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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인문 에세이
· ISBN : 9791189198404
· 쪽수 : 300쪽
· 출판일 : 2018-11-30
책 소개
목차
추천의 말
1 열린 문
2 먼 곳의 푸름
3 데이지 화환
4 먼 곳의 푸름
5 방치
6 먼 곳의 푸름
7 두 개의 화살촉
8 먼 곳의 푸름
9 단층집
참고 자료
옮긴이의 말
리뷰
책속에서
윈투족은 자기 몸을 말할 때 ‘오른쪽’이나 ‘왼쪽’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동서남북 방위를 쓴다고 했다. 나는 그런 언어가 있다는 사실이 뛸 듯이 기뻤고, 그런 언어의 이면에는 자아란 세상과의 관계로만 존재하는 것이기에 만약 산과 태양과 하늘이 없다면 자아도 없다고 보는 문화적 관념이 깔려 있다는 점이 기뻤다. 도러시 리에 따르면, “윈투족이 강을 따라 올라갈 때 산이 서쪽에 있고 강이 동쪽에 있고 모기가 그의 서쪽 팔을 물었다면, 그가 거꾸로 내려올 때 산은 여전히 서쪽에 있지만 이제 그가 모기 물린 데를 긁으면 동쪽 팔을 긁는 셈이다.” 이런 언어에서 자아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연에서 길 잃는 것처럼 길을 잃을 일이 없다. 방향을 모르는 상태, 산길뿐 아니라 지평선과 빛과 별들과의 관계를 추적하지 못하는 상태가 될 일이 없으니까.
펑크록, 슬램 댄싱을 하고 진탕 취하고 무대에서 다이빙하고 스피커 앞에서 몸이 진동하는 것을 느끼는 펑크록, 정치적 분노를 노래에 담았고 극단적인 상태를 선동하고 표현하려고 했던 펑크록은 그런 사회에 대항하는 집단 반란이었다. 그러나 실은 폐허처럼, 사회도 황야가 될 수 있다. 그 속에서 영혼도 야성적인 것이 되는 공간, 자기 자신과 자신의 상상력을 넘어선 것을 추구하는 공간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야성 중에서도 특수한 종류가 하나 있으니, 에로틱한 것과 취하는 것과 위반하는 것에 관련된 야성, 야생의 자연보다는 도시에서 더 쉽게 터를 잡는 야성이다. 그런 야성에게 어울리는 시간도 따로 있으니, 바로 젊음의 시간, 밤의 시간이다.
펑크록의 전성기에 성년을 맞았던 우리에게는 우리가 무언가의 끝을 살고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 보였다. 모더니즘의 끝, 아메리칸 드림의 끝, 산업 경제의 끝, 특정한 형태의 도시화의 끝. 사방에 널린 도시의 폐허들이 증거였다. 브롱크스는 몇 블록씩 몇 킬로미터씩 펼쳐진 폐허였고, 맨해튼의 몇몇 동네도 그랬으며, 전국 곳곳의 공공 주택 단지 사업은 붕괴한 상태였고, 샌프란시스코와 뉴욕 경제의 핵심이었던 선적 부두들은 버려진 곳이 많았으며, 샌프란시스코의 널찍한 서던퍼시픽철도회사 조차장과 가장 눈에 띄는 두 양조장도 마찬가지였다. 빠진 이 같은 공터는 우리가 자주 오가던 거리에 거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폐허는 어디에나 있었다. 부자들이, 정치가, 미래의 전망이 도시를 버렸기 때문이다. 도시의 폐허들은 그 시기를 상징하는 장소였고, 펑크록 미학의 일부를 제공한 장소였다. 그리고 대개의 미학이 그렇듯이 이 미학에도 고유의 윤리가, 즉 어떻게 행동하고 살 것인지를 지시하는 세계관이 담겨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