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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87490036
· 쪽수 : 124쪽
· 출판일 : 2016-12-22
책 소개
목차
제1부
봄이 | 캡쳐하기 | 일찍 퇴근한 날 | 꽃이라는 이름으로 | 청보리밭 멀미 | 장마 | 발정 난 능소화 | 농부 | 월광月狂 | 낯선 얼굴 | 다섯 근 | 칠월 동백 | 운 좋은 날 | 빗방울 | 오동잎 | 공명共鳴 | 시선 | 봄 | 쑥국 | 예고된 손님 | 바람
제2부
하동역 | 동갑 | 순교자 | 붉새 | 환청 | 울기 위해 어는 강 | 애기담부랑 | 사주蛇酒 | 피습 | 209페이지 | 백 원 | 붓꽃 | 엄마의 보따리 | 따라 울기 | 시의 화원 | 국도 19호선 | 그녀 | 빨래 널기 | 돌배나무 | 외할머니의 고방庫房참빗
제3부
언어 체감의 법칙 | 백미러 | 품앗이 | 바람의 지문 | 죄 | 너는 | 알밤 | 남부터미널 | 시 한 수를 암송하는 것은 | 문득 | 연습 | 오늘 | 나이 오십 줄에 | 접선 중 | 알고 보면 | 나를 어르다 | 위안이다 | 전생 | 상처 | 내가 시집을 좋아하는 이유 | 한 사람이 떠난다는 것은 | 가을과 겨울 사이
제4부
빵꾸 | 너도 누군가의 달이다 | 기는 자 | 이중잣대 | 닭 쫓던 개 | 부계 방앗간 | 소망 | 딱 하루만 | 겨울 별 | 감 | 네가 좋은 이유 | 소돔과 고모라 | 본색 | 하늘 빽 | Y兄 | 서툰 일 | 하물며 | 돌배나무 잔상 | 공평함 | 좋아요
해설 모든 것을 보면서 어느 것도 보지 않는 자의 시선 - 김남호(시인, 문학평론가)
시인의 말
저자소개
책속에서
널 바람나게 하고 싶다
갈피를 잡지 못하게 하고
정처 없이 떠나게 하고
죽도록 보고 싶게 하고
목 놓아 울게 하고
배꼽 잡고 뒹굴게 하고
꽃이라는 이름으로 -<꽃이라는 이름으로>
꽃은 평생에
꼭 한 번은 미친다
미쳐야 꽃이 되고
미치지 않음은 꽃이 아님을
발정 난 암소가 온 밤을 울부짖듯
꽃도 밤에는 미친 듯 향기 피우고
기어코 그 본색을 드러내고야 마는 것
미친다는 것은
그 혼을 다 바친다는 것
제정신으로 사는 것,
끝까지 제정신을 지켜내는 것은
삶을 살지 않았다는 것
발정 난 능소화 담벼락 넘어
길손을 엄습하다 -<발정 난 능소화>
여태까지 나는
옷을 장만하고
집을 장만하고
자동차를 장만하고
텔레비전을 장만하고
자식들 학비를 장만하고
노후자금을 장만하고
상신대마을 조 이장님은
평사리 들판 무논에서
논을 장만하고 -<농부>
칠월 장맛비 속에
선운사 동백꽃은 뜨거웠다
산이 불타고 마침내 대웅전으로 전화轉火되었다
동백이 산화山火처럼 불타고 있는 것을
분명 빗속에서 보았다
그 시린 꽃 한 줌 담아왔다
평사리에 꽃잎을 뿌렸다
파문이 일었다
붉은 물이 장맛비에 번져나갔다
선운사 동백꽃이 평사리를 불살라 놓았다
동백꽃을 강물에 놓는다
꺼지지 않는 불이 강물을 태우며
흘러간다 -<칠월 동백>
문을 열면 첫날밤과 같은 열기가 터져 나온다
뜨거웠던 정열의 시간
얼마나 돌았으면 꽈배기가 되었을까?
이리 꼬이고 저리 꼬여
서로 포로가 된 채 묶여 나온다
얼마나 얼싸안았으면 얼마나 몸을 비비고 사랑하였으면
아내와 내가 하나가 되어 나올 때도 있다
결혼을 앞두고 차려놓은 신혼방 서랍장에
아내 속옷과 내 속옷이 같이 잠을 자고
옷장에 옷이 나란히 걸려 있는 것을 보았을 때
가슴 설렜던 그 순간들
또 이후로 얽히고설키기를 몇천 번
휘감아 돌고 서로 비비고 얼싸안고
그 사이에 옷은 낡아지고 -<빨래 널기>
기억하고 있는가?
스산한 틈바구니 타고 들어온 감이파리 하나
붉은 구름에 실려 간 기러기는
산 너머에서 타 죽었다
늦은 밤,
훈련비행기의 따뜻한 소음
기웃기웃거리는 붉은 비상등 불빛은
새똥처럼 머리 위로 떨어졌다
어디선가 날아온 작은 비둘기 깃털 하나
발 앞에 활주로 깔고 안착했다
허공에 실려 온 건넛마을 개 짖는 소리에
동네 고양이들은 늙은 감나무 위로 도망쳤다
느닷없이 날아온 부고장은 문간으로 들어오지도 못하고
화장실 뒤켠에서 풍장風葬을 치렀다
선생님이 가정방문 온다는 소식에
엄마는 온종일 마당만 쓸었다
나를 닮지 말아야 할 것들이 아들에게
번개에 덴 자국처럼 박혀있다 -<바람의 지문>
그 황홀한 꽃을 온몸에 휘감고서도
왜 우리 집 석류나무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지 아니?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서로 껴안지 못하고
쓰다듬어주지 못하기 때문이래
나무도 마주 보고 같이
기대고 설 때
생명을 잉태한대
혼자서는 할 수 없대 -<하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