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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과학소설(SF) > 한국 과학소설
· ISBN : 9791189176662
· 쪽수 : 96쪽
책 소개
목차
007 비부패세계
041 래빗 독스
081 평론 | 이성혁(문학평론가)
095 작가의 말
저자소개
책속에서
묵이 흘렀다. 무작정 데려온 것치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렇다고 언니를 원망하고 싶지는 않았다. 레스트 인 피스. 그건 나보다는 언니에게 필요한 말이었다. 하지만 저렇게 돌아다녀서야 쉴 수가 있나. 머리가 아팠다. 그때 누군가가 거칠게 문을 두드렸다. 이재는 다행이라는 기색을 숨기지 않은 채 재빨리 달려나갔다.
지금 이게 무슨 경우에요?
날카로운 목소리가 새어 들어왔다. 현관에 선 이재가 쩔쩔매는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다.
좀비를 건물 안에 들여놓으면 어떡해요.
― 「비부패세계」 중에서
그리고 나는 지금, 더 먼 우주를 향해 가고 있다. 먼 옛날 인간들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먼 곳이었던 게임을 가지고. 나의 미션은 하나. 우리가 살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을 찾아내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바라던 일이었는데 어째서 쫓겨나는 기분이 드는 건지는 알 수 없다. 책임이라는 말은 너무 무겁고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했다. 모든 게 너무 당연해지기 전에. 뭐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그냥 사라지지는 않게. 그게 정말 최선이지는 않게. 뭐라도, 이어질 수 있게. 지구가 망해가는 순간에도 게임이나 만들고 있었을 사람들의 한심한 얼굴과, 생각해낼 수 있었던 최선의 외계인의 모습을 떠올린다. 고작해야 토끼와 강아지.
멀리서 별이 쏟아져 내린다. 어둠을 가로질러 사라지는 그것은 언젠가의 눈을 닮았다. 도망치고 싶으면서도, 그리운 장면. 우리는 다시 만난 적은 없다. 그러나 그 애는 줄곧 지구의 반대편을 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가고 있는 방향. 네 시선이 내 등에 닿아 있다고 생각하면, 어쩐지 누군가 등을 끌어안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중력이었다.
― 「래빗 독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