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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목회/신학 > 신학일반
· ISBN : 9791185910659
· 쪽수 : 96쪽
· 출판일 : 2015-06-19
책 소개
목차
서 문 / 5
제 1 장
성경 속 숫자들 / 11
제 2 장
숫자들의 의미 / 17
하나 / 18
둘 / 21
셋 / 25
넷 / 33
다섯 / 39
여섯 / 46
일곱 / 57
여덟 / 64
아홉 / 66
열 / 71
열하나 / 75
열둘 / 79
열셋 / 81
사십 / 85
일곱과 사십 / 88
천 / 91
제 3 장
성경과 함께 나아가라 / 93
책속에서
서문
성경을 거부했던 알버트 아인슈타인(1879-1955)은 자신이 무신론자가 된 이유에 대해 “수학 공식이 아닌 하나님”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 거듭나지 못한 자연인은 자기 망상 속에 하나님을 제멋대로 규정지어 놓고는, 자신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려는 복음 전파자들의 모든 시도를 거부해 버렸다. 그는 적그리스도처럼 숫자에 능한 사람이었다(<짐승의 표, 피터 S. 럭크만, 말씀보존학회, 1997> 참조).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모두 눈멀고 무지한 자들이다(롬 10:3, 벧후 3:5, 엡 4:18). 이 무지의 전당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사람이 바로 아인슈타인이었다. 그는 구십 평생을 사는 동안 자신의 생각과 반대되는 성경적 진리에 대해 한 번쯤 시간을 투자해서 숙고해 보는 일 조차 거부했던 지독한 머저리였다. 그런데 지금까지 발견된 모든 명백한 “과학” 법칙들을 훨씬 능가하는 수학적 현상이 성경에서 발견된다. 이런 현상은 성경이 초자연적으로 구상되었고 기록되었으며 보존되었다는 사실과, 또 그 모든 과정이 세계가 문명화된 이후 지금까지 지상에 살았던 혹은 현재 생존하고 있는 그 어떤 인간의 책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놀라운 수학적 기초 위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논증하고 있다. 아인슈타인의 “의미이론”에 따르면 그렇다는 것이다.
성경은 인간들이 예측은 고사하고 “짐작”조차 할 수 없었던 사건들을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거듭 반복해서 예언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우리는 수학적인 기적을 목도하게 된다. 소위 예언자들이라고 불리는 매들린 머레이 오헤어, 진 딕슨, 노스트라다무스 그리고 에드가 케이시 같은 사람들의 말 따위는 하나님의 말씀과 같은 범주로 묶을 수 없음은 물론 그 근처에도 못 미친다. 예를 들어 성경은 한 사람이 태어나기 이전에 그분에 관한 40여 가지의 내용들을 상세하게 예언했다. 그 중에는 그분이 탄생하기 1,000년 전에 선포된 예언들도 있었다. 게다가 “모든 예언은 문자 그대로 이루어졌다.” 수학적으로 이러한 예언들이 일어날 수 있는 확률은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원리”(uncertainty principle)와 아인슈타인의 수학적 계산에 따르면 1/10157이다. 10157은 “1”뒤에 “0”이 157개 붙어 있는 숫자인데, 우주에 널려 있는 전자의 수를 다 합쳐도 그만큼은 되지 않는다.
성경 속의 수학을 아인슈타인의 저속한 싸구려 수학과 같은 수준으로 평가절하하는 우를 절대 범하지 말아야 한다. 성경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에 일어날 사건에 관해 500여 가지의 예언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중 가장 오래된 것은 3,500년 전에 예언된 것이다. “한 사람”을 다루고 있는 “하나의 역사적인 사건”에 관한 500여 가지의 상세한 예언들이 미래에 일어날 확률은 1/108000 이상이다. 진정한 수학의 창시자이신 하나님께서는 이 우주를 매우 수학적으로 운영되도록 만드셨기 때문에, 누구나 그 사실을 쉽게 목도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은 어리석은 자였다(시 14:1). 마흐, 하이젠베르크, 슈바이처, 바이스코프, 페스탈로치, 젠틸레, 듀이, 러셀 등과 마찬가지로 교육을 가장 잘 받은 멍청이였던 것이다.
<킹제임스성경> 안에는 이런 놀라운 수학적인 현상뿐만 아니라, 반론의 여지가 전혀 없는 장과 절을 표시하는 독특한 숫자들이 들어 있다. 제리 루카스(1978)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손길을 파괴할 목적으로, 배교자들인 웨스트코트와 홀트의 헬라어 성경과 한통속인 네슬판 헬라어 본문이 “영감받았다”고 입증해 보이려 했다(이에 관하여 철저하게 분석해 놓은 를 참조할 것). 하지만 이런 어설픈 행동은 소위 “추가된” 절과 장이 표시되어 있는 <킹제임스성경> 본문에 비하면 그리 대단할 것도 없다. 현재 <킹제임스성경> 본문에 표시된 그대로 장과 절의 표시들을 사용했던 사람은 그 누구라도, 그 표시들을 제외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던 어리석은 자들, 곧 로버트슨, 메이첸, 홀트, 데이비스, 그레고리, 와필드, 커스터, 아프만, 마틴 등과 같은 학자들보다 “성경의 숫자들”(Bible Numerics)에 관한 한 더 깊은 통찰력을 지니고 있었다.
