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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목회/신학 > 신학일반
· ISBN : 9791186409855
· 쪽수 : 456쪽
· 출판일 : 2016-11-22
책 소개
목차
서론_성경의 무오성에 관한 논쟁
1부_무오성의 관점들과 과거
1장_성경이 말할 때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성경 무오성의 고전전 교리_알버트 몰러
논평_피터 엔즈, 마이클 버드, 케빈 밴후저, 존 프랭키
2장_어떻게 정의되든지, 무오성은 성경이 행하는 바를 설명하지 않는다_피터 엔즈
논평_알버트 몰러, 마이클 버드, 케빈 밴후저, 존 프랭키
2부_무오성에 대한 국제적인 시각
3장_미국 바깥에서는 무오성이 불필요하다_마이클 버드
논평_알버트 몰러, 피터 엔즈, 케빈 밴후저, 존 프랭키
3부_오늘날 무오성의 갱신과 재구성에 대한 시각들
4장_아우구스티누스적 무오성: 성경 담화의 유기적 통일성 속에서 문학적 의미·축어적 진리·문해에 정통한 해석_케빈 밴후저
논평_알버트 몰러, 피터 엔즈, 마이클 버드, 존 프랭키
5장_무오성 개정하기: 선교적 복수성에 대한 증거로서의 성경_존 프랭키
논평_알버트 몰러, 피터 엔즈, 마이클 버드, 케빈 밴후저
결론_의사소통 채널 열기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시카고 성경무오선언서(Chicago Statement on Biblical Inerrancy)와 같은 무오성에 관한 핵심 정의들은 무오성이 기독교적 확신에서 자유로이 떠다니는 개별적 개념이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오히려 무오성은 적어도 하나님의 속성(특히 진실하신 속성)에 관한 확신뿐만 아니라 성경의 영감, 신빙성, 권위에 관한 확신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시카고 성경무오선언서는 무오성이 “성경이 말할 때 이는 곧 하나님이 말씀하는 것”이라는 복음주의적 확신을 유지하는 데 결정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무오성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하심에 관해 반드시 무엇인가를 암시하는 것은 아니다. 무오성은 성경을 기록한 인간 저자들이 매우 세심했거나 운이 좋았다는 것을 암시할 수 있다. 게다가 성경의 신적 저작권은 이런 복음주의적 확신이 시사하는 것보다 더 복잡하다. 왜냐하면 신적 발화와 인간 저자들의 발화 사이의 관계가 설명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즉 적어도 축자 완전 영감(verbal plenary inspiration)이 왜 복음주의 내에서 무오성과 연관되어왔는지가 설명되어야 할 것이다. 무오성이 작용하기 전에 설명되어야 할 복잡한 쟁점들이 놓여 있으므로 다음 단락에서는 무오성이 등장하는 교리적 연결 고리들을 개략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무오성은 성경 교리 내에 위치한다. 무오성은 성경의 본질과 기능에 관한 다양한 주장들 한가운데서 등장하는데 이 주장에는 성경의 충족성, 성경의 권위, 성경의 수위성(首位性)이 포함되어 있다. 이런 주장들은 성경 영감설이 먼저 논의된 후에야 가능하며, 따라서 무오성의 권위는 영감설로부터 주어진다. 물론 성경 교리 자체는 계시 교리의 하위 영역에 위치해 있고, 계시 교리는 성령론, 기독론, 궁극적으로 하나님에 관한 삼위일체 교리에 종속되어 있다. 나아가 우리는 구원, 그리스도, 죄, 인간, 창조 교리들로 구성되는 계시의 수용도 고찰해야 한다. (서론 중에서)
우리는 성경의 진리에 대한 믿음은 고백하지만 그 진리를 행하거나 참고 견디는 것은 꺼리는 “싸구려 무오성”을 경계해야 한다. 무오성 교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것만으로는 아직 반쪽짜리 진리다. 무오성에 대한 나의 정의 속에는 다음과 같은 점이 함축되어 있다. 즉 우리는 성경 저자가 제안하는 명제가 무엇인지(문자적 의미), 그 명제에 어떤 종류의 관심이 요구되는지(문학적 감수성)를 제대로 이해하는 문해에 정통한 해석자가 되어야 할 뿐 아니라, 성경에 있는 각각의 의사전달 행위에 올바르게 반응하는 바른 마음과 심장(성령으로부터 주어진 문해력)을 지닌 독자가 되어야 한다. 궁극적으로 무오성에 대한 정통한 접근 방식은, 성경해석자들의 공동체가 진리를 이해하고 사랑하며 거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이어야 한다(엡 4장)는 요구를 구성하고 있다. 심오한 성경적?언약적 의미에서 진리를 안다는 것은 언어와 진리의 상응을 지적으로 이해하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과 진리를 적극적으로 일치시키고 거기에 반응하는 것도 의미한다. 우리는 열정적으로 진리를 추구하고 증거하고 행하며 진리를 위해 고난 받아야 한다. 성경의 진리를 진실하게 증거하는 해석자들은 적어도 그것에 따르는 어려움을 인내한다. (4장 중에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로서 대화를 통한 타자와의 만남은 특수한 성향, 즉 기독교적 덕목과 그리스도가 타자를 어떻게 대했는지에 대한 고찰로 특징지어지는 성향을 분명하게 보여주어야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무오성 교리에 대한 대화를 위해 대화의 원칙이 중요해진다. 앞에서 논의한 무오성의 윤리에 관해서는 분명한 함축이 보이는 것 같다. 이 주제에 관한 대화는 묘사와 분석, 객관성과 숙달을 핵심으로 간주하는 나-그것의 관계 안에 있는가? 확실히, 개념에 관한 논쟁과 여러 아이디어는 묘사와 분석과 분명한 추론과 관련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문은, 나-너 관계 속에서 타자를 향한 방향 전환, 즉 이해를 받기 전에 먼저 이해하고자 하는 태도로의 방향 전환이 이루어지는가 하는 것이다. 이렇게 타자를 향해 방향을 전환하기 위해서는 인내와 겸손과 자비와 같은 기독교적 덕목의 수행이 필수적이다. 그렇게 할 때 인간의 연약함과 유한성과 타락이 자인되고, 문제를 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들이 열리며, 성령의 권능을 통해 세상에서 작용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참된 증거가 계시된다. (결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