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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87756804
· 쪽수 : 154쪽
· 출판일 : 2020-10-24
책 소개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사막에서 사는 법 - 11
눈발이 착륙했다 - 12
택배 - 14
백록이 뿔이 돋아 우물에 갇혔다 - 16
달빛 없는 간월암(看月庵) - 18
소금 창고 - 20
나비야 장에 가자 - 22
신장(神將)은 나를 가엾게 여겼다 - 24
신의 사자(使者)들 - 26
사랑의 가면 - 28
아귀(餓鬼) - 30
박대의 표정 - 32
수상한 계절 - 34
노각의 꿈 - 36
우럭젓국 ? 37
제2부
연기(煙氣) - 41
나무장사 - 42
야콘 한입 먹고 - 44
사람만 우는 건 아니다 - 46
소리에 놀란 회화나무 꽃 - 48
봄의 그림자만 왔다 ? 50
달마가 취해서 혼잣말로 - 53
뼈 - 54
꽃씨를 틔워 주세요 - 56
밥은 하늘이다 - 58
굿바이! 꽃게야 - 59
농어와 숨바꼭질 - 62
옛날 통닭 - 64
치통을 물고 질주하라 - 66
모감주나무 꽃이 피었습니다 ? 68
제3부
동쪽 버드나무 아래에서 - 73
신맛은 하염없이 - 74
날아라, 여우원숭이 - 76
얼룩무늬 두꺼비와 함께 - 78
만추의 식탁 - 80
종이 상자 - 83
철봉에 매달린 짐승 - 86
나의 갠지스, 천수만 - 88
손님 - 92
힘내라 짜장면 - 94
그녀의 비린내 - 95
샛별바다 쌀썩은여 - 98
달마의 눈꺼풀 - 100
머위꽃 하얗게 두르고 ? 102
제4부
빙도(氷島)를 아시나요? - 105
게국지 먹고 웃어라 - 106
타워크레인 당간지주 - 108
화목난로의 즐거움 - 110
모기에 대하여 - 112
석양 속으로 - 114
내 마음대로 돈가스 - 116
전복(全鰒) - 118
꽃의 연대기 - 120
파라솔 장터 - 122
별빛이 내려 번진 것처럼 - 124
열매는 지루하다 - 128
미산(嵋山) - 130
나의 연못과 미륵사지탑 - 132
해설 이성혁 경전을 읽으며 꿈의 길을 걷는 낙타 - 133
저자소개
책속에서
나의 갠지스, 천수만
겨울 철새의 새오름이 하늘로 솟구치는 천수만 상펄은
조금 사리가 뒤바뀌는, 달이 태어난 바다의 배꼽이다.
라텍스 피부를 가진 바닷물이 양수처럼 가득 차오르는
천수만은 원래 초승달에 생일로 태어났지만
천 개의 연꽃잎을 어둠에 감추고 매일 밤 한 장씩만 떼어서
유백색 둥근 얼굴로 바다의 장지문을 열었다 닫았다 한다.
장대 키를 훌쩍 넘긴 달빛이 머리를 산발하고 옆구리에 물 항아리를 둘러멨다.
항아리에서 연신 국자로 물을 퍼 수량을 조절하며 부드러운 입김으로
바람을 불러 체에 모래를 곱게 거른다
비옥한 여신의 보름사리.
주름 잡힌 달의 옆구리에 밀물 들면
바다는 살과 살이 맞닿은 강줄기의 안주머니 깊숙이 가죽 지갑 속에
외씨를 심듯 패류(貝類)의 꿈을 꼭꼭 숨겨 둔다.
아무도 알 수 없는 은밀한 밤에 섬들이 토한
잠 덜 깬 모시조개의 탯줄을 받아 내며
밤마다 천수만에 뜨는 바르한의 초승달은
별과 바람과 노을을 통해 모든 생명을 제각각 길러 낸다.
