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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기호학/언어학 > 언어학/언어사
· ISBN : 9791189898656
· 쪽수 : 200쪽
· 출판일 : 2021-12-15
책 소개
목차
1장 정의 7
2장 인간 세계로 넘어가는 문턱으로서의 파롤 9
3장 파롤과 신들: 언어의 신학 21
4장 파롤과 철학자들 33
5장 인간적 현실로서의 파롤 53
6장 만남으로서의 파롤 69
7장 의사소통 87
8장 표현 97
9장 의사소통의 진정성 109
10장 파롤의 세계 129
11장 말하는 인간 137
12장 파롤의 고정 기술 151
13장 파롤의 도덕을 향하여 163
옮긴이 후기 177
책속에서
출발점에서부터 언어는 자아와 타인 간의 만남의 경계선을 표시한다. 그리고 말을 하기에 앞서서 기존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언어는 오랫동안 자아가 타인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정당화해 줄 것이다. 게다가 일상적 의미와 개인적 주도 행위 간의 세력 투쟁은 결코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인간 파롤의 사용 한계를 정의해준다. 만일 내가 말을 한다면, 그것은 나 자신보다는 타자를 위해서 말하는 것이다. 나는 타자에게 말을 걸기 위해, 나 자신을 이해시키기 위해 말을 한다. 파롤은 여기서 이음줄trait d'union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타자가 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의 언어는 그의 언어이어야 한다. 그것은 나보다 타자에게 더 우선권을 주어야 하며, 이해되면 될수록 그것은 더욱더 공통분모이지 않으면 안 된다. 타자들은 나에게 말하는 것을 가르쳤고, 나에게 파롤을 주었다.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써 타자들은 아마도 나의 원래의 목소리를, 약하면서도 느리게 자유로워지는 원래의 목소리를 억눌렀을 것이다. 언어, 그것은 타자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기존 언어의 강요된 상투적 표현에 복종해서 갇혀 지내고 있다는 것을 다시 긍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보았듯이 파롤의 발명은 인류의 지배권을 확립해주었는데, 일종의 역설적인 전도에 의해, 개인은 파롤의 이 휘황한 발명의 이점을 빼앗긴 채로 있다. 외견상으로 그것은 모든 사람의 발명이지만, 그러나 어느 누구의 고유한 발명도 아니다. 그것은 우리들 각자에게 발걸음을 맞추게 함으로써, 타인과 강제로 동조하게 함으로써 나타났던, 말하자면 결정적인 소외에 의한 발명인 것이다.
따라서 인간 파롤의 근본적인 이율배반은 타인에 대한 탐색이면서 동시에 주체의 주장인 것으로 표현된다.
쓰기와 읽기는 우선은 특권 계급의 전유물이다. 구술된 랑그와는 뚜렷하게 구별되는, 쓰여진 랑그를 사용할 줄 아는 식자들이 하나의 엘리트를 형성한다. 왜냐하면 방드뤼예가 말하듯이, “사람들은 결코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 쓰지 않는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쓰는 대로 쓴다(또는 쓰려고 한다).(<언어>, 389쪽) 통속적인 랑그는 결코 문자의 품격을 갖출 수 없다. 오늘날에도 스타일의 탐구는 문어la langue ecrite의 특징적인 표시이며, 가장 짧은 편지도 우리로 하여금 결코 좌담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꾸민 듯한 표현에 의존하게끔 한다. 이슬람 국가에는 쓰는 데 사용하기 위한 죽은 랑그인 문어 아랍어가 있으며, 쓰지는 않고 말하는 데 쓰이는 방언 아랍어가 있다. 얘기해 보자면, 우리들의 시대에도 발레리와 같은 작가가 그의 책에서 18세기의 문어를 전해주었는데, 이 랑그는 그 시대 때부터 구어langue familiere와 아주 뚜렷하게 구분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문자의 귀족적인 성격이 유지되는 것인데, 이 성격이 우리에게 고어체와 관습체를 강요하는 것이다. 마치 종이와 펜대에 의존하는 것이, 말하고 있는 의식과는 구별되는 또 다른 의식을 우리 안에 불러 모으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문자는 아무나 누리는 특권이 되지는 못했었다. 그것은 어쨌든 서방에서 현대인의 최저 생계비에 속한다. 왜냐하면 오늘날 여전히 전체 인류 중에서 대다수는 문맹이라고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16세기에 새로운 기술적 혁명이 인쇄술의 발명과 함께 일어난다. 이 혁명은 수공업 시대에서부터 산업 시대에까지 지적인 삶을 운반함으로써 정신적 실존의 조건을 급격히 변화시켰다. 그 후로 쓰기와 읽기는 누구나 다 갖고 있는 역량이 된다. 활자화된 종이의 소비는 그 활용 기술이 완전해짐에 따라 계속 증가하고 있고, 그 결과 오늘날 인류는 잠재적인 부족, 전적인 신문지의 부족으로 헐떡거리고 있다. 16세기에서부터 책의 보급은 기초 교육의 덕분으로 각 사람에게 직접 진리에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