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88255085
· 쪽수 : 232쪽
· 출판일 : 2017-11-03
목차
추천의 글_아픔이 아픔에게
여는 글_ 아빠, 우린 왜 이렇게 행복한 거지?
#1. 아프고 슬프고 고마운 이름, 가족
_고통은 가족의 일상이 되었지만
삶이 닮아간다│괴롭히며 사랑하는 아이들│엄마를 돌보는 어린 사랑│니고데모가 안경을 꼈어?│죽도와 죽도록│즐거운(?) 승리│찬송으로 하나 되기│싸게 놀지 마요!│부전자전│감출 길 없는 본성│춘녀의 장난감│추억 만들기│따스함을 부르는 말, 여.보.│재미로 사는 아들│춘돌이의 사춘기│아들에겐 복음, 아빠에겐 복통│누워 사는 여자들│오늘은 천 원만!│어느 막내딸의 치사랑│한 시간짜리 아동 학대│두 남자의 심야 수다│목사가 사람을 버려?│그것도 몰랐어?│아들의 문자메시지│닮는다는 것│두려움을 몰아내는 비결│품는 것이 사랑이다│그리운 당신 목소리│자라지 않은 사랑│죽도록, 죽을 때까지│아내도 투표했다│왜 술을 만드냐고요!│늙은 하나님│엄마를 부르면│망구 씨│아들 보기 부끄러워│아빠, 바람 피우지?│사랑하다 왔어요
#2. 일상, 부르심과 임재를 발견하는 곳
_삶의 공간을 채우는 빛
다시 글을 쓰며│압력밥솥│무의미한 1등│손을 잡지 않는 이유│한 통의 문자│내 돈으로 샀어│해야 할 일 vs 하고 싶은 일│약한 자와 함께할수록│지나친 열심│예기치 않은 복│축구와 성화│두 세계 사이의 죄인│삶과 산│낫지 않아도 사랑은 계속된다│마음이 전해지길│봄꽃 다 지겠다, 비야│자녀이자 종│우리 가족│사랑아, 오라!│일어나 걸어라?│쉬운 상황, 어려운 판단│불안 속에서도 피는 꽃│도둑질 vs 착취│춘돌이의 성경 적용│아이들의 대답│아내에게만 최선을!│생각지 못한 은혜│차라리 내가 공부를?│끼니와 안식│아빠의 정체는?│거룩한 삼각관계│소망은 눈물 뒤에 온다│간증의 유효 기간│능력보다 사랑이 먼저│남자들끼리 살까?│아픔도 삶의 일부│연합을 방해하는 것들│열림 버튼, 닫힘 버튼│너네 아빠 찾아가라│누군가의 시선에 따라│아내가 나를 키운다│아내, 내 삶의 동반자│스물일곱 살 수진을 만나다│향수와의 대화│허물도 쓸모가 있다│LTE에서 2G로│다시, 기나긴 일과
#3. 신앙, 생의 이면에 눈을 뜨다
_내가 너를, 오래 기다렸다
고통 덕분이다?│고난 없는 삶은 없다│기도와 분별력│잠에 취한 기도│부부 관계와 기도│하나님 중심의 삶│세우기와 허물기│그분 뜻대로 vs 내 뜻대로│아픔도 빛을 낸다│근본적인 이유│멈추지 않는다면│긍정적 사고와 믿음│단 하나의 두려움│조폭보다 못하려고│솔로몬의 실패한 자녀 교육│믿음과 치료 사이│‘어디로’부터와 ‘누구’로부터│집 떠나면 고생│전능하심의 근거│삶으로 하는 설교│성경과 부적│오직 사랑만이│삶이 흔들릴 때의 기도│하나님의 계산법│가장 좋은 성도들│손녀의 믿음 vs 할머니의 믿음│더 소중한 것│아들과 함께 주시는 것│원망과 믿음│아플 땐 아픔만 느껴질 뿐│두 번 죽은 나사로│보여주는 사랑│두 종류의 밭│시간의 거룩함│다 잘하겠다는 욕심│단순함이 주는 담대함│하나님의 자유 vs 나의 자유│관심의 초점│고난이 주는 유익│순종 없는 간구│더불어 산다는 것│주어와 목적어 관계│문제는 숫자가 아니다│쉬지 말고 기도하라│자유함의 비밀
닫는 글_ 내 일상을 풍성하게 해주는 이름들
저자소개
책속에서
수요예배를 마친 어느 날, 가족과 함께 봉고차를 타고 집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막내 윤지가 뜬금없이 이렇게 말했다. “아빠, 우린 가난한데 왜 이렇게 행복한 거야?” 나는 깜짝 놀랐다. 아이의 입에서 ‘가난’과 ‘행복’이란 단어가 동시에 터져 나와서. 사실 내 상황을 알거나 글로 읽은 사람들이라면 아마도 혼란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초등학교 저학년 꼬마 아이의 눈에 비친 내 인생은 가난하면서도 행복한 삶이었다.