성경의 숫자들에 관해 고찰한 이 작은 소책자를 통해서, 모든 독자들이 성경을 펴 놓고 “이 내용들이 정말로 그러한지 아닌지 면밀하게 살펴볼 수 있기를” 바란다. 성경에서 “열셋”이란 숫자가 등장하는 내용의 85%가 부정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다면, 아인슈타인보다 지각이 더 부족하지 않고서야 그와 같은 진리를 무시할 리 만무하다. 그런 문제에 관해서라면 구원받지 않은 도박자가 아인슈타인보다 훨씬 더 낫다. 이는 숫자들의 “의미”를 확정하는 데 있어서 반드시 100%가 필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100%에서 15%가 부족하다고 해서 85%가 지니는 가능성에 대해 무시하는 사람을 지성인이라고 인정해 줄 수 없는데, 적어도 “숫자들”과 “확률”에 관한 문제를 다룰 때는 그렇다. 80%의 확률만 되도 전문 음식점들에게는 투자 가치가 매우 높은 편이다. 반면 <킹제임스성경>의 권위에 반대하는 교수진에게는 그것이 낮게 보일 뿐이다. 물론 85% 정도만 하나님의 말씀을 담고 있는 성경을 용납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종류의 성경을 가지고 있는 배교자들은, 성경을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을 “포함하는” 책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다고 공공연하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데, 사실 그들은 그렇게 말할 자격이 없다. 왜냐하면 그들이 갖고 있는 85%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그 안에 15%의 오류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숫자들”을 다룰 때에는, 어떤 숫자가 열 번 중에 여덟 내지 아홉 번 정도의 경우에서 “한 가지 동일한” 주제를 언급하고 있다면(일례로 “사십”이라는 숫자), 그것은 바로 그 주제를 의미하고 상징하는 숫자라고 확신해도 좋다.
나는 독자들이 이 소책자를 즐겁게 공부하는 가운데 성경 속에 등장하는 숫자들의 의미에 관한 기본적인 구도를 잘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 책에 사용된 “성경”은 당연히 무오하고 흠이 없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 곧 <킹제임스성경>이다.
이제 “열”이란 숫자에 대해 살펴보자. 성경의 숫자들 중에서 열은 “다섯”과 “일곱” 다음으로 그 의미를 가장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숫자이다. 이 숫자보다 의미를 쉽게 찾을 수 있는 숫자는 “다섯”과 “일곱”뿐이다. 게으르고 불경하며, 게다가 <킹제임스성경>을 신뢰하지 않는 학자들은 “열”이란 숫자를 대략적인 수나 완전함의 수 정도로만 설명한다. 그러나 <킹제임스성경>이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시기로 의도하셨던 그 형태로 보존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열”이란 단어의 의미를 쉽게 찾을 수 있다. 교리적으로 어떤 반박이나 논쟁의 여지가 없을 만큼의 확실한 의미를 쉽게 발견하게 된다.
...71p 중에서
“일곱”은 분명 완성의 수이다. 이러한 사실은 성경의 시작과 끝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에 대해 의심이 가는 사람이 있다면, 레위기 23장과 25장을 살펴보라. 이 두 개의 장을 공부하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일곱”으로 일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즉시 깨닫게 될 것이다. 사실상 “일곱”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맹세하다” 또는 “자신을 맹세 아래에 두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주님께서 “내가 나 자신을 두고 맹세했노라.”라고 말씀하실 때, 그것은 곧 “일곱으로 일하겠노라.”라는 말씀이기도 하다. 이처럼 “일곱은 완결”을 의미한다.
레위기 23장과 25장에서 한 주는 칠 일이고, 일곱 주가 지나야 오순절이 된다. 또한 일곱 달을 헤아리면 장막절과 속죄일이 돌아오고, 일곱 해가 될 때 땅은 쉼을 얻는다. 그리고 일곱 해가 일곱 번이 지나고 나면 환희의 해가 돌아와 이스라엘에는 나팔 소리가 울린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시대들”을 일곱 개의 기간들로 나누신다. “경륜들”도 마찬가지이다. 주님께서 일곱으로 일하신다는 사실에는 전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결국 “일곱으로 모든 시대”는 마무리된다. ...59. 60p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