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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예술/대중문화 > 영화/드라마 > 영화감독/배우
· ISBN : 9791186851791
· 쪽수 : 296쪽
· 출판일 : 2018-05-31
책 소개
목차
머리말
1장 들어가는 말
2장 산시성 ‘고향삼부곡’ 리얼리즘
1. 문화대혁명과 출로
2. 국가이데올로기와 그 복사들
3. 사실의 준열성과 로컬 리얼리티
4. 허무 리얼리즘
3장 세계, 수몰 지구의 리얼리즘
1. ‘로컬 외부’와 노동자의 죽음
2. 유랑농(流浪農)의 운명
3. 외줄 타기 : 차라투스트라적 인간 운명
4. 일상과 정물(靜物, Still Life)
5. 노동과 몸의 미학 : 렘브란트 리얼리즘
4장 숨은 구조의 다중시제와 장소
1. 숨은 구조의 은유
2. 노동과 예술
3. 예술과 일상
4. 숨은 구조, 황토 리얼리즘
5장 만리장성 유전자와 리얼리즘
1. 강제이주, 혁명과 개인
2. 만리장성 유전자와 단위(單位) 무의식
3. 영화의 문학화
4. 영상 민족지(visual ethnography)
6장 도시 리얼리즘
1. 뷰(view) 욕망과 조감(鳥瞰)의 시선
2. 도시의 인터(inter), 시민
3. 상하이 정신사
4. 하층 타자(subaltern), 도시의 건설자
7장 폭력과 복수의 리얼리즘
1. 권력에 저항하는 방식, 다하이와 아Q
2. 『수호전』 무송의 복수 미학 복제
3. 농민 루저의 유랑과 폭력
4. 하층 타자 여성의 살인
5. 저항의 무기로서의 자살
8장 낡은 이름, 리얼리즘
1. ‘느린 미학’의 리얼리즘
2. ‘느린 미학’의 실종, 은유
3. 리얼리즘의 ‘외부성’
4. 리얼리즘과 장소
참고문헌
저자소개
책속에서
‘현실’로부터 도피하지 않고 ‘현실’로부터 모든 예술적 영감과 기법을 길어 올린 리얼리스트로서의 루쉰과 지아장커. 사회 가장 하층에 존재하는 하찮은 민중에 주목하고 그들을 세상에 드러내되 당시의 주류적인 문법이 아닌 다른 문법으로 드러내는 일. 소수자에 대한 집요한 관심에서 출발하여, 그들에게 연민과 사랑을 보내면서도 그들 존재가 지닌 희화성(戱畵性)과 비굴함과 처참함을 드러내, 보는 이들을 분노하게 하고 슬프고 불편하게 만드는 리얼리스트로서의 루쉰과 지아장커. 그런 의미에서 지아장커는 분명 평자들이 거론한 것처럼, 문혁 이후의 대중문화나 홍콩 느와르에서만 배운 것이 아니라 분명 루쉰에게서도 한 수 배운 바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통의 철감방 속에서 죽어 간 아Q들과 문혁과 영웅의 시대에서 걸어 나온 하찮은 젊은이들. 작은 농촌 웨이좡의 날품팔이 일꾼 아Q와 펀양의 최하층 소매치기 샤오우, 이들은 분명 거지는 아니다. 광인도 아니다. 살려고 몸부림치는 평범한 사람들일 뿐이다. 그들을 누르는 어마어마한 중압감은, 아Q에게는 전통과 인습의 무게이며 계층 간의 먹이사슬 구조이며, 샤오우에게는 개방사회이긴 하나 여전히 돈 없고 출로의 기회 없음이 누르는 무게다. 전통농업사회에서 최하층에 자리했던 날품팔이 머슴이었던 아Q와 삼대째 빈농에서 벗어나지 못한 농민의 아들 샤오우***의 살아가려는 절절한 몸짓과 저항, 그리고 처절한 실패로 마감되는 종결의 형식으로써 「아Q정전」도 <샤오우>도 독자와 관객에게 그들을 향한 섣부른 희망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들이 처했던 열악하고 절망적인 생존 조건을 냉정하고 준엄하게 드러내 보여 줄 뿐이다.(“2장 산시성 ‘고향삼부곡’ 리얼리즘” 중에서)
아Q의 저항에서 보이는 공격성과 동시에 그에게 어른거리는 노예적 비굴함과 누추함은 다하이에게도 나타난다. 싸워야 할 대상에게도 다하이는 “돈 좀 줘”라는 말을 한다. 끊임없이 투덜대면서도 자기에게 동조할 사람들을 이리저리 타진해 보는 비루한 모습, ‘그러니 평생 그 꼴로 살지’ 하는 비아냥에 대한 무대응 등등이 그러하다. 또한 다하이와 우진산 마을, 아Q와 웨이좡 마을, 아Q와 다하이와 그들에게 비정한 대다수 마을 사람들의 관계는 전형적인 일대다(一對多)의 구도로 되어 있다. 마을 하층에 자리한 주인공의 반대편에 자리한 다수의 우두머리는 우연인지 아니면 지아장커 감독의 고의인지 똑같이 자오(趙)(「아Q정전」의 자오 영감, <천주정>의 자오성리)씨다. 사회주의적 인민 평등을 위한 기나긴 혁명 과정을 거쳤으나 마치 역사는 되돌아간 듯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그 긴 혁명의 역사가 경과했음에도, 웨이좡의 자오 영감나리가 21세기 자본주의 중국에서 승리(승리勝利의 중국어 발음이 ‘성리’. 탄광 사장 이름이 ‘성리’다)하였다는 것을 암시하고자 한 것은 아닌지. 지아장커의 영화에는 루쉰의 문학 세계가 때론 실루엣처럼 불분명하게, 때론 데칼코마니처럼 똑같은 대칭적 모습으로 분명하게 드러나곤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중국 사회의 하층에 자리한 인물들을 부각시키고 그들의 애환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그 드러냄의 방식이 ‘비판적 리얼리즘’의 전략 아래 이뤄진다는 점에서, 또한 보는 이로 하여금 불편한 리얼리티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긴 시간을 감내해야 한다는 점에서(‘느린 미학’), 지아장커는 ‘영화계의 루쉰’이라고 할 수 있다.(“7장 폭력과 복수의 리얼리즘” 중에서)
1895년 인류가 처음 움직이는 영상을 발견한 이후 동영상/영화는, 문자와 소리에만 의지해 자신을 표현하고 기록해왔던 수천 년 동안의 인간역사를 다시 쓰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