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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세계사 일반
· ISBN : 9791187904007
· 쪽수 : 288쪽
· 출판일 : 2016-12-25
책 소개
목차
1. 유럽
⦁영국 스타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는 왕실 사람들 | 왕실의 뿌리 | 귀족, 왕실의 든든한 지지기반 | 왕위 계승자는 누가 될까?
⦁스페인 민주주의 지키고도 인심 잃은 부르봉 왕가 | 독일계일 때 최강, 루이 14세 후손 계승 이후 쇠퇴 | 왕실의 또 다른 위협 카탈루냐
⦁모나코 1인당 GDP 16만 달러의 초부국 | 숱한 염문설을 뿌린 그레이스 켈리의 자녀들
⦁덴마크와 노르웨이 덴마크, 팔방미인 여왕과 뒤늦게 철든 왕세자 | 노르웨이, 존경과 실망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왕실 | 덴마크와 노르웨이, 다른 왕국 같은 왕가 | 덴마크와 노르웨이의 신데렐라 스토리
⦁스웨덴 평민도 왕족이 되는 평등의 왕국 | 나폴레옹의 연적이었던 베르나도트 장군 | 한국과의 각별한 인연
⦁벨기에 사랑받기에 2퍼센트 부족한 왕실
⦁네덜란드 왕실 이미지 쇄신을 위해 노력하는 빌럼 알렉산더르 | 네덜란드 왕가의 뿌리, 오라녜 나사우 가문
⦁룩셈부르크 강소부국을 이루다
⦁리히텐슈타인 왕실 사업의 부활은 국가 경제의 부흥 | 유럽 왕실에서 가장 강한 실권을 가진 공자들
2. 아시아
⦁일본 일왕은 신도 인간도 아닌 권력의 상징 | 세계 정복의 헛된 꿈 | 제2차 세계대전 후 책임 추궁을 왜 안 받았을까? | 천황, 막부 타도 유신 세력에게 권력 통합 매개로 활용되다 | 일왕과 총리의 권위와 권력, 긴밀하거나 불편하거나 | 일왕이 학문에 집중하는 이유 | 일왕은 생활비를 얼마나 받을까? | 왕실의 최고 스타, 아이돌급 인기의 가코 공주 | 황금 새장에 갇힌 공주, 마사코 왕세자비 | '만세일계 '의 희망, 왕손 히사히토 | 일왕 후계를 둘러싼 보이지 않는 대립 | 꺼지지 않는 천황폐지론
⦁브루나이 온전한 독립의 어려움 | 검은 황금의 제국 | 국민들에게만 가혹한 샤리아 형법 | 브루나이 왕실의 초호화 결혼식 | 왕실의 노력과 고민
⦁태국 국가에 투자해 왕실 자산 불리기 | 네 명의 대왕이 일군 왕실의 역사 | 국왕은 어버이이자 신(神)이다 | 다재다능한 푸미폰 국왕 | 태국의 추앙받던 '살아 있는 신 ' 푸미폰 국왕, 세상을 떠나다
⦁캄보디아 힘없는 왕들의 절대 권력을 위한 도전과 좌절 | 현대사의 증인, 시아누크 국왕의 최후 | 캄보디아 왕조, 2,000년의 역사 | 슬픈 역사의 위대한 건축물, 앙코르와트
3. 중동 ·아프리카
⦁사우디아라비아 엄격한 이슬람 규율이 지배하는 나라 | 부와 권력을 모두 움켜쥔 최강의 왕실 | 애틋한 사랑의 주인공 수다이리 왕비 | 바람 잘 날 없는 스캔들 왕실 | 강한 군주, 파드 국왕 | 압둘라 전 국왕의 깨져버린 개혁의 꿈 | 가문 사이의 보이지 않는 암투 | 개혁의 아이콘, 탈랄 왕자 | 명예스런 석유 황제의 퇴장
⦁쿠웨이트 줄타기 외교와 상인 DNA로 부의 요새를 구축하다 | 상인 가문의 남다른 경제 수완 | 쿠웨이트 왕실의 두 가지 문제 | 미니스커트를 입는 여성들, 막강한 권한을 가진 의회
⦁아랍에미리트(UAE) 아랍에미리트 대통령의 신분은 군주 | 강한 아랍에미리트를 이끈 아부다비 왕실 | 두바이, 정치보다는 경제에 최적화된 군주 가문 | 일곱 개 부족의 유지 고리는 힘
⦁오만 신밧드 모험의 출발지 | 권력의 화신, 술탄 카부스 | 인고의 세월, 타리크가는 대권을 잡을까?
