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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88841318
· 쪽수 : 236쪽
· 출판일 : 2023-09-25
목차
1 퇴사 후, 나에게로
잠시 멈추겠습니다…12
새로운 도전…16
좋아하는 일과, 돈 사이에서…19
박차고, 걷기…23
의미 있는 물건만 남기기…26
월요일 아침의 편안함…30
글을 쓰고, 읽고, 보고…33
몸의 신…호37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방법…41
10년 다닌 회사를 퇴사하면서…45
엄마랑 둘이 살아보면 어떨까?…48
2 엄마, 그리고 소소한 일상
명랑한 60대, 심 여사…54
엄마도 대화는 처음이라…57
어벤져스를 좋아하는 60대…61
노각 무침…65
빨래 요정, 심 여사…69
저녁은 간단히 먹는 거야…72
목욕에 진심인 모녀…75
토요일에 뭐해?…78
마중…81
엄마의 반항…84
또 만나고 싶은 기분…88
노래를 부르고, 음악을 듣고…92
구피와 강아지에 대하여…96
카페로 공간 이동…99
30대 카페 알바…103
편의점에서 일하면서…107
3 불안해도, 다시 한번
우울이란 손님이 찾아올 때…112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115
바라는 마음…119
인정의 끝…123
또라이가 무서워…127
그만두고 싶을 때…130
중학교 3년간, 풍물…134
고등학교 3년간, 연극…138
취직과 연애…142
알고 있지만…145
사랑했던 사람에게…149
을의 사랑…153
20대에 집을 산 이유…157
우리 회사여서 좋았던 점…160
기대하지 않지만, 표현은 하기…163
비 내리는 거리에서…167
4 살고 싶은 삶, 오늘부터
내맡기기…172
몰입하는 즐거움…175
열심히 하는 보통 사람…179
나에게 차려주는 음식…184
나한테만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188
외부로부터의 자유…192
오늘 아무 일도 없었어…195
책이라는 안정제…198
한 칸짜리 공간…202
나눔…206
주변을 향하는 작은 마음…210
설렘…214
멈출 때를 아는 것…218
열린 결말…222
이게 나인걸…226
그래도 다시, 사랑…230
저자소개
책속에서
잠시 멈추겠습니다
번 아웃이 찾아온 건, 3년 전쯤이었다. 일이 힘든 건 정상이라 여겼고, 불편한 사람들로 인해 감정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려 할수록 더 많은 일을 했다. 일에 집중하면 감정이 사그라졌기 때문에, ‘이러다가 괜찮아지겠지.’라며 불편함을 억눌렀다. 최소한 20대엔 그게 가능했다.
그러나 서른 살이 되던 해, 이제는 그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모른척했고 결국 멈추었어야 할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만약 3년 전 잠시 쉬어갔다면 여전히 회사에 다니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시기에 내면을 돌보지 않았고 마음의 소리보다는 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나중에’를 외쳤다.
“겉으로는 괜찮아 보였는데, 갑자기 왜?”
퇴사 신청 후 대부분은 이런 반응이었다. 3개월 전부터 심장이 시도 때도 없이 두근거려 잠이 오지 않았고, 불면증이 지속될수록 여러 가지 병명들이 들러붙었다. 그러다가 어느 지점에서 가속도가 붙었고 타인의 도움 없이는 멈추기 어려운 상태가 되었다. 병원에 다니고 약을 먹고 주말에 쉬어도 나아지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문제였고 어떻게 풀어가면 좋을지 가늠되지 않는 막막함은 더 이상 한 발자국도 내디딜 수 없게 했다. 그렇게 어느 일요일 아침, 책상에 가만히 앉아있던 나는 조용히 결정을 내렸다.
나름 이성적으로 계획하고 퇴사 신청을 했지만, 몸도 마음도 밑바닥이라 휴식을 가진 다음에야 정상적인 사고가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러한 내 결정이 충동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구나, 평판에 대한 걱정도 들었지만 내 뇌에선 이미 결정한 사항에 대해 돌리고 싶지 않아 했다.
내게 필요한 건 내면의 중심을 찾는 것이었기에 다른 사람이 해줄 수 있는 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정중하게 모든 제안을 거절했다. 그렇게 결정한 대로 밀고 나가니 마음이 후련했다. 어렵게 붙잡고 있던 책임감의 무게가 가벼워졌다. 그래, 나라도 나 자신에게 애썼다고 이야기해줘야지. 10년간 정말 애썼다. 네가 했던 모든 일과 행동을 나는 알고 있어. 그러니까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변화를 맞이하자. 한 달 동안 인수인계하는 다소 불편한 시간에도 그 마음을 놓지 않았다.
