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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86602720
· 쪽수 : 264쪽
목차
프롤로그 자기 자신을 말하기
나의 단어, 이야기
자유, 약속, 품위
배지근해지다
눈맛, 무게 제로
하쿠나마타타
일기, 동화책, 컵
꽃이 폈어
달, B95
유리창
목소리, 이름, 우리, 인생의 전문가
나의 단어, 시와 운명
돌고래, 아더 사이드, 스틸 뷰티풀
에필로그 우리의 좋은 결말을 위해서
저자소개
책속에서
이런 생각들을 하다가 나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자주 던졌다. ‘살아 있는데, 이 살아 있다는 것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무슨 말을 나눠야 할까?’ 그 질문을 중심으로 여러 생각들이 잔물결처럼 퍼져나갔다. 그때 칼비노의 이야기도 생각나곤 했다. 흔하디흔한 시장 한구석이 특별해지는 것은 우
리가 나 아닌 다른 누군가를 만났기 때문이고, 내가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 있다는 것은 내가 아직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는 뜻이 될 것이다. 나는 언어가 우리를 구해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새로운 생각, 새로운 말, 새로운 이야기가 있는 곳에서 새로운 사람이 태어난다고 믿고 있다. 수천 년 동안 인간 삶은 그렇게 변해왔다. 그러니 나에게서 어떤 새로운 말도, 이야기도 나오지 않는 것, 이것이야말로 오늘 내가 가장 슬퍼해야 할 일이다. 그럼 이제 뭘 해야 할까?
살아 있는 자들이 진정으로 알고 싶어 하는 유일한 것은 자신의 미래다. 진정으로 만나고 싶어 하는 것은 좋은 미래다. 언어 공동체에 속하는 우리가 이 좋은 미래를 만나는 방법은 좋은 미래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는 것이다. 한 새로운 세계의 창조 앞에는 언제나 언어와 이야기가 있어왔다. 그러니 살아 있는 자의 심장에서 나온 살아 있는 이야기는 우리 모두를 살아 있게 하는 데 필수적이다. 한 사람의 좋은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된다. 좋은 이야기는 우리의 내면 깊은 곳에 ‘부드럽게’ 각인되고 남아서 우리의 자아를 바꾼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부드러움 중 가장 믿을 수 없을 만큼 부드러운 것은 인간의 변화다.
나는 공부를 많이 못 하고 부산으로 갔어. 거기서 일을 하다가 할머니가 돌아가신 줄도 몰랐어. 고향에 돌아와서야 돌아가신 걸 알았지. 그 후론 쭉 고향서 살았어. 뱃사람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예감이 좀 있어서 뱃일을 배웠고 그 뒤로 바다와 고기 잡는 것에 푹 빠져 살았어. 밤에는 배에 누워서 라디오를 듣곤 했어. 그리고 커피를 많이 마셨어. 이상하게 배에서는 커피를 많이 마시게 돼. 그렇게 누워서 인간은 본질적으로 외로운 존재다, 이래 생각하고 살았지. 그래도 나 스스로 한 약속만은 친구처럼 어디든 같이 다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