그중 세 번째 통로인 상현달은 하늘의 미간에 위치해 있기에
생각이 너무 무거워 차라리 눈을 감고 있다가,
결국 밝은 해를 보지 못하고 섬이 만든 캄캄한 그리움 속에서
바다의 음성을 겨우 매만지다 어둠의 동공에 투신했다
두 갈래의 길로 빛이 새어 나와 다시 불꽃을 만들어 낸다.
놋쇠로 만든 폭풍의 삼지창을 미풍에 삭힌 다음 남게 되는
그날그날의 불 꺼진 재는 바다의 지붕 위에 낙조로 흩뿌려져
주꾸미와 새조개를 기른 양막에 오래 유등으로 흘러 부활한다.
철새 울음이 쌍발 썰매를 끌고 온 겨울,
찾아온 새들이 하늘이 내준 빈 관절 하나를 입에 물 때
석화는 혹한을 털모자로 짜 머리에 쓰고 살을 채운다.
이때 바다에 가득 찬 달빛은
눈발이 날아와 앉았던 느린 염기를 활활 태워
우둔한 결빙을 온몸으로 버티며 건너가고
햇살이 내려앉는 대낮엔 집게발을 높이 쳐든 황발이가
앞마당 갯벌 가득 떼를 이루어 양귀비 꽃밭을 일군다.
붉은 만다라를 게들이 연신 비눗방울처럼 퐁퐁 게워 내며
경건하게 강심을 향해 오체투지하는 순간,
붉은 구름은 반들반들한 썰물을 하루 종일 멍석처럼 말고 갔다
다시 가볍게 밖으로 펼치고 나온다
천수만엔 낮과 밤을 지피는 파도의 키에 맞춰
무려 삼억 삼천의 달빛이 퍼뜨린 물고기들이 이웃하며 산다.
밤마다 그들은 마른 나문재 가지로 어둠을 먹물로 찍어
풍요를 비는 색색의 타르초를 상형문자로 새긴 다음,
해 질 녘 가창오리 떼의 길게 목 뺀 울음소리에
마지막 햇살을 얹어 광목천으로 펼치는 것이다
*상펄: 서해 천수만 한복판에 있는 모래땅. 물이 따뜻하고 모래가 얕아 물고기들이 산란하러 모여드는 장소. ***
우럭젓국
도라지를 찹쌀고추장에 찍어 몇 잔 사발을 들이키니 도라지 냄새가 간밤을 지나 새벽까지 왔다. 닭 울음소리에 놀라 자리에서 눈을 떠 보니 어느새 나는 산속에 외따로 떨어져 피어 있는 한 송이 도라지꽃! 이럴 때면 으레 바닷가 고향 마을에서 먹던 간간한 우럭젓국이 생각났다.
우선 곱게 소금을 친 후 한 사나흘 동안 꾸들꾸들 그늘에 말린 우럭 포에 뽀얀 쌀뜨물을 붓고 두부와 청양고추 다진 마늘을 넣고 푹 끓이기만 하면. 이때 새우젓으로 간을 맞춰서 맑은 탕으로 솜씨를 부리지 않아도 우럭 안에 숨은 마른 햇볕을 잘 꺼내기만 하면 그만인데.
깊은 바닷속 그 맛의 진국이 펼쳐진 검은 늪에 노랑부리저어새처럼 빠질 수밖에 없었던 것을. 시원하면서도 뒤끝이 개운한 맛인, 억센 우럭 뼈가 내뱉은 해탈의 맛이 새벽 꽃밭에서 서늘하게 나를 불러 세웠다. 비리지 않은 목소리로 허공에 담백하게 외칠까. 진미 났다!
*진미 났다: 독살에서 우럭이 많이 잡히면 ‘진미 났다!’ ‘꽃이 났다!’고 외치면서, 동네 사람들과 잡은 물고기를 나눠 먹던 풍습이 오래전부터 서해 바닷가에 있었다. 충남 태안 지방 방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