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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라이트 노벨 > 기타 라이트노벨
· ISBN : 9791188793037
· 쪽수 : 360쪽
· 출판일 : 2018-02-28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나는 한 손에 덱브러시를 든 채 콘크리트로 만든 연못 안에 서 있었다.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내가 뭐 나쁜 짓이라도 했나?
멀리 고향을 떠나 홀로 일하며 면학에 힘쓰는 고학생을, 신은 버렸다.
죄송합니다, 거짓말이에요. 면학에 힘쓰진 않았습니다.
아니, 설령 그렇다 해도 이 처우는 너무하잖아.
"손을 쉬지 마라, 이즈미! 서두르지 않으면 기온이 올라간다."
다큐멘터리 방송의 내레이션 같은 데 쓰면 여성 시청자의 반응이 뜨거울 듯한 중저음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렇게나 좋은 목소리로 질책당하고 있자니 스스로가 보잘것없는 게으름뱅이처럼 느껴졌다. 내가 반려견이라면 '주인님, 죄송합니다' 하며 꼬리를 둥글게 말았겠지.
목소리의 주인은 운동복 위아래로 장화와 전통적인 밀짚모자라는 촌스러운 차림이었다. 그런데도 마냥 세련된 모습으로 보이니 신기한 일이다. 뭐, 애초에 운동복 브랜드가 구찌니까 멋있는 게 당연한가.
그건 그렇고 작업복으로 구찌라니. 어떻게 되어 먹은 센스야, 이 사람.
"왜 멍하니 있나, 이즈미. 조는 건가?!"
"아뇨, 안 졸아요!"
아무튼, 시늉이라도 좋으니 손을 움직여야 했다.
나는 손에 든 덱브러시를 잘게 움직여 연못 바닥을 계속해서 박박 문대었다.
곧장 키리야마 저택을 향해 스쿠터를 달렸다. 내가 고양이를 데려가겠다고는 했지만 우리 공동주택에서 기를 수도 없고, 결국 키리야마 가로 가는 것이 이 녀석을 위한 일이었다.
키리야마 저택에 도착했을 무렵에야 고양이는 얌전해졌다. 아니, 그보다는 완전히 늘어졌다고 하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시노부 씨, 이 고양이를 구해 주세요."
"이렇게나 잔혹한 짓을……."
내가 우리를 내밀자, 시노부 씨는 말문이 막히면서도 급히 우리를 부수고 안에서 갈색 고양이를 꺼냈다.
"이즈미, 타월을 가져와라! 그리고 반려동물용 핫매트와 고양이 돔 하우스도. 빨리!"
나는 지시받은 물건을 최대한 빨리 준비했다. 키리야마 가에는 반려동물을 위한 갖가지 용품이 있고, 모두 정해진 창고에 수납되어 있었으므로 곧바로 꺼낼 수 있었다.
시노부 씨는 지쳐서 늘어진 고양이를 살며시 타월로 감싸고 부드럽게 몸을 쓸어 주었다.
"미안해……. 인간을 용서해 주렴."
시노부 씨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시노부 씨 잘못이 아닌데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나는 조금 울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