살던 집은 처분하지 않은 채 고향인 엄마 집으로 옮겼고, 처음 든 생각은 회복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3년의 긴 번 아웃을 방치했던 만큼의 시간이 걸릴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여기니 빨리 이 문제를 해결하고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는 조급한 마음이 잠시 가라앉았다.
가던 길을 멈춘다는 건, 멈추지 않는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비정상적인 활동으로 보일 수 있다. 하루라도 빨리 취업하고 앞길을 마련해야 한다는 압박이 밀려오지만 그럴수록 정신 차리고 멈추었다. 재촉한다고 해서 좋은 선택을 한다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휴식은 더 좋은 선택을 하기 위한 잠시 멈춤의 시간으로 여기기로 했다. 그 과정에서 불안하거나 우울해져도,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는 다양한 과정을 겪으며 진정으로 원하는 ‘중심’이 생길 것이라 믿는다.
상처가 조금 아물었다고 해서 또다시 옛날 습관처럼 산다면 결과는 반복될 거란 경각심도 새긴다. 그래서 원하는 하루를 향해 방향을 잘 잡겠다는 마음은 오늘도 진행형이고 죽기 전까지 꾸준히 가꾸어나가고 싶다.
그렇게 만난 첫 시작이 글쓰기였고, 쓰는 행위를 통해 그동안 마음 깊이 눌러져 붙어 있는 것들에 대해서 모두 끄집어내보기로 했다. 보기 싫었던 것들을 덤덤하고 평평하게, 바깥에 펼쳐 놓기로 했다. 매 순간 부족함이 밀려오지만, 그런 나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순간들을 느낄 때면 마음이 한없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서른 살에 하지 못한, 서른 살 휴식을 만끽하며 오늘도 한 발자국 내딛어본다.
새로운 도전
“한 번 살아봐, 그게 쉽지 않을걸.”
주변 사람들의 첫 반응이었다. 30대 중반이 되어서 엄마랑 둘이 산다고 하니 이상하게 볼 만도 했다. 예상한 반응이지만 마음 한구석엔 지지받지 못한 섭섭함과 선택에 대한 불안감이 비집고 올라왔다. 하지만 이미 결정한 것을 바꾸기보다 머뭇거리더라도 밀고 나가고 싶었다.
12년 다닌 회사 그만두고 이제 뭐 하면서 살 건지, 이직은 언제 하는지 그리고 왜 굳이 엄마랑 사는지를 묻는다. 예전에 나였다면 완벽한 답변을 준비하기 위해서 고민하고 그럴듯하게 이야기하며 괜찮은 척 굴었겠지만, 그런 가면마저도 답답하게 느껴졌다.
완벽주의 성향과 불안감으로 30년 넘게 살아온 나에게 이번 선택은 모험이긴 했다. 정년퇴직할 때까지 회사에 다닐 수 있었고, 20대에 집을 샀기에 거주의 불안함도 없었다. 최근에 만난 사람과는 결혼도 할 뻔했다. 내가 봐도 겉으로는 꽤 안정적이고 평범한 삶의 형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겉으로 멀쩡해 보이는 것. 그게 가장 큰 문제였다. 그래서 퇴사를 결심했을 때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갑자기 무슨 문제가 있냐는 질문을 제일 많이 받았다. 그러나 오랜 시간 켜켜이 쌓인 내 마음을 그 누구에게도 드러낼 수 없었다.
이제 내 마음을 길거리에 방치하지 않기로 했다. 애쓰는 게 습관이라 몸과 마음은 항상 경직되어 있고, 심할 때는 숨도 잘 쉬어지지 않던 순간들을 돌아보면 무엇을 위해 그렇게 살려고 했었는지 참 안쓰럽게 느껴진다. 일을 완벽하게 하지 못하면 스스로 괴롭히고, 모든 인간관계를 잘하고 싶은 기대와 집착이 삶의 중심을 흔들리게 했다. 결국엔 내가 무엇이었는지, 어디로 향하고 싶었는지 그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그 마음을 돌보는 첫 번째 단추가 가족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오래 떨어져 살았던 가족에 대한 마음의 거리를 좁히면서 앞으로 내 삶이 원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음을 직감했다. 그렇게 퇴사 후 엄마와 살기로 다짐했고 조심스레 꺼낸 대화에서 엄마는 언제든지 오라고 반겨주었다.
사실 글을 쓰려고 하니 책으로 쓸만한 이야기가 없을 것 같다는 걱정이 도전을 가로막았다. 대단한 이야기가 있는 게 아닌데 누군가에게 보여주기도 민망하지 않을까. 그러나 현재 삶의 이야기를 기록한다면, 세월이 지난 후 읽어볼 때 30대의 나를 지금보다는 조금 더 사랑스럽게 바라볼 것만 같은 상상이 들었다. 그리고 덮으려 했고 잊기도 했던 추억들이 더 빛바래지기 전에 적어놓는다면, ‘내가 그래도 이때 참 열정적이었지, 잘했던 순간이 있었지.’라며, 글을 읽는 나에게 자신감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언젠가 지쳐서 또다시 움직일 수 없을 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가 되기를 바라며 오늘도 글을 쓴다.
