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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문학의 이해 > 한국문학론 > 한국비평론
· ISBN : 9791187904120
· 쪽수 : 456쪽
· 출판일 : 2018-10-15
책 소개
목차
1부
1. 이야기의 힘
추억의 힘과 거장의 힘
동심원이 아닌, 칠레의 세계
‘공멸’에의 예감, 합리적인 윤리
‘나쁜 피’의 감정수업
‘계속해보겠습니다’의 태도
열정의 미학
차이를 ‘지우는/생성하는’ 보편의 이야기
존재 증명의 달리기, 위로에의 염원
회색 지성의 ‘윤리적’ 애도
특수한 보편, 무수한 ‘이야기’들의 겹침
2. 이야기의 변이
뫼비우스의 띠를 따라 걸어가다 보면
사막에서 살아가기
감정과 소통
상상된 파국, 종말 이후의 세계
오래된 질문과 마주하는 소설적 태도
‘이야기’의 변이
아버지, 혹은 구원의 서사
2부
1. 생성의 시작(詩作/始作)
평행면1과 2에 관한 두 가지 의견
‘사라지는 것들’의 견고함
부정의 시적인 태도
쓴다는 것, 이토록 이상한 곳에서
시공의 음률, 이를테면
흔들리는, 불온한, 타자의 언어
2. 삶을 ‘짓는’ 수행적 시쓰기
탁류와 면벽 편승하며 미끄러지는 ‘분위기’의 힘
연기의 문장, 碑文 혹은 非文
지구 공동의 시간, ‘탈분단’을 상상하는 ‘차이’의 시간
‘조합원’의 윤리, 시적인 ‘에듀케이션’
쌓이는 시/間/들, 깊어지는 시/들
수런거리는 자정의 언어
‘루저’들의 일그러진 웃음, 화해 혹은 긍정의 윤리
선명해진 세상에서, 희미해진 우리는
다르지 않은 내일의 세계, 쳇, 다른 소리로 쓰기
기억의 환대, 타자성의 수용
충만한 지공의 삶
3. 삶을 통과한 말
월경의 ‘문/어’
유령이 깃들도록 내버려두는 마음
사물의 말
‘다른’ 세계의 ‘있음’
실패하는 사랑, ‘발쇠’의 시
삶을 통과한 말
열린 감각의 정중동
한 세계가 들어가고 시인이 남았지……
‘통로’의 언어, 파편적인 그러나 매혹적인
A, B, C, ……, ‘나’ 혹은 신?
언어에의 매혹, 시인의 운명 혹은 책무
기억의 서정성, 외경의 시학
이것은 말놀이가 아니다
감각, 기억, 우주
환영이 출몰하는 세계의 우울한 음화
너를 내 안에 두는 슬픔
익숙하고 낯선 ‘마법의 장소’
겹쳐진 날들의 풍경, 해적판이 되다
저자소개
책속에서
추억의 힘과 거장의 힘
― 황석영, 『해질 무렵』
황석영 또한 문학판의 ‘거장’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작가이다. 시대적 과제를 외면하지 않았고 문학적 도전과 실험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그는 원로작가의 대열에 서 있으면서도 ‘과거’라는 시간 뒤로 숨는 방식을 택하지 않고 늘 ‘현재’의 테제를 다루어 왔다. 물론 최근의 『해질 무렵』이나 『강남몽』 등 많은 작품들에 과거의 시간이 담겨 있긴 하지만 그것은 늘 ‘현재’에 대해 무언가를 말하기 위해 소환된 것이었다.
작품에 그려진 ‘강남’은 과거의 그곳이지만 소설의 발화와 소통은 ‘강남’을 향해 끓어오르는 현재의 욕망을 겨냥함으로써 가능해 진다. 선망이든 질투이든, 냉소이든 비난이든 누구나 ‘강남’이라는 기표와 접속하는 순간 자신의 적나라한 감정의 실체를 확인하게 된다. 그러니 어찌 『강남몽』과 소통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동심원이 아닌, 칠레의 세계
― 이장욱, 『기린이 아닌 모든 것』
첫 소설집 『고백의 제왕』에 실렸던 「곡란」의 집단자살모임은 죽음을 중심의 자리에 놓고 맹목적으로 매달리는 자들의 집합이지만 죽음을 유보하기 위해서 계속 이야기를 하자고 제안하는 ‘고희성’은 불안을 견디며 살아가려는 쪽이다. 고희성이 강박적으로 반복하는 “살아야지!”라는 외침은 삶에 대한 의지가 아니라 불안을 견디려는 외로운 주문과도 같은 것이다. 「기린이 아닌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의 ‘나’가 “그것이 나의 운명”이라고 말하는 이유 또한 운명이라고 받아들이지 않고는 어떻게도 설명이 되지 않는 불가해한 삶을 견디기 위함이다. 「칠레의 세계」에도 삶의 우연성을 견디지 못해 “완강한 인과의 사슬”로 자신의 삶을 해독하려는 남자가 등장한다. 그 남자는 우연한 죽음의 순간, 자신의 전 생애를 “부인할 수 없는 필연의 사슬”로 연결하는 목소리를 듣는다.
