? | 늘 아름다운 나라일 수 있을까?
23 중국은 왜 더 이상 아편을 수입하지 않게 되었나?
아편은 중국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까? | 중국의 아편 무역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 아편 상인은 아편전쟁에서 어떤 역할을 했을까? | 아편 무역은 어떻게 합법이 되었을까? | 아편 무역 합법화 이후 중국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 아편 무역의 축소는 서양 상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 아편은 중국 무역의 구조에 어떤 영향을 남겼을까?
24 중국은 왜 일당 지배 국가가 되었나?
중화인민공화국과 중국공산당은 어떤 관계일까? | 신해혁명 이후 의회제는 어떻게 되었나? | 신해혁명 이후 중국인들은 어떤 정체를 꿈꾸었나? | 중국국민당은 어떤 국가를 만들고자 했나? | 중국공산당은 어떤 국가를 만드는 데 성공했나? | 중국의 당-국가 체제는 유지될 수 있을까?
25 소수민족은 누가 만들었는가?
중국의 소수민족 문제에 왜 관심을 가져야 할까? | 중국의 민족 문제는 어디에서 시작되었나? | 민국 시기 소수민족 정책은 어떻게 변화했을까? | 중화인민공화국에서의 민족은 어떻게 ‘식별’되었나? | 중국의 소수민족 정책은 어떻게 변하고 있을까?
부록 집필진 대담: 시공간과 인구로 꿰뚫는 중국사
도판·지도·표 목록
참고 문헌
저자소개
책속에서
머리말(일부 발췌)
일곱 집필진은 그동안 출간된 수많은 개설서를 검토하되 기존의 중국사 개론서와 차별되는 새로운 책을 만들기 위한 몇 가지 원칙을 수립하였다. 첫째, 답변보다 질문이 더 흥미롭고 의미 있는 개론서 만들기, 둘째, 2020년대에 20대 독자, 즉 2000년 전후로 한국에 태어난 ‘신세대’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서술 방식, 셋째, 책이 출간되는 2020년대까지 한국에서 진행된 최신 중국사 연구 성과 반영하기, 넷째, 세계화(globalization)라는 관점에서 중국사 재조망하기가 그것이다. 특히 세계화라는 관점은 21세기를 살아가는 미래세대에게 당면한 과제이자 ‘중국은 세계의 문명과 오늘날의 인류를 만드는 데 어떤 기여를 해 왔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기도 했다. 물론 여기서 세계화란 유럽중심주의적 관점에서 파악하는 15세기 무렵부터의 현상이 아니라 유사 이래 진행된 상호 교류의 확산 과정으로 파악했다. 진한 제국의 등장부터 ‘중국’을 하나의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외부 세계와 끊임없이 교류하고 충돌하면서 만들어지고 변화하는 유동적인 국가이자 제국이자 문명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이렇게 수합된 스물다섯 질문에 대한 답변을 일람한 집필자들은 중국사를 꿰뚫는 특성이자 성격으로 ‘열림과 닫힘’의 반복과 길항(拮抗)을 떠올릴 수 있었다. ‘열림’과 ‘닫힘’은 상호 모순적이지만 한쪽이 다른 한쪽을 완전히 압도하지 않고 서로 밀치거나 잡아당기면서 나름의 균형을 맞추어 갔다. 물론 그 절충과 균형의 결과물은 한반도나 일본열도와는 또 다른 형태이기에, 이를 중국이라는 ‘제국의 문화’라고 부를 수 있겠다.
가령 ‘열림’에 해당하는 내용으로 실크로드를 통한 서역과의 교류, 유목문화의 유입으로 인한 여성(황제 포함)의 정치 참여 확대, 송대부터 원대까지 확산하는 자유로운 해양 무역, 외래 종교를 동등하게 존중했던 원의 종교 정책, 초연결의 아이콘으로 기능한 대운하, 청 후기 ‘아름다운 나라’ 미국(美國)과의 외교적 협상 등을 찾을 수 있다. 반면 진시황이 쌓았던 일종의 ‘국경선’에 해당하는 장성, 다시 명대에 대대적으로 연결되는 만리장성의 재건, 분열을 억제하기 위한 당대 지방 행정구역 분할, 정화의 해양 원정 기록 파기와 은폐, 청 건륭제의 위계적이고 자족적인 대외정책, 중국의 일당 지배구조 등은 ‘닫힘’에 관련된 내용으로 분류가 가능하다.
흥미로운 점은 통일이 강화된 시점에 ‘닫힘’이 증가하는 반면, 분열 국면이 되면 오히려 ‘열림’이 증가하는 패턴을 보인다는 사실이다. 이 책의 일독을 통해 이처럼 ‘열림과 닫힘’이 반복되면서 축적된 ‘제국의 문화’가 1949년 성립된 중화인민공화국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책의 후반부는 시진핑 주석의 집권 이후 미중 패권 경쟁과 갈등이 심화되는 국면에 대한 언급까지 포함했다. 장기 지속하는 ‘제국의 문화’를 이해할 때, 현대 중국의 일당 지배 시스템, 소수민족 정책, 주변국에 대한 위계적 질서의 강요 등에 대한 역사적 해석도 가능할 것이다
- 조영헌, 머리말 「AI 시대, 질문하는 역사 공부」에서
영정이 진나라 왕으로서 나라를 다스린 지 26년이 되는 기원전 221년, 진나라는 여섯 개 나라를 차례로 멸망시키고 중국을 하나로 통일한다. 진왕 영정이 즉위 후 미성년 시절 행적은 대부분 후견인 역할을 했던 배후의 실력자 여불위의 영향을 받은 결과이지만, 서른 살 이후 진행된 6국에 대한 전승과 외교술은 영정이라는 인물 개인의 지도력과 노력에서 비롯된 성과로 평가할 수 있다. 기원전 221년 ‘천하’를 다스리는 유일한 군주가 된 영정은 그가 물려받은 역사·문화적 유산이라는 토대 위에 킹메이커 여불위가 마련해 준 특별한 기회를 잡아 능력을 십분 발휘하였고, 그 결과 수천 년 중국 역사 속에서 ‘아웃라이어’로서 이름을 떨칠 수 있었다.
― 1장 중국 최초의 황제 진시황, 희대의 폭군인가 중국 통일의 영웅인가?
주나라 이후로 남성 중심의 종법제가 사회제도의 근간을 이루었음에도 무측천은 어떻게 황제로 즉위할 수 있었을까? 중국사에서 여성 권력자가 자주 출현했음에도 오직 무측천만이 황위에 오를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황제 무측천은 재위 기간이 15년이지만, 황후에 책봉되어 정치에 직접적으로 간여했던 기간까지 합하면 5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했다. 장기간에 걸친 여성 황제 무측천의 천하 통치는 남성 황제의 그것과 실제 달랐을까? 겉으로 드러난 현상과 내부의 본질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기존의 질서를 바꾸고 새로운 상황을 조성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이고 그에 따라 생길 수 있는 한계는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당연하게 여겼던 관습적 인식이 혹여 지나친 무관심에서 생긴 것은 아니었을까?
― 4장 유일한 여성 황제, 무측천을 어떻게 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