좋아하는 일과, 돈 사이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들 하는데, 내가 흥미를 느끼는 일은 모두 돈이 안 되는 것들뿐이다.
중학교 3년은 풍물을, 고등학교 3년은 연극을 하며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어른이 되면 돈 벌어서 인생을 스스로 책임져야 하니 청소년인 지금을 충분히 즐기자고.
그래서 재미와 돈은 상반되는 개념이라고 생각했고 풍물과 연기로 직업을 삼겠다는 생각은 진즉 접었다. 돈을 벌 만큼 뛰어난 재능이 있지 않다며 스스로 선을 긋기도 했다. 다만 재밌었을 뿐이다. 그래서인지 밤을 새워 연습해도 즐거웠고 대회에서 좋은 성적으로 큰 상도 여러 번 탔다. 주변에서도 인정을 많이 해주었지만, 그걸로 돈을 벌 수 있겠다는 상상은 되지 않았다. 예술을 하면 가난하게 산다는 생각이 컸기에 삶의 우선순위 상단에 재미가 들어올 자리는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돈이 되는 일이라면 다 하는 그런 자세도 없었다. 어렸을 때 생긴 돈에 대한 부정적인 정보는 돈을 좋아하지 못하게 했다. 다만 돈이 없으면 하고 싶지 않은 일도 해야 한다는 체험을 하면서 자금관리 능력은 예전보다 좋아졌다.
이전과 다르게 일에 대한 가치관으로 자리 잡은 한 줄기 생각이 있다면 ‘일과 생활의 균형’이다. 내가 이 말을 글로 쓰게 될 줄 몰랐다. 왜냐하면 난 생활보다 일이 더 중요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일이 곧 나였기에 생활은 그렇게 중요한 비중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때는 직장에서 내 삶의 모든 의미를 충족시키려고 했기에 항상 불만족했다는 걸 발견했다.
‘직업이란 노동을 제시하고 돈을 받는 거래다.’라는 말을 인정하면서 이제는 아주 좋아하는 일 아니더라도 괜찮고, 그 안에서 약간의 흥미를 느끼며 경력을 성장할 수 있다면 만족한다는 기준이 세워졌다.
20대에는 밑천도 없고 경험도 없으니 닥치는 대로 일했다. 그렇게 30대가 되면 뚜렷한 답이 있을 거라고 믿으면서. 다행히도 그 세월 동안 어떤 것을 잘하고 장점이 있는지 어느 정도 파악이 되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그 일을 키워나가면 쉬운 문제인데, 이제야 다른 경력을 쌓고 싶은 마음이 든다. 지금까지 해온 일을 평생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숨이 막히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안 받아주고 실패하더라도 시도하면 미련은 남지 않을 것 같다. 한 사람이 체험하는 직업군은 앞으로 더 다양해진다고 하는데, 하루빨리 안정감을 찾고 싶어 하는 내 성향으로 인해 계속 현재 자리에서만 버티려고 했다는 걸 알았다.
이제는 붙잡고 있는 강박증을 내려놓고 내게 맞는 일을 찾고 있다. 좋아하는 일이, 잘하는 일이 되고 돈이 되는 일이 되면 좋겠지만 그런 완벽한 욕심은 내려놓으려 한다. ‘이 일을 키우고 싶다.’라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만족하기로 했다. 그랬을 때 일에 끌려가지 않고 주체적으로 키우며 일과 생활의 균형을 지켜나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요즘 다시 재미와 흥미를 느끼는 일들이 생겼다. 우습게도 다시 연기다. 6개월 과정 아카데미를 신청해놓았는데, 몇 달 뒤에 개강하는 수업을 생각하면 미소가 지어진다. 고등학교 때는 연기 대회 준비에 대한 압박감과 사춘기로 정서적 불안감이 휘몰아쳤던 시기였다면 이제는 차근차근 즐겨보고 싶다. 또한 이렇게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즐겁고 힘이 된다. 힘들다고만 치부했던 막연한 감정을 진솔하게 풀어내는 과정이 좋다. 또한 매주 글쓰기 모임에서 다른 사람들의 글을 들으며 시각이 넓어지고 넉넉해지는 경험도 감사하다.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은 항상 즐겁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시간을 채운다는 건 이런 기쁨이구나. 글을 쓰면서 행복한 기분이 든다. 앞으로도 내 삶에서 반복하고 싶은 요소들을 찾아 하나씩 키워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