윤지야, 네가 새벽에 엄마 가래 빼줬니?”
“응”
“석션기 사용하는 건 어떻게 알았니? 언니가 가르쳐줬어?”
“아니, 그냥 아빠 하는 거 보고 알았어.”
태어난 지 사흘 뒤로는, 지금껏 자기 이름을 불러주는 엄마의 목소리를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녀석이 이제 꼼짝 않고 누운 엄마의 가래를 빼준다. 엄마의 돌봄을 받아보지 못한 어린 딸이 엄마를 돌본다.
싱글 시절, 내 기도 제목 중 하나는 ‘기도하는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는 것’이었다. 결혼을 하고 보니 아내는 기도하는 여자가 아니었다. 기도하는 척하는 여자였다. 병으로 눕고 난 뒤, 이제 아내는 기도밖에는 할 게 없다. 아내로서 남편에게, 엄마로서 자녀에게, 사모로서 교회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오직 누워 기도만 할 뿐이다.
아내는 지금 ‘기도만 하는 여자’가 되어 있다. 배우자에 대한 기도 제목이 이렇게도 이루어지는 걸까. 아, 난 기도만 하는 여자는 싫은데... 기도하는 척하는 여자도 좋은데...
스탠리 하우워스는 내가 좋아하는 신학자다. 그는 다양한 급진적인 신학 저술들을 저술하여 기독교사회에 항상 경종을 올려온 우리 시대의 예언자 같다. 그가 어느 날 풀러 신학교에서 강연을 하게 되었다. 그날 강연은 신학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삶, 특히 고통 가운데 있는 자신의 삶을 나누었다.
그는 무려 23년 동안 정신병을 앓는 아내를 돌보며 살았다. 그의 아내는 동료 교수 앞에서 옷을 벗고 유혹하기도 했고, 심지어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스탠리 하우어워스는 아내가 죽은 지 5년이 지난 뒤에야 그 이야기를 꺼냈다. 강연에서 그는 청중을 향하여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제가 목사라고 해서 지난날의 상황을 아무런 고통 없이 기도로 이겨냈을 거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마십시오.”
아내가 아픈 동안 그는 부부관계를 부러워했노라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그러면서 부부관계보다 더 그리운 것이 있었ㄷ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병든 아내가 저를 사랑스럽게 부르는 말을 듣고 싶었습니다. 아내가 저를 ‘여보’라고 부르는 그 친근한 한마디, 그 목소리가 그리웠습니다.”
성적인 친밀함을 넘어 다정한 사랑의 언어, 일상 속의 소소한 친밀감을 누리고 싶었다는 것이다.
나도 그렇다. 지금도 아내의 말 한마디가 그립다. 아내가 안방의 병상에 누워 있지만, 아무런 말을 들을 수 없어서 외로웠다. 늦은 시간 퇴근해서 집으로 들어갈 때, 아내가 나를 반기며 “당신이에요? 어서 와요, 여보”라고 반기는 목소리를 듣고 싶다.
사람 사이라는 게 말로 듣고 마음으로 이해하는 것 아닌가. 그러니 말을 할 수 있는 지금, 대화를 나울 수 있는 지금, 각각 배우자에게, 벗에게, 사랑하는 이이에 마음을 담은 한마디 말을 건넬 일이다. “사랑한다”고. 아니, 그저 “네”라는 대답이라도 친근함을 담아.
새벽기도를 마치고 돌아온 지금, 아내의 다정한 말 한마디가 정말 그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