⦁카타르 33세의 젊은 국왕, 세계적 강소국에 도전하다 | 미술계 큰손 중의 큰손, 아랍의 메디치 가문 | 히잡 벗은 여걸들, 교육 ·문화 ·예술을 주무르다 | 카타르의 살림을 책임지는 카타르투자청 | 영국 보호령의 한(恨)을 풀다 | 중흥 이룬 풍운아 칼리파 전 국왕 서거
⦁바레인 권모술수의 달인들 | 영국에서 미국으로, 호가호위의 처세 | 진주 캐던 상인에서 석유 부호 왕실로 | 하킴, 에미르, 왕, 무엇이 다를까?
⦁요르단 석유 없이도 중동의 강자로 우뚝 서다 | 아랍 최고 왕가의 파란만장 20세기 |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왕비의 러브 스토리 | <아라비아의 로렌스>가 아라비아의 로맨스로
⦁모로코 타협의 왕 무함마드 6세 | 나라의 부는 모두 왕실로 | 이슬람 국왕의 일편단심 이끌어낸 마력의 왕비 | 350여 년 동안 명맥을 이어온 알라위트 왕조
⦁스와질란드 민족주의와 전통문화에 기댄 권력 | 음스와티 3세의 부인들
책속에서
메테마리트의 결혼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미혼모였던 데다 왕세자와의 교제 사실이 알려진 후 과거 마약을 복용한 전력이 있다는 보도까지 쏟아졌다. 결심을 굳힌 호콘 왕세자는 왕위를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결혼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명확히 했다. 높았던 왕실 지지도는 추락했고 여론은 악화됐다. 그러나 예비 왕세자비의 진심을 담은 고백과 참회가 국민들의 마음을 돌렸다. 환영받지 못한 결혼을 며칠 앞두고 메테마리트 왕세자비는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의 지난날을 눈물로 속죄했다. 여론은 달라졌고 두 사람은 지난 2001년 8월 축복 속에 오슬로대성당에서 결혼했다.
어린 시절 제왕학과 군사학을 공부했던 히로히토 일왕은 전후 아카사카(赤坂) 별궁 내에 생물학 연구실을 창설해 변형 균류(점균)와 히드로 파충류(히드로조아)의 분류학 연구를 시작했다. 당시 학계에서는 히드로조아가 동물인지 식물이지 구별되지 않았는데, 쇼와의 연구 결과 동물인 사실이 확인돼 저명한 학술지에 기고되기도 했다.
아키히토 일왕은 세계적인 망둥이 연구가로 유명하다. 일왕은 '일왕 '이라는 직위 외에 어류학 박사 학위도 갖고 있다. 아키히토 일왕이 일본어류학회에 발표한 논문만 28편에 달한다. 그는 1992년 세계적인 과학 잡지인《사이언스》지에 논문을 기고하기도 했다.
후세인과 가디너는 가디너의 부친이 요르단 군사 고문으로 일할 때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가디너는 1961년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제작하던 영화사에서 일했다. 당시 요르단 국왕인 탈랄 1세는 아들인 후세인 왕자에게 영화에 출연하는 요르단 군대를 인솔하도록 지시했다.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탈랄 1세 부왕인 압둘라 1세의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아라비아의 로렌스>가 '아라비아의 로맨스'가 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