자네는 그런 과정에 익숙하지 않은가? 처음에는 뭔가 의아한 느낌이었다가, 점점 의심스러워지다가, 드디어 의심의 여지 없이 명백한 확신의 꼬리를 붙잡게 되는 것.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발생하는 사건들을 명료한 인과의 사슬로 잇는 것. 급기야 앞뒤가 꽉 막힌 한 편의 이야기를 완성하는 것. 흩어져 있던 사건들이 문득 하나의 의미를 향해 모여들어서, 부인할 수 없는 필연의 사슬로 연결되는, 그런 과정 말일세.
― 「칠레」(193쪽)
거대한 우연성의 세계를 필연의 사슬로 엮는 일은 불가능하다. 흩어져 있는 모든 사건들을 하나의 원리로 통합하여 설명하려는 편집증적 욕망은 근대적 이성의 세계를 추동해온 욕망이기도 하며 인간의 근원적 욕망이기도 하다. 이러한 실현 불가능한 욕망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 중 하나는 바로 프레임을 만들어내는 것. ‘나’라는 프레임을 만들고 내가 볼 수 있고 인지 가능한 것만을 프레임 안에 가둠으로써 해독가능한, 완전무결한 세상이 만들어질 수 있다. 그러나 프레임을 좀 더 넓혀보면 촘촘한 인과의 고리로 연결되었던 사건들 사이에는 무수한 구멍이 존재함을, 완강한 필연의 고리는 느슨한 무의미의 선이었음을 알게 된다. 이는 꽉 채워져 있던 중심이 사실은 텅 빈 기표였음을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하나의 의미”를 말했던 목소리는 뫼비우스의 고리를 끊고 “다른 세계”를 보기를 제안한다. 이항적 대립의 세계보다 조금 더 넓은 프레임이라 할 수 있는 뫼비우스의 고리를 끊으라는 말은, ‘이것은 진실’의 세계와 ‘이것은 진실이 아니다’의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를 열어젖히라는 말이기도 하다. 그것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길고 복잡한 해안선을 가진,/그런 세계”이다.
뫼비우스의 띠를 따라 걸어가다 보면
― 문학과 몸
이광수의 「무정」은 형식이 선형을 만나러 가면서 느끼는 선명한 육체적 감각으로부터 시작된다. 집단적 운명에서 벗어난 독립된 개체로서의 근대적 개인은 이렇듯 누구에게도 동일할 수 없는 개별적 감각으로 표현되었다. 그러나 이성의 무릎이 맞닿는 순간의 감각을 기록했던 「무정」이 결국 금욕주의적 계몽주의로 귀결되고 말았던 데에서 알 수 있듯, 근대문학이 개화되던 순간부터 ‘몸’은 이미 정신의 외피일 뿐이었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몸’은 문학작품의 전면에 나서지 못했다. 식민지 시기와 한국전쟁, 독재정권 시기와 같은 극한의 상황에서 몸은 폭력에 무력하게 노출되어 파괴되고 찢겨진 형상으로 재현되거나 ‘병든 몸’으로 시대의 병적인 징후를 은유하곤 했다. 그러나 외부적 폭력에 의해 찢겨진 것은 몸이 아니라 정신이었다. 몸은 정신을 이야기하기 위해 동원된 수사학적 장치였으며 은폐된 타자였다. 손창섭 소설에 등장하는 불구의 몸은 전쟁으로 폐허가 된 현실과 그로부터 어떠한 모색도 가능하지 않았던 시대정신의 표상인 것으로 이해되었으며, 김승옥 소설의 병적인 몸은 경제개발과 더불어 강화되어 왔던 근대적 규율권력이 몸을 매개로 개인의 정신을 잠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으로 해석되었다. 죽음에 이르고 마는 소설의 결말은 몸을 구원해 줄 절대적 ‘정신’의 부재를 의미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