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명사에세이 > 기타 명사에세이
· ISBN : 9791199405813
· 쪽수 : 280쪽
· 출판일 : 2025-10-30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자기 자신을 말하기 … 7
나의 단어, 이야기
자유, 약속, 품위 … 31
배지근해지다 … 55
눈맛, 무게 제로 … 73
하쿠나마타타 … 99
일기, 동화책, 컵 … 119
꽃이 폈어 … 143
달, B95 … 161
유리창 … 183
목소리, 이름, 우리, 인생의 전문가 … 217
나의 단어, 시와 운명
돌고래, 아더 사이드, 스틸 뷰티풀 … 251
에필로그 우리의 좋은 결말을 위해서 … 275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나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자주 던졌다. ‘살아 있는데, 이 살아 있다는 것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무슨 말을 나눠야 할까?’ 그 질문을 중심으로 여러 생각들이 잔물결처럼 퍼져나갔다. 그때 칼비노의 이야기도 생각나곤 했다. 흔하디흔한 시장 한구석이 특별해지는 것은 우리가 나 아닌 다른 누군가를 만났기 때문이고, 내가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 있다는 것은 내가 아직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는 뜻이 될 것이다. 나는 언어가 우리를 구해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새로운 생각, 새로운 말, 새로운 이야기가 있는 곳에서 새로운 사람이 태어난다고 믿고 있다. 수천 년 동안 인간 삶은 그렇게 변해왔다. 그러니 나에게서 어떤 새로운 말도 이야기도 나오지 않는 것, 이것이야말로 오늘 내가 가장 슬퍼해야 할 일이다. 그럼 이제 뭘 해야 할까?
이야기의 신비로움은 하나의 이야기가 다른 이야기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야기의 신비로움은 삶의 신비로움이 된다. 그 반대말도 사실이다. 삶의 신비로움 없이는 이야기가 없다. 좋은 이야기 안에는 늘 원인과 결과의 딱딱한 인과론만으로도, 숫자로도 잘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이것이 모든 좋은 이야기 안에 있는 ‘고유한 기쁨’이고, 보르헤스가 언어 공동체에서 우리의 의무는 우리의 말을 찾는 것이고 단어를 찾는 것은 부적과도 같은 힘을 주고, 단어를 찾는 것이 곧 회복이라 말한 뜻일 것이다.
우리 모두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었는데, 이를테면 다이버나 아마추어 조류학자나 목욕탕 주인이나 인삼 파는 상인이나 구름 연구자가 될 수도 있었는데 바로 이 모습이 되어서 살고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내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존재한다는 것 역시 놀라운 일이다. 우리는 ‘현실’이라는 단어를 쉽게 쓰지만 내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라는 것이 각자의 가장 무거우면서도 놀라운 ‘현실’이다. 생각할수록 삶은 놀라움의 연속이지만 우리의 고유성은 계속 하나의 범주로, 하나의 숫자로 지워져만 간다. 그러나 세상이 우리의 고유성을 지울수록 자기 자신만은 자신의 고유성, 내면에 ‘살아 있는’ 어쩌면 아직은 ‘이름 없는’ 뭔가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다른 사람도 고유한 무엇인가를 품고 있다고, 우리가 궁금해할 무엇인가를 품고 있다고 믿는 것은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는 거의 ‘저항’이라고 부를 만한 일이고 최고의 존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