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89333034
· 쪽수 : 164쪽
· 출판일 : 2018-09-01
책 소개
목차
보르헤스에 대한 알려지지 않은 논쟁
페스타이올로의 집
여섯 개의 모래시계
죄책감의 확률
전당포
마술 사진기
바리케이드
고해성사
역전 광장
4시 37분의 결함
작가의 말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타인의 책과 밤(los libros y la noche)을 신이 보르헤스에게 선물했던 것처럼, 신은 모든 ‘제조자(El Hacedor)’에게 자신이 쓴 책과 기억력을 선물했다네. 우리는 우리의 기억력 때문에 우리가 쓴 글을 못 읽는 거야. 아무리 객관적으로, 아무리 타인인 척하고 읽으려 해도, 그 문장들이 기억나는 거야. 내가 왜 그 단어를 골라서 정확히 ‘거기’에 집어넣었는지, 내가 독자들의 어떤 반응을 기대하고 그 문장을 썼는지, 그리고 살아남은 문장 대신 지워진 문장들은 어떤 것이었는지, 다 기억이 나는 거야. 그런 기억들이 자신의 책 읽는 행위 자체를 불가능한 것으로 바꾸어놓는다네. 느끼기도 전에 기억이란 이름의 밤이 찾아오는 거야. 그게 작가에게 주어진 형벌이지. 우리는 사생아나 기형아를 낳지는 않았을까 평생 전전긍긍하며 살아야 하는 존재야. 우리는 기억력을 준 가혹한 신과, 아첨쟁이나 철천지원수로밖에 구분되지 않는 이웃들 사이에서 살고 있네. 그래서 보르헤스는 차라리 기억을 잃고 자신이 쓴 책들을 다시 읽고 싶었던 거야. 자신이 계속해서 사람들 앞에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있는 작가인지, 아니면 덜 지적인 제자인지, 아류인지, 표절자인지, 변절자인지 용기 있게 확인하고 싶었던 거지.”
- 「보르헤스에 대한 알려지지 않은 논쟁」 중에서
왜?라는 질문이 닿을 수 있는 종착역은 당위이거나 존재, 둘 중의 하나이다. 돌이켜 보면 짧은 삶 내내 나는 둘 사이에서 늘 갈팡질팡하다가 어느 곳에도 제대로 도착하지 못했던 것 같다. 당위에 닿을 수 없었던 건 용기와 정열이 부족해서였고, 존재에 도달하지 못했던 건 정직성과 기억력이 부족해서였다.
시간과 기억에 대한 짧은 글들을 써 모으는 동안, 나를 포함한 몇몇 송신자로부터 다시 한 번 ‘왜?’라는 질문을 받았다. 한 번도 성공한 적 없는 시도지만 여기서 나는 다시 한 번 존재 쪽으로 걸어가 보려 한다. 비둘기를 만나지 않아야 할 텐데.
짧은 글을 쓸 때면 자동적으로 카프카와 보르헤스를 떠올리게 된다. 「보르헤스에 대한 알려지지 않은 논쟁」에서 나는 전작인 『키브라, 기억의 원점』에서 풀어놓으려 했던 생각을 조금 더 직설적으로, 보르헤스를 소재로 해서 새로운(‘새로운’이란 말은 내게 있어서‘는’ 그렇다는 거다) 방식으로 재조립하고 싶었다. 형식적인-부분적인 측면에서는 로베르토 볼라뇨의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에 빚진 바 크다.
「페스타이올로의 집」은 홍진경의 『베로니카의 수건』에 기댄 바 크다. 세검정에서 백사실 계곡으로 가는 길에 있는 작은 동네를 떠올리며 글을 썼다.
나는 책을 제외하고선 물건을 수집해 본 적이 없지만, 비슷한 물건-소재들을 집합적으로 나열했을 때 가끔은 마술적인 효과가 난다는 걸 알고 있다. 살바도르 달리의 「불꽃놀이(Tableau d’associations folles)」는 얼마나 매력적인가! 책에도 그대로 언급되어 있지만 밀로라드 파비치가 『하자르 사전』에서 고안했던 모래시계보다 멋진 모래시계들을 잔뜩 창조할 수 있을 거라고 나는 처음 생각했었다, 뻔뻔스럽게도. 숫자를 여섯 개로 한 것은 단지 일곱이라는 숫자가 꺼림칙해서였다.
나는 종종 인간이 더 완벽해지려면 기억을 잃어버려야 한다고 주위 사람들에게 주장한다. 「죄책감의 확률」은 이에 대한 이야기다. 생각이 문체와 이야기에 앞서다 보니 인형극이 되고 말았다.
훌리오 코르타사르의 「드러누운 밤」을 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즈음이었던 것 같다. 어느 날 잠자리에 누웠는데 뜬금없이 ‘4시 37분의 결함’이란 말이 내 머릿속으로 날아들었다. 결국 이 두서없는 짧은 글, 「4시 37분의 결함」이 글 전체의 방아쇠가 되었다. 이 글을 쓰고 나서 카프카의 「열한 명의 아들」을 다시 읽어보았는데, 뭐 카프카의 글을 읽고 나면 늘 느끼는 충동이지만, 이 글을 포함해 내가 쓴 것들을 모두 찢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실행으로 옮기지는 않았다. 파스칼 키냐르의 「옛날에 대하여」 14장에 나온 짤막하지만 아름다운 세 개의 문장들을 허락 없이 이곳으로 옮겼다. 죄송. - 「작가의 말」 중에서
1996년,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 1899`1986)가 사망한지 10주기가 되던 해에 그에 대한 알려지지 않은 작은 논쟁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