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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87229247
· 쪽수 : 288쪽
· 출판일 : 2019-05-25
책 소개
목차
01. 주문번호 A-33과 B-42
02. 전설의 3남
03. 대한민국에 서태지가 1백만 명이라면
04. 미안해, 라고 말할 수 없었어
05. 한 번만 만나게 해줘
06. “목진서?”
07. 배가 고프더라. 신세 처량하더라
08. 그런 방법은 세상에 없다
09. 빨대가 부러워
10. 너무 시원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지
11. 이 길은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12. 먹물 잔뜩 머금은 서예용 붓
13. 나쁜 버릇
14. 기억하지 않아도 좋을 기억까지
15. 슬픈 거. 무조건 슬픈 거
16. 다시 돌아와 너를 위해 비워둔 내 맘속 그곳에
17. 3·1 독립선언서
18. 상준고등학교 학생 일동
19. 노래방의 컵라면
20. 역삼초등학교 18기 동창모임 준비위원회
21. ‘우리’라는 말
22. 그때 나한테 왜 그랬어?
23. 불쌍한 재욱
24. 역습의 시작
25. 남미경이 울더군. 하염없이
26. 촬영장의 구경꾼들
27. 혁명전야
28. 평화시위를 가로막는 자들
29. 노래 부르러 왔냐?
30. 헐크 호건과 얼티밋 워리어
31. ‘디카’는 힘이 세다
32. 조금도 후련하지 않았어
33. 상춘만 교장 물러나다
34. 20세기의 마지막 12월
35. 그렇게 살아가겠지, 적당히
36. 권력의 속성
37. 한 사람이 있거나. 아무도 없거나
38. 가슴속 3.5센티미터
39. 믿지 않았어. 그녀의 일방적인 얘기들
40. 러브레터. 그리고 러브레터
41. 모르겠네 하도 오래전이라
42.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43. 눈사람
44. 이 소설의 끝을 다시 써보려 해
작가의 말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돌연 얼굴 마주치자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보았고 그 이름마저 한 번에 떠올렸지만 그것은 다만 남미경의 얼굴이고 남미경의 이름이었습니다. 다만 기억의 일부 가운데 일부였습니다.
함께 있는 순간이 조금씩 길어지며, 처음보다 많은 기억들이 짧은 시간 간격을 두고 눈송이처럼 빗물처럼 흩날리고 낙엽처럼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중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기억 못했던 기억과 기억이, 기억하지 않아도 좋을 기억들까지, 정해진 순서 와 절차와 줄거리를 따라 고스란히 되돌아오는 중이었습니다. 20년 전 그해 가을의 짧은 몇 개월 사이에 한껏 집중된 사연 들을 향해서.
4년 만에 단 두 번 만난 남미경에게 홀딱 반하고 만 게 아니라면, 그 오랫동안 내내 은밀하게 줄기차게 남미경을 짝사랑하고 있었던 것일까.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이란 어느 고약한 악성 인플루엔자처럼 오랜 잠복기를 거치다가 어떤 계기를 만나 불끈 와지끈 활동을 개시하기도 하는 것일까. 대치동 은마아파트 상가가, 양재동 롯데리아 2층이 과연 그 계기였을까. 그렇다면, 그 시간과 장소가 아니었더라면, 남미경을 향한 내 안의 악성 인플루엔자는 이 생명 다할 때까지 마음 속 무덤에 고이 잠들어만 있었을까.
그렇게 1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제기랄, 술에 콱 취하고 말았어. 이런 게 취하는 느낌이구나. 몸이 붕 뜨는 것 같긴 한데, 상쾌하게 날아가는 게 아니라 사뭇 불쾌 얼떨떨한 공중부양. 그러자니 왠지 조금 알 것도 같았어. 사람들이 왜 그렇게 술을 마셔대는지.
술에 취하니 감정이란 게 평소보다 몇 배로 깊어지고 넓어지고 높아지더군. 우울하던 게 몇 배로 더 우울해지고. 괴롭던 게 몇 배로 더 괴로워지고. 짜증나던 게 몇 배로 더 짜증나고. 좋지 않은 감정이 그렇게 깊어지고 넓어지고 높아지는데 어처구니없게도 그게 위안이 되더군. 오히려 통쾌하더군. 통쾌하게 우울하고 통쾌하게 괴롭고 통쾌하게 안타깝더군. 통쾌하도록 가슴 아프게 남미경이 생각나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