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독일소설
· ISBN : 9791188077014
· 쪽수 : 432쪽
· 출판일 : 2017-05-09
책 소개
목차
수프 수난사 7
Love 3 30
이웃의 도리 46
스토커 66
혼란의 연속 84
운수 나쁜 날 100
키츠의 여왕 121
심장이 쿵! 139
프로그램 변경 146
다시 달려보는 거야! 188
희망과 절망 사이 218
돼지우리와 데스메탈 같은 232
인생은 해변 252
여름 비수기 278
너무나 동화 같은 305
실수투성이 내 인생 324
폭우 355
행복한 순간들 390
구름 위를 날다 410
리뷰
책속에서
어쩌다 보니 인생이 이렇게도 엮이나 싶게, 여름휴가를 함께 가게 되었다.
달이 밤하늘 높이 걸려 있을 즈음, 우리는 그만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양치질을 하고 거실로 가 보니 베드소파는 메를레와 브리기테 두 사람이 이미 차지하고 있었다. "뭐야! 브리기테와 내가 여기서 자는 건 줄 알았는데? 메를레, 너는 네 오빠하고 자야지."
메를레는 입이 찢어지게 하품을 했다. "왜 그렇게 생각했어? 난 옌스 옆에서는 못 잔단 말이야. 코를 엄청 심하게 골거든."
브리기테는 이불 속으로 파고들면서 중얼거렸다. "침대에서 자게 됐으니 좋잖아."
'그래도 옌스와 한 침대에서 자는 건 싫은데.' 하지만 괜히 유난을 떨고 싶지는 않아서 어쩔 수 없이 내가 양보를 했다. "할 수 없지. 그럼 잘 자!"
"언니도 잘 자!" 메를레가 애교스럽게 말했다.
나는 트렁크 두 개를 질질 끌고 침실로 향했다. 침실 문 앞에 멈춰 서서 망설였다. 옌스가 혹시 홀딱 벗고 있으면 어쩌지? 문을 두드리자마자 바로 "들어와요!"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알몸이 아니라 복서 팬츠와 티셔츠를 입고 양손을 머리 밑에 깍지 낀 채 누워 있었다.
"메를레와 브리기테가 나더러 여기서 자라네요." 내가 말했다. 여기서 자는 게 내 생각이 아니었다는 것을 미리 밝혀 둬서 나쁠 게 없을 것 같았다.
그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불현듯 나는 얇은 어깨끈이 달린 짧은 잠옷을 입고 있는데도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잘됐군!" 그가 마침내 말했다. "잘 알겠지만, 메를레가 코를 골잖아요."
"메를레는 그쪽이 코를 골아서 같이 못 잔다고 하던데요." 나는 옌스한테서 최대한 뚝 떨어져서 얇은 이불을 덮고 얼른 누웠다.
그는 옆으로 몸을 돌려 한쪽 팔로 머리를 받친 자세로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 순간 그의 눈이 확연하게 녹색을 띠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잔뜩 긴장한 것 같은데. 왜 그래요?"
나는 불을 껐다. 그가 내 표정을 보고 이 상황이 내게 얼마나 곤혹스러운지 알게 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옌스 쪽에 있는 나이트 스탠드 램프가 켜져 있어서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하필이면 우리 둘이 한 침대에서 자야 한다는 게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래요." 나는 불평을 늘어놓았다. "할리우드 영화에서라면 내가 그쪽더러 바닥에서 자라고 하겠죠. 하지만 그러는 것도 우스울 것 같아서요."
"그쪽이 그러라고 하든 말든 어차피 난 바닥에서 안 잘 거예요. 그런데 우리 둘이 한 침대에서 자야 한다는 게 왜 어처구니가 없죠?"
"그건 우리 네 명 중에서 성(性)적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 수 있는 두 사람이 하필 한 침대에서 자야 하니까요."
옌스는 폭소를 터뜨렸다. "그래요? 그럼 오늘 밤 당신이 나를 덮칠까 봐 무서워해야 하나요?"
"참 나! 꿈도 야무지시네요."
"그게 아니면 뭐가 문제지? 어째서 나와 브리기테나 메를레 사이보다 우리 둘 사이에 성적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네요."
어이가 없어서 나는 그를 응시했다. "이봐요! 우리 둘은 나이도 비슷하고 친족도 아니잖아요."
"그래서요? 그렇다고 해도 당신과 브리기테 그리고 메를레 중에서 누가 내 옆에 눕든 내겐 다 마찬가지인데."
나는 큰 소리로 씩씩거렸다. "기가 막혀서…… 이 멍청한……." 그는 방금 내 인생 최대의 모욕을 안겨 놓고 내 옆에 누워 순진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망나니!"
옌스는 이마를 찌푸렸다. "왜 그렇게 흥분을 하는 거죠?"
"무례한 말을 했잖아요! 난 그래도 매력적이라고요. 안 그런가요?"
"맞아요. 매력적이긴 해요."
"그리고 난 호감이 가는 스타일이에요."
"뭐, 나름 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
"또 잠자리에서도 끝내줘요!"
"음…… 그렇다면 그런 거겠죠."
"거봐요. 난 당신과 비슷한 나이인 데다 친족도 아니고 매력적이며 호감이 가고 잠자리에서도 끝내주죠! 예를 들어 누군가가 나를 당신 배 위에 묶어 놓는다고 쳐요. 그래도 당신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어요?" '내가 지금 무슨 말을 지껄이고 있는 거야?' 왜 그렇게 흥분을 해서 억지소리를 해대고 있는지 나 자신도 알 수가 없었다.
이제 옌스도 눈에 띄게 혼란스러워 보였다. "누가, 뭣 때문에 그런 짓을 할까 의문이지만…… 어쨌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왜죠?" 나는 잡아먹을 듯 다그치면서 동시에 주접스러운 내 입이 제발 좀 닫히기를 바랐다.
"그거야 내가 당신에게 끌리지 않기 때문이죠. 내 타입이 아니거든요. 그리고 예쁘고 호감이 가며 스스로 잠자리에서 끝내준다고 자처하는 모든 여자에게 끌린다고 한다면, 그것도 문제가 심각할 거 같은데."
사실 아주 그럴듯하고 충분히 공감이 가는 설명이었다. 그는 내게 끌리지 않는다! 그건 어차피 알고 있던 사실이고, 나 역시 그에게 아무 감정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말이 나를 견딜 수 없이 화나게 만드는 건 왜일까?
"그런데……." 옌스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이렇게 가정해 보죠. 내가 당신과 브리기테, 둘 중 한 사람과 꼭 자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고 말이에요. 그러면 난 차라리 당신을 선택할 거예요."
차라리?! 이 남잔 정말 구제 불능이네! "내가 당신과 브리기테, 둘 중 한 사람과 자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면 난 차라리 브리기테를 택할 거예요. 그럼 잘 자요!" 나는 그에게 분노에 찬 시선을 던지고 몸을 홱 돌렸다. 내가 침대 끄트머리에 누워 있었다는 것을 미처 염두에 두지 못한 채. 나는 꼴사납게 침대에서 떨어지면서 머리를 나이트 스탠드에 대차게 들이박고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아야, 젠장!"
옌스가 내 위로 얼굴을 내밀고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괜찮아요?"
나는 아픈 머리를 문지르며 일어나 앉았다. 그의 입언저리가 실룩거리기 시작했다. "이러면 내가 아무래